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B급을 알어?

< 이블 데드 1,2,3 > A급 인 척하며 B급을 논하다

by simpo

이러면 볼까나

# '브루스 캠벨'을 모르신다면 당신은 A급일 확률이 높아.

'이블 데드 시리즈'의 주인공 '애쉬 윌리엄스'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브루스 캠벨.

샘 레이미 감독과는 동향 친구라지 아마? 제작자도 동네 친구일걸.

# 샘 레이미가 이 영화를 찍을 때 스물둘이었다. 난 스물둘에 뭐 했지? A급이었을 거야.

# 예산 35만 달러. 배우들은 촬영 내내 샤워도 못 했고 추위에 떨다 못해 가구를 뜯어 불을 피웠다고. 그런데 전 세계에서 2,900만 달러를 벌었다. 와우!

# 샘 레이미가 직접 감독한 시리즈는 1편 2편 3편.

# 스티븐 킹이 개봉 직후 "올해 최고의 공포 영화"라고 했다. A급 작가가 한 말이니 믿어 주자고.

# 원래 제목은 '죽은 자의 책(Book of the Dead)'이었다. 배급사가 "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애들이 안 볼 거라 해서 제목을 바꿨다. 그 판단이 맞았다는 게 슬프다.

# 이블 데드 2는 1편의 속편인가, 리메이크인가? 레이미 본인도 "그냥 다시 찍은 거야"라고 했다. 이 뻔뻔함이 진짜 B급임을 보여 준다.

# 샘 레이미의 신작 '직장상사 길들이기' 개봉 기념으로 'B급' 문화 현상을 'A급'의 자세로 잘난 체 하며 뻔뻔하게 분석해 보고자 한다.

# 자꾸 B급, B급 하는데, B급 영화의 시작에 대해 알아보자.

A, B를 나누는 기준은 돈이다. 바로 제작비.

1929년 대공황 시기, 할리우드는 불황을 타개할 ‘더블 빌’(Double Bill)이라는 마케팅 전락을 개발했다.

저예산 영화를 일반 상업영화 전후에 함께 상영, 한 편 값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게 했다. 두 영화 중

적은 예산이 들어간 영화를 B Movie라고 불렀다. 싼 게 꼭 비지떡은 아니라는 거... 알지?

우리나라에도 80년대까지는 개봉관보다 두 편 동시 상영관이 서울 변두리나 지방에 훨씬 더 많았다.

뻔뻔 평점

1편 **** 4개 / 2편 ***** 5개 / 3편 **** 4개 (2편은 만점이다. 내가 개봉관에서 봤으니까)


영화 읽기


테네시 주 숲 속 오두막. 샤워도 없고, 난방도 없고, 제대로 된 카메라 지지대도 없다. 샘 레이미는 카메라를 직접 들고 숲 속을 뛰었다. 그 흔들리는 화면이 악령의 시점이 됐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사에 남는 장면이 됐다.

이 역설 하나에 B급 문화의 비밀이 통째로 들어 있다.


(비밀을 들쳐 보이기 전에, 내 분석의 권위를 위해 갖은 폼을 다 잡으며 A급 인양 굴테니 역겨워도 이해하삼)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9년 '구별 짓기'라는 책에서 "취향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계급의 산물이다."라고 했다. 공감한다.

지배계급은 '고급 취향'을 정의하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포장한다. 오페라, 미술관, 정장을 입고 보는 그것들. 이것들이 '교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된다.


이블 데드 1편에서 가장 먼저 악령에게 홀리는 인물이 누구인지 기억하는가. 체릴이다. 그녀는 오두막 한쪽에서 혼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부르디외라면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문화자본을 흉내 내는 중산층의 강박."

악마는 그 순간 체릴의 손을 빼앗는다. 연필이 종이 위를 긁고, 뭔가 알 수 없는 형상을 그린다. 지배적 취향을 내면화하려는 순간, 이미 뭔가에 씐다.

과도한 해석이라고? 나는 뻔뻔하다. 하지만 B급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이런 과도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거 아니겠는가?

1996년, 사회학자 리처드 피터슨은 흥미로운 데이터를 발표했다. 미국의 고학력·고소득 엘리트들이 더 이상 클래식 음악만 듣지 않는다. 컨트리도 듣고, 재즈도 듣고, 헤비메탈도 듣는다. 그의 논문 제목이 직접적이다. "Changing Highbrow Taste: From Snob to Omnivore." 스놉에서 잡식자로. 경제학자 베블렌의 '스노비즘'이 문화의 영역에서 진화하기 시작한 걸까?

