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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Mar 06. 2024

마음을 진정하고

[우울증 환자 생존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출근 이틀 째. 고민이 깊어진다. 인사 담당자와 면담을 했다. 담당자는 1년 휴직을 권했다. 물론 우울증이라는 병명으로 휴직이 승인된 사례는 없어서 시도해보는 것이지만, 당장 퇴사를 할 생각이면 시도해보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휴직기간 동안에는 월급이 6-70%정도 나온다고 한다. 정말 좋은 회사다. 아마 어제 부장님이 계셨다면 바로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라고 말했겠지만, 다행인지 부장님이 휴가중이셨다. 질병퇴직 실업급여도 알아봤다. 우선 사전 진단서, 휴직신청, 보직이동신청 등의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나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어야 된다. 이걸 회사에서 확인받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완치 진단서도 필요하다. 이제부터 일할 수 있다는 판단이 되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는 실직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구직/창업 활동에 대한 지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복잡하다. 


저녁에 집에서 남편과 사랑이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 그만두면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엄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느지 지금 회사에서 한갓지게 일을 할 수 있으니 일을 하면서 새로운 단계를 모색해보는게 어떻냐고 했다.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거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보고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 그만두는 걸 생각해보자고 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이고, 누구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업계 선배는 '누구가 나왔다더라' 소문이 돌면, 그 사람을 불러서 프로젝트를 하고, 그러면서 사업이 될 수 있는 과정적 특성이 있다고 말했지만 리스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당장 그만둔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 프로세스를 염두에 두었으나 생활인의 입장에서는 너무 안이한 선택이다. 


이 쯤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의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과거에 한 일은 과거일 뿐, 현재의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거의 내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현재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외모도 성격도 능력도 생각도 모든 것이 변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회사에서 했던 일은, 그리고 할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늘 목마르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다시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렇다면 새로운 일을 해봐야 한다.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기획자로서, 내가 컨텐츠를 가진 것이 아니라 컨텐츠를 가진 예술가와 기획자들을 엮어서 판을 짜는 일을 했던 나로서는 사업화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사업을 한다는 것이 일단 뛰어들어봐야 하는데 뛰어들기가 쉽지가 않다. 테스트하는 기간이 필요한데 그 테스트 기간을 회사 다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강아지 간식 사업도 배워보니 간단치가 않았는데, 일단 실력이 조금 모자라도 오픈하고 채워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단 시작의 허들은 뛰어넘은 것이다. 그런 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전환이 필요하다. 우울증과 조울증을 불러온 무기력과 번아웃을 환기시킬 계기가 필요한 것이다.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해내는 것 밖에 없다. 그럴려면 새로운 미션이 필요하다. 이직을 한다면 다른 직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업계가 같아도 나의 미션이 달라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 부딪히고 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겁낸 적은 없었는데, 요 몇년은 겁이 났었다. 알고 있는 일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다른 일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할 수 있을 것 같다. 겁내지 않고 다시 뛰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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