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은행나무

귀하게 여기면 정말 귀하게 된다

by 생활미감

창밖으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흐른다.


책 한 챕터를 끝내고 고개를 들면, 눈앞의 은행잎이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살랑인다. 나는 지금 이 나무와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있다. 올려다보지도, 내려다보지도 않는 이 평온한 시선. 이 익숙한 풍경 앞에서 문득 마음이 동동거린다.


낡은 아파트의 창문이 나에게 내어준, 어엿한 나의 방. 이곳은 누가 돌보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마당을 내다볼 수 있는 특권이다. 아파트이지만 주택살이 같은 기분. 마치 우리 집 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 것처럼. 나의 시선에서 가장 가까운 아름드리 은행나무에 나는 혼자 이름을 붙였다. ‘우뚝이.’


어딘가에 나만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건 괜찮은 기분이다. 빨간 머리 앤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내가 자꾸 쳐다보는 나무라서일까. 이미 엄청나게 크지만 또 부쩍 잘 자라는 느낌이다. 그것이 관심과 사랑의 힘이라면,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 내가 있단다.”



환상을 접고 얻은 소중함


오래전부터 꿈꾸던 주택살이를 접은 것은 정말 사소하지만 큰 이유를 발견해서였다. 은퇴하면 시골에 집을 짓고, 커다란 창문과 높은 층고, 테라스 바비큐를 즐기며 타샤의 정원처럼 꽃을 심어야지 했었으나… 현실은 달랐다. 아서라. 그 환상은 내려놓기로 했다.


3년 전, 경주와 제주 여행길의 스테이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깨달았다. 이건 못 하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 발치에서 발견하는 것은 죽어 있는 벌레였다. 꽤 비싼 샷시였음에도 방충망으로도 막을 수 없는 벌레들의 습격. 벌레뿐만이 아니다. 설비부터 수리까지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하는 막막함. 그리고 그 눅진하고 찌든 듯한 냄새까지. 나는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싱글하우스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영화에서 보던 2층 집에 대한 환상은 영화 속에서나 아름다운 것이었고, 현실은 아파트보다 훨씬 불편했다.


그래서 이곳이 더 소중하다. 비록 낡은 아파트이지만, 이 오래된 단지는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사람 손이 과하게 닿지 않은 덕분에 날것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언제 심어졌을지 모르지만, 이 아파트가 50년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그 언저리쯤 되지 않았을까. 재건축되면 사라질, 조경이 아닌 리얼의 숲. 진짜 찐 숲이다.



귀하게 여기면 정말 귀하게 된다


창밖의 풍경은 경계 없이 서서히 자연으로 넘어간다. 계절의 변화를 시나브로 젖어들게 하는 이 집. 늦가을, 2025년 11월 중순. 이 순간은 벌써 과거형으로 기록될 오늘 같아서 감히 밖으로 나설 수가 없다.


책 『정원의 위로』를 펼치자 괴테 전문가 전영애 교수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뭔가를 귀하게 여기면 정말로 귀하게 되는 것.”


그렇다. 나는 지금 이 눈높이의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긴다. 나무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의 투영 때문일 것이다.


지금, 귓가에는 쇼팽이 흐르고, 손에는 정원 이야기가 가득한 다정한 책이 잡혀 있다. 눈앞에는 황금빛 은행나무가 나와 눈높이를 같이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완벽하게 놓여 있는 순간.


전영애 교수의 여백서원 드레스코드가 흰색이듯, 나의 방 역시 그러하다. 하얀 도화지 같은 공간에서 색을 통제하고 포인트를 최소화하는 이유. 다른 모든 잡음을 지우고 오직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이 순간 나의 드레스코드는, 오직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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