이 변화를 촉진한 것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의 부상이었다.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 알고 다 즐길 줄 안다'는 것이 새로운 엘리트 취향이 됐다.

여기서 이블 데드 2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애쉬의 오른손이 악령에 씐다. 손이 혼자 날뛰고, 접시를 깨고, 주인의 얼굴을 쥐어박는다. 애쉬는 자신의 손과 사투를 벌이다 결국 '체인소'(Chainsaw; 전기톱, 이하 체인소)로 손목을 자른다. 그리고 외친다. "Who's laughing now!?"

장면은 B급 문화를 즐기는 오늘날 잡식자들의 초상이다. 그들은 루브르도 알고 이블 데드도 안다. 정장 입고 오페라를 보다가, 집에 돌아와 이 장면에서 배를 잡고 웃는다.

그런데 피터슨은 경고했다. 이것이 진정한 문화의 '민주화'인지 의심스럽다고.

엘리트가 B급을 즐기기 시작하는 순간, B급도 새로운 문화자본이 된다. "나는 이블 데드를 알고, 그 의미도 알고, 웃을 타이밍도 안다." 이 앎 자체가 다시 구별 짓기의 도구가 된다.

체인소로 손을 잘라도, 계급은 다시 자라난다.

영국 문화이론가 딕 헵디지는 1979년 '서브컬처: 스타일의 의미'에서 "서브컬처는 지배문화의 코드를 훔쳐다가 뒤집는다. 펑크족이 안전핀을 귀에 꽂은 것처럼."이라고 주장했다. 헛소리는 아닌 듯하다.

이블 데드 2에서 주인공 애쉬는 잘린 손목에 체인소를 직접 장착한다. 악령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신체를 개조한다.

이것이 헵디지의 서브컬처 미학과 정확히 겹친다.

산업사회가 체인소를 노동의 도구로 생산했다. 애쉬는 그것을 자기 팔에 붙여 신체의 일부로 만든다. 생산 도구가 저항의 무기가 되다니!

이 장면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게임, 만화, 팝 밀리언에서 재현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단순한 그로테스크를 넘어서, "나는 내 몸을 내 방식으로 쓴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아주 재미있는 B급 영화를 A급인 척 분석하며 개 망치고 있다. 알고 있다. 나도 닭살 돋는다)

2편 '아미 오브 다크니스' 엔딩 크레디트 후, 애쉬는 어디로 돌아왔는가. 중세 전쟁도 치르고, 악령 군단도 물리친 그 남자가 돌아온 곳은.

S마트 창고직 노동자.

동료에게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 순간 악령이 다시 나타나고, 애쉬는 산탄총을 꺼내 쏴버린다. 그리고 한마디. "Hail to the king, baby."

이 마지막 장면은 B급 세대의 멘탈리티를 압축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인 줄 안다. 창고직인 줄 안다. 그런데도 자기가 왕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이 슬프지도, 망상도 아니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문화 코드를 비웃는 뻔뻔한 자기 긍정이다.

부르디외가 말한 피지배계급은 지배적 취향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애쉬는 수용하지 않는다. 그는 중세 갑옷 위에 현대식 방탄복을 덧입고, 체인소를 팔에 달고, 마트 창고에서 산탄총을 쏜다.

이것이 요즘 세대가 B급을 즐기는 방식이다. 고급문화를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 비튼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안 본다는 게 아니다. 보면서 비웃는다.

영화 이블 데드의 피는 소품비가 없어서 '카로 시럽'과 음식 색소로 만들었다. 그게 더 붉고, 더 진하고, 더 충격적이었다.

진짜 피보다 가짜 피가 더 무서웠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자산 양극화의 세계에서 진짜 고급문화는 점점 접근 불가능한 것이 돼 간다.

한국 '문화연대' 공동대표 강내희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 문화'에서 지적했듯, 문화적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심화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1981년 영화 '이블 데드'는 이미 게임의 룰을 바꾸기 시작했었다. 35만 달러짜리 가짜가 수백만 달러짜리 진짜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가짜 피가 진짜 공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결핍이 언어를 만들고, 언어가 세대를 만들고, 세대가 문화를 만든다.

Gr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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