23. 나를 대접하는 순간

의식의 공간, 선택의 미학

by 생활미감

픽사의 단편 ‘바오’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공간의 언어에 주목했다.


텅 빈 식탁, 홀로 앉은 소파, 아무도 부르지 않는 부엌. 공간은 때론 감정보다 더 정확하게 외로움을 증언한다. 그 빈 공간들이 바로 내가 지금 마주한 현실이었다.


영화 Bao


토요일 아침 8시 50분. 식구들은 아직 꿈나라, 나 홀로 식탁에 앉았다.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인 아이러니, 그것이 바로 감정적 거리에서 오는 진정한 외로움이었다.


어젯밤 풍경이 되살아난다. 친구와 밤새 통화하며 깔깔거리는 아들의 웃음소리가 방문을 넘어도 나는 무기력하게 참아야 했다. 보름 남짓 남은 시험에 대한 불안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자정을 넘도록 기다리던 남편은 불금이라며 새벽 1시 40분이 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 사회생활 관여 말고 너나 잘하라.” 전화 너머의 차가운 목소리.


신혼 초엔 격정적이었다. 남편이 가장 애착하던 TV를 망가뜨리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 손해였다. 남편은 더 큰 TV를 샀고, 나는 모른 체하며 침묵했다. TV 그놈의 테레비. 이제는 그냥 그 자체를 인정하기로 했다. 감정도 무뎌져, 멜라토닌과 안대에 의존해 인위적인 평온을 찾는다.


영화 Bao


의식의 공간, 선택의 미학


금세 찾아온 잠은 깊었고, 악몽도 덜했다. 이상하게도, 어제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났는데 오늘은 새벽 2시에 잠들었음에도 같은 시각에 눈을 떴다. 마치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더 이상 수동적으로 견디지 말고,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라고.


아침 의식이 시작되었다. 속이 쓰리면 안 되니 커피 대신 요거트부터. 수제 요거트 위에 유기농 무화과를 올린다. 포닥한 감촉과 자연스러운 단맛, 블루베리의 신맛, 그래놀라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작은 교향곡이 완성된다. 혈당 스파이크가 두려워 인공적인 단맛은 배제한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익숙하게 국그릇을 꺼내려던 손이 멈춘 것이다. ‘그냥 아무 데나 먹지 뭐, 혼자 먹는데.’


‘아니야. 나. 는. 소. 중. 해.’


조심스럽게 얼마 전에 산 하얀 볼을 꺼냈다. 한 손에 단단히 들어오는 묵직함, 수작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그릇. 완벽하지 않은 곡선과 미묘한 두께가 오히려 친밀하게 와닿았다. 이 그릇의 특별함은 아름다움에 있지 않았다. 설거지할 때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예민함에 있었다. 바로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겠다는 선택. 그것은 나를 대하는 태도의 선언이었다. 식빵도 마찬가지였다. 설거지를 피하려 휴지를 깔던 습관을 버리고, 온전한 접시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오후엔 프리츠한센 세븐체어가 도착한다.


어젯밤 아들을 위해 들여온 아르테미데 핀자 집게형 조명과 스마트 전구에 퍽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기에, 의자 역시 '과소비'라는 말을 들을까 두렵다. 남편은 오늘도 미국에서 만난 지인들과의 모임으로 부재중일 예정. 그렇더. 이 토요일, 나는 철저히 혼자다.


연이은 뜻밖의 고독 속에서 나는 어떤 작가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혼란스러운 현실을 견디려 고전 미술에서 위안을 찾고,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나비 채집에 몰두했던 이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영혼을 달래고 정신을 지켜낸다. 나에게는 그게 무엇일까?


어쩌면 이 작은 하얀 그릇이, 프리츠한센 의자가, 컬리에서 고른 무화과가 나만의 ‘나비 채집’ 일지도 모른다. 남편의 늦은 귀가도, 아들의 무심함도, 가족들의 반응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 아침, 내가 온전히 주체가 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나를 소중히 대하는 일이다.



에필로그: 불완전한 완전함 속에서


솔직해보자. 이런다고 당장의 외로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가슴은 쓰리고 남편이 원망스럽다. 아들의 무관심도 서럽고, 가족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건 안다.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딱히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것 말고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중년 그 마음으로 가족들의 무관심을 견디며 사는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인지 물었던- 그 답이 이 작은 그릇 안에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한 그릇, 신중하게 고른 재료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 이 작은 의례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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