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영화평 -8 > 데이비드 핀처가 창조한 "killer"
* 영화 '세븐'을 재미있게 봤으면 이거 놓치면 안 되지!
* 갑자기 철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공짜 선생이 필요하신 분들 여기 모여라.
* 성공하고 싶어 처세론 한 권 읽느니 이 영화 한 편이면 OK.
성공한 킬러나 성공한 사업가나 그게 그거 아니겠어?
* 공부 안 하면 여름에 더운 데서 일하고 겨울에 추운 데서 일한다는 말. 들어는 봤지?
돈 많은 킬러도 예외는 아니더라고.
* 뻔뻔 평점 $$$$ (별 4개, 그냥 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는 냉철한 시각과 치밀한 연출 그리고 깊고 어두운 미장센.
그의 대표작 *"세븐"*이나 *"조디악"*처럼 어두운 분위기와 심리적 깊이가 돋보이지만, "더 킬러"는 더욱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접근을 취한다.
암살자의 내면 독백 아래 펼쳐지는 이야기는 핀처가 "느림 속의 긴장감"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한 가지 철학적 대사로 요약된다: "운명은 플라시보(placebo ; 위약효과)다."
주인공(마이클 패스벤더)은 임무를 준비하며, 자신의 모든 행동을 철저히 통제하려는 완벽주의자다. 그는 끊임없이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만의 규칙을 되뇐다. “실수를 하지 말라. 감정을 배제하라. 어떤 경우에도 원칙을 어기지 말라.” 그러나 그의 삶을 지탱하던 철학은 첫 장면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표적 암살에 실패한다.
영화 초반, 주인공은 파리의 한 건물에서 표적을 겨냥하며 조용히 기다린다. 핀처는 이 장면에서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아무도 없는 공간, 앉아 있는 의자, 목표물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몇 시간의 고요함. 관객은 그와 함께 호흡하며, 그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작은 실수 하나로 표적은 사라지고, 그의 철저한 규칙은 금이 간다. 그의 "완벽한 세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서막이다.
세상이 다 내 맘대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화의 중반부, 주인공은 플로리다에서 또 다른 암살자와 대면하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핀처는 이 대결을 통해 액션마저 계산적으로 연출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암살자의 집은 마치 전투장이 된 듯, 조명과 음향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 개 짖는 소리, 그리고 두 남자의 숨소리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압권이다.
노자의 철학에 '천지불인'이라는 게 있다. 대강 '자연은 인자하지 않다. 자연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정도의 의미랄까?
주인공 킬러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은 모두 죽인다.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개(dog)는 끝까지 죽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철저한 규칙 속에서도 불필요한 폭력은 피하는 것일까? 동물보호법을 세계 최초로 만든 히틀러처럼 개를 너무 사랑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실용적인 판단인지 확실하진 않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 후반부, 그는 자신의 철학과 행동에 대해 다시 한번 독백한다. "운명은 플라시보다." 운명은 존재하지 않지만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편이 낫다.
이 대사는 단순히 운명의 부정을 넘어, 그의 존재론적 관점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방식을 외부적 힘에 돌리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삶은 운명도, 우연도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은 그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그의 고독을 더욱 심화시킨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고립된 공간들은 그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성공하고 싶은가? 고독하라!
핀처는 영화 내내 디테일에 집착한다. "세븐"에서 비 내리는 도시의 질감과 "파이트 클럽"의 황폐한 아파트가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겼다면, *"더 킬러"*는 암살자의 고립된 삶을 더욱 미니멀하고 차가운 톤으로 그려낸다. 특히, 그는 도시의 풍경과 주인공의 내면 상태를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관객이 그의 철학적 고뇌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음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임무 중 자주 음악에 몰입하며, 이는 그의 삶이 철저히 계산된 동시에 어느 정도 루틴에 갇혀 있음을 암시한다. 카메라가 킬러의 시선으로 바뀔 때만 볼륨이 높아진다. 킬러에게 음악은 임무에 집중하기 위한 수단이다. 관객은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되는 음악을 들으며 킬러의 내면으로 몰입된다.
"더 킬러"는 데이비드 핀처가 어떻게 한 인물의 내면을 완벽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암살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완벽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인간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인물의 철학적 여정을 담고 있다.
그가 끊임없이 되뇌는 "운명은 플라시보다"라는 대사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선택은 진정으로 당신의 것인가?" 핀처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단순한 스릴러 이상의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냉정하고, 철저하며, 때로는 허무하지만, 그 속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