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나의 욕구는 무엇일까
출근 삼주차. 지난 주에는 간만에 컨디션이 너울을 탔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생각처럼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웠다. 컨디션 점수가 떨어지는 날도 있었지만 저녁에 일기쓰고 기도하는 루틴으로 하루를 마감하다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잘 보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어느정도 점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상담도 다녀오고 병원에서 약도 타오고 성경 공부도 시작하고, 교리수업에서 솔뫼성지도 다녀왔다. 나의 멘토이자 친구인 언니도 만나고. 훌라댄스도 다녀오고. 많은 일을 했다. 그 많은 일들 속에서 내가 왜 이렇게 방황하는지 원인을 찾아보게 되었다. 결론은 '사회적 성취감'이 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의 고통과 방황 속에서 3개월 쉬고 돌아와보니, 회사에서의 나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무작정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이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내가 '사회적 성취감'을 맛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중간 결론에 이르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 친구들은 승진 등을 통해서 사회적 위치를 어느정도 확보했고, 회사 동료들은 승진이나 일의 성취가 아니어도 나와달리 호봉제라 금전치료를 잘 받고 있고, 이도 저도 안 되면 일의 보람이라도 느끼는데 나는 그 어느 것도 성취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처음 이 곳에서 일할 때는 프리랜서를 하다 5년만의 직장이고,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마음 껏 할 수 있어서 금전적 안정성(보상의 적절성과 별개로)과 일의 성취에서 만족이 있었으나, 일의 성취가 여러 투쟁과정과 업무전환 속에서 사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금전적 보상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지고, 승진의 속도가 나이듦에 비례해 저속비행을 하면서 사회적 성취감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 가운데 믿고 따르던 부장님이 동료의 괴롭힘 끝에 건강을 잃으면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걸 보고 사람에 대한 증오와 갈등이 깊어졌고,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싫어한 경험이 없어서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그래도 지금의 부장님을 만나 어느정도 보호를 받으면서 지낸지 5년. 돌봄을 받으면서 회사에 계속 다녔으나 병은 계속 깊어졌고, 나는 사회적 성취와는 동떨어진 사람이 되었다.
날마다 죽기를 바라다가, 죽음이라는 끝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 순간, 내 삶의 여정이 망망대해에 뜬 조각배처럼 막막해졌다. 끝이 정해지지 않은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끝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과정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생각하는 이 모든 순간이 낯설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서도 하고 싶은 일들은 죄다 돈이 안 되는 일이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면서도 쉽게 손과 발, 머리가 움직이지 않으며, 그럼에도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안정감을 찾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 성취감'이라는 큰 기대를 내려놓고 그저 '안정감'이라는 것에만 기대살면 지금 이 직장을 이렇게 다니는 것도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정말 괜찮은지 한번 더 확인한다.
내가 있는 공간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반짝거리는 에너지로 가득찼던 내가 다시 나올 수 있게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그런 내가 다시 나타날지 열심히 찾고 있다. 그 가운데에 나의 일과 사명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내가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