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지 않지만, 이미 살고 있는 집
도배가 끝난 줄 알았다.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또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무언가가 붙고, 칠해지고, 진행되고 있었다.
수요일부터 “오늘 도배합니다”라는 말이 들렸지만, 다음 날 가봐도 벽은 그대로였다. 먼지와 자재로 가득한 공사 현장. 처음엔 도무지 뭘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50년 된 구축. 벽이 울퉁불퉁하고 기울어진 데가 많아 퍼티로 면을 고르고, 온 벽을 군데군데 흰색으로 덮고 또 덮는 평탄 작업만 며칠이 걸렸다.
우리가 선택한 건 실크벽지. 벽에 밀착하지 않고 살짝 띄워 시공하는 방식이라 벽의 단점을 최대한 덜 드러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안겨주는 과정이었다.
아직은 이 집에 살지 않는다. 퇴근한 뒤, 잠깐 들러 보고 가는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 벌써부터 이 집이 날 흔들고 있다.
퇴근 후 6시 반쯤 현관에 들어서면 윗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익숙하지 않은, 서투른 손길. 계속해서 반복되는 음정.
마치 어린 시절 다니던 피아노 학원 같다. 가벽 너머로 섞여 들리던 연습곡처럼, 우리 집 벽을 타고 윗집의 음들이 흘러내린다.
방음은 전혀 되지 않았고, 나는 이곳에서 누군가의 피아노 연습까지 함께 들으며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그 순간, 멈칫 ‘이 집, 과연 잘 산 걸까?’
소동은 이미 있었다. 안방 화장실 천장에서 누수가 발견됐다. 집을 사고 나서야 알게 된 문제, 그래도 고쳐야 했다.
한 달쯤 지나 수리가 완료됐다고는 했지만, 며칠 전, 윗집에서 서류 하나를 들고 내려왔다. ‘피해 없음’, ‘민형사상 이의제기 없음’ 그리고 내 주민등록번호까지 적고 서명하라는 문서였다.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물방울은 떨어지지 않아도 천장은 여전히 축축했고, 곰팡이인지 배관인지 원인 모를 수상한 냄새가 들를 때마다 은근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봉합은 됐다고 하지만, 불안은 여전한 상황.
공동주택이라는 구조. 그 안에서 섞이는 냄새, 소리, 책임의 경계. 내가 아무리 내 공간을 고쳐도 이 집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같이 배우는 중이다.
반면 아래층에서는 또 다른 연락이 왔다. 우리 집 다른 욕실 오버드레인으로 인해 부엌 천장 벽지가 일부 젖고 부풀어 올랐다는 것. 노후된 배관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건 우리 집의 책임이었다.
도배를 해드리기로 했고, 그 집 남편분은 “그 정도면 됐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정작 피해를 입은 쪽은 너그러웠고, 반대로 위쪽은 유난히 방어적이었다.
같은 상황, 다른 태도.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내 마음엔 또 한 겹의 벽지가 붙는다. 누수의 흔적 위에, 말하지 못한 감정 위에.
처음엔 오래 살지도 못할 집인데 고가 자재가 과한 선택 아닐까 싶었다. 바닥은 강마루여도 구정마루 블론테, 벽지는 실크벽지 중 디아망.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감각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생존 전략’이었다.
수십 년 된 배관 위에 바닥을 다시 깔고, 기울고 울퉁불퉁한 벽 위에 벽지를 붙이는 집. 혹시라도 바닥에서 난방 배관이 터지면 그래도 표시가 덜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긴 선택이었다.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이 집은 워낙 오래된 구조로 가득하다. 그래서 무섭다. 아직 살지도 않았는데, 이 집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하게 된다.
고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단열도 수압도 새로 하고,
공간도 내 식대로 만들었으니 이제는 편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구축에 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인 것 같다. 50년 가까이 쌓인 낡음의 위력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더 어려운 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웃들과 예민해지지 않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재건축’이라는 커다란 공동의 목표를 앞두고 있다.
갈 길은 멀고,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만만치 않은 상황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도 붙인다. 그래도 고친다. 아직 살지 않아도, 나는 이미 이 집에서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
도배는 계속된다.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