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세븐체어에 앉아 쓰는 글

나를 위한 공간, 나를 위한 시간

by 생활미감

토요일 오후 5시, 가족들이 모두 나간 집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아침에 브런치에 올린 글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아침 8시 50분, 하얀 그릇에 요거트를 담으며 다짐했던 그 순간들. 지금 나는 그때와는 다른 자리에 앉아 있다.


프리츠한센 세븐체어


두어 시간 전에 도착한 이 의자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 등받이가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 좌면의 적당한 경사, 팔 없는 자유로움. 색상 고민이 많았는데, 오크색이 딱 내가 원하던 톤이다. 노랗지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조금 전엔 이 자리에서 인스턴트 비빔면을 먹었다. 특별히 커다란 너븐재 파스타 그릇을 꺼내서. 오이와 반숙란을 정성스럽게 올리고, 엄마가 방앗간에서 짜다 주신 참기름도 넉넉히 뿌렸다. 아침의 하얀 그릇과는 또 다른 의식이었다.



공간이 바뀌면 시간도 바뀐다


의자 하나가 이렇게 다를 줄이야. 같은 테이블, 같은 주방인데 앉는 자리만 바뀌었을 뿐인데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 심지어 주방에서 사용하는 보스 미니 오디오 소리까지 새롭게 들린다.


문득 예전 기억이 난다. 인테리어 업체를 만나 이상적인 공간을 설명하려 애쓰던 순간들. “어떤 집을 만들고 싶으세요?” 물으면, 나는 예산이 허락한다면 우리 집을 호텔처럼, 아니 그게 어려우면 뉴욕 현대미술관처럼 만들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핸드폰으로 모마 사진을 들이대며 설명하는 순간, 상대방의 표정에서 '진상 고객'이라는 시선이 역력했다. 속으로는 분명 “헐, 모마”라며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븐체어의 오크색을 보니 그때 그 갤러리 속 나무색, 그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던 그 한 조각을 여기, 이 자리에서 찾은 것이다.


어느 전시에서 큐레이터가 이런 말을 했다. “공간은 중립적이지 않아요. 작품을 어디에 걸어놓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 앉아보니 그 말이 이해된다. 나라는 사람은 똑같은데, 앉는 위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내 안의 무언가가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선물


라떼를 만들어 옆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스탠드에 기댄 아이패드 화면, 블루투스 키보드의 미묘한 타격감, 짙은 브라운색 머그컵.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이런다고 내 인생 달라지나 싶기도 하지만'이라고 아침에 썼는데, 지금 보니 벌써 뭔가 달라지고 있다. 그런거 같다고 주장하고 싶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이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아무도 내 선택에 태클을 걸지 않는다. 세븐체어든 아무 의자든, 커다란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그건 온전히 내 선택이다.


오후 6시가 다 되어간다. 곧 가족들도 하나둘 돌아올 것이다. 이 고요한 시간도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 아침 화이트볼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들이 계속 쌓여갈 것이다. 세븐체어에 앉아 타이핑하는 이 순간도, 커다란 그릇에 비빔면을 담아 먹었던 점심도, 아무도 없는 집에서 라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이 오후도.


모두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만의 작은 의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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