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도시와 함께 자라는 이야기
누수, 냄새, 층간소음. 구축 아파트라면 더 심하게 겪을 수 있는 일들이지만, 막상 내가 겪을 걸 생각하니 '살아간다'는 게 이토록 물리적인 일이었나 싶습니다. 견딜 만한지, 고칠 수 있는지, 매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이 도시의 '낡음'이 전부 싫지만은 않습니다.
10여 년 전, 강남에서 살던 저는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습니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거든요. 양가 부모님은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당시 육아도우미 시장은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파출부 업체에서 소개받은 분에게 아이를 맡겼지만, 소아과에서 "아이 목이 쉬었다"는 말을 듣고 알아보니 거의 방치 수준이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자. 그래서 여의도였습니다.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이주였지요.
여의도에 살아보니 의외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말이면 유령도시가 되는 곳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서울답지 않게 한가롭고 여유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직장과의 거리가 주는 여유는 상상 이상이었어요. 출퇴근 시간이 줄어드니 일도 잘 되고, 회사에서 원하던 역할들도 맡게 되었습니다.
전세 두 텀을 돌다가 아예 집을 샀습니다. 그때는 이곳을 '평생집'이라 부르며 뉴욕 센트럴파크 옆 아파트를 컨셉으로 생애 첫 인테리어도 했어요. 크라운 몰딩을 살리고, 오픈형 주방으로 구조를 바꾸고, 원목 마루를 깔았습니다.
처음으로 공간을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집값 말고, 현생을 살겠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한계도 보였습니다. 피아노, 태권도 학원 같은 기본적인 학원조차 찾기 어려웠어요. 뭘 하려면 목동이나 강남까지 제가 직접 라이딩해야 했습니다. 친구 엄마들이 하나둘 반포로 떠나면서 저희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차에 남편이 미국 연수를 떠나게 됐고, 저 역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집을 팔면서 다짐했어요. "돌아올 때는 강남으로 가자."
3년 후 돌아왔을 때, 두 가지가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집값이었어요. 그토록 지지부진하던 서울 집값이 폭등해 있었고, 강남은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영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이였지요. 유학 생활을 하면서 국제학교를 다니게 된 아이에게는 더 이상 대치동 학군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변화는 여의도 자체였습니다. 제가 떠났던 그 여의도가 아니었어요.
더현대가 들어서면서 여의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말에도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IFC와 함께 진짜 도심다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어요. 곳곳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여의도공원 주변이 정비되면서, 서울시가 금융허브지구로 만들겠다는 개발 의지가 눈에 보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10여 년 전 반포가 떠올랐어요. 당시 반포는 재건축 아파트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는데, 여전히 낡은 모습의 아파트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냥 거대한 주거타운이었던 반포가 지금은 어떤가요. 프리미엄 단지들이 들어서며 최상위 급지로 변모했잖아요.
지금 여의도가 딱 그때 반포와 같은 단계라고 봤습니다. 꿈틀대기 시작하는 초기.
여의도는 다른 지역과 다른 희귀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도보권 내에서 직장과 주거, 자연과 문화가 모두 해결돼요. 마치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를 낀 업타운에서 미드타운까지와 같은 느낌입니다. 지하철 5호선, 9호선 급행역까지 갖춘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곳은 서울시가 '직주락(직장-주거-여가)' 구상을 실현하려는 실험의 현장입니다. 걷는 거리 안에 모든 것이 있는 도시. 여의도는 지금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강남 대신 다시 여의도를 선택했습니다. 한강과 여의도공원, 샛강이라는 자연이 있고, 지하철역이 있고, 무엇보다 이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새롭게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도시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닮는다고. 10여 년 전 아이 손을 잡고 여의도공원을 걸었던 그때와 지금, 변한 건 도시만이 아닙니다.
저는 다시 여의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도시와 함께 자라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