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시골 그 사이 어딘가
연차를 쓴 금요일 오전. 샛강을 걷는다. 에어팟을 꼈다가 벗는다. 올림픽대로의 차 소리가 웅웅 거리지만, 그 너머로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린다.
여의도샛강에 오면 늘 이렇게 한다. 노이즈 캔슬링을 끄고,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그게 좋다.
늦가을이라 낙엽이 쌓였다. 분홍, 오렌지, 빨강, 누르스름한 노란색, 연두, 초록. 다양한 종류의 잎이 소박하게 내려앉아 있는 게 흡사 꽃 같다.
황톳길을 밟는다. 운동화를 신고 있어도 그 촉감이 느껴진다. 좋은 종이에 잉크를 머금은 만년필로 글을 쓸 때의, 그런 만족감.
무언가를 좋아하면 반드시 이유를 찾아야 직성이 풀린다. 여의도샛강도 그랬다. 도시 한복판에 어떻게 이런 곳이 존재할 수 있는지 알수록 놀라운 곳이다.
지방에서 자랐지만 정작 들판과 논, 우거진 숲은 더 멀리 나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바라온 것이 있었다. 도시와 시골 사이, 그 어딘가. 그 둘이 공존하는 삶. 삶의 중요한 결정마다 이 선호가 작용했던 것 같다.
샛강에는 커다란 나무와 야생의 수풀이 우거져 있고, 물이 흐른다. 너무 작지도 잘게 흐르지도 않는, 적당한 규모로. 여의도를 둘러 고구마 모양처럼 끊김 없이 이어지는 약 10킬로미터 둘레. 한 바퀴 도는 데 딱 좋은, 담백한 사이즈다.
인공적으로 모양을 만들고 거기에 욱여넣은 듯한 조경은 좋아하지 않는다. 정원을 만든다는 건 자연에 억지 규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들과 디오라마를 만들 때도 깨달았다.
답은 조경가 정영선 선생의 철학에 있었다. [정원의 위로]라는 책에서 그는 조경을 “땅에 쓰는 시”라고 했다. 그 말을 읽는 순간, 여의도샛강이 떠올랐고, 이곳이 그가 설계한 곳임을 알았다. 이 샛강은 정영선 선생의 철학, 즉 “주변 경관을 끌어들이거나 품어 부지에 어우러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이 샛강은 1990년대 콘크리트 주차장이 될 뻔한 위기를 겪었다. 도시 배수용 인공하천으로 전락하자, 서울시는 아예 이곳을 덮어버릴 계획을 세웠다. 당시 자문위원이었던 정영선 선생은 습지의 버드나무와 갈대숲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그는 전국에서 생태학자를 불러 모았고, 김수영의 시 ‘풀‘을 읊으며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말했다.
“세상엔 이런 공원도 저런 공원도 있어야 한다.”
그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1997년 이곳은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으로 문을 열었다.
샌디에이고에서 3년을 살 때, 캘리포니아는 늘 가뭄을 이야기하면서도 도심 조경에 엄청난 물과 노력을 쏟는 것을 보았다. 언덕과 구릉에 스프링클러 선을 심어 두고, 선인장이며 올리브나무며 온갖 식물을 유지하는 방식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외양을 연출하기 위한 치밀한 시스템이었다. 봄에서 여름 사이 보라색 자카란다가 도시를 수놓는 모습에서, 식물의 생육 시기와 색의 조화까지 고려하는 조경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도시 조경이 금방 시들 일회성 화분을 도로에 매달아 소비하는 방식에 아쉬움이 컸다. 왜 저렇게 하나, 지속가능성은 생각 안 하나.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변화를 봤다. 도로변의 일회용 화분 뭉치가 사라지고, 모퉁이에 불두화가 많이 보였다. 불두화는 세련된 색감과 덩이감을 주며, 지고 나서도 앤티크 한 느낌을 주는 지속 가능한 식재이다. 샌디에이고에서 보던 식물들이 우리 지형에 맞게 심어진 것도 보였다. 아, 변했구나. 지속가능성과 어우러짐을 생각하기 시작했구나.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하버드 조경학과 출신의 젊은 한국 여성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제가 어서 퍼포먼스를 내야죠.” 그때는 하버드까지 가서 굳이 조경을, 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로 치면 농대 원예 정도로 인식이 낮을 때였다. 지금은 안다. 조경은 도시민의 삶을 바꾸는, 사회적 철학이 담긴 퍼포먼스라는 것을.
다시 샛강을 걷는다.
이곳은 강원도 깊은 숲과는 다르다. 사람 손이 닿는 것 같은데 그게 과하지 않다. 자연스럽고 담백하다. 관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어디선 폭포처럼 세차게 흐르다가 어디선 잔잔하게 고인다. 지하수를 끌어왔다는데, 물의 표정이 다양하다. 야생화가 점점이 피어 있어서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황톳길 폭이 딱 좋다.
30여 년 전 누군가 김수영의 ‘풀‘ 을 읊으며 지키려 했던 이 땅. 콘크리트 주차장 대신 땅에 쓴 시가 되었다. 이곳은 도시와 시골 사이, 그 어딘가. 그토록 찾아온 바로 그 자리에 여의도샛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