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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Mar 26. 2024

끝이 왔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퇴사합니다

오늘은 휴가를 내고 오후까지 잤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보통날을 감사하게 보냈다. 마음은 지옥이었다. 회사가 내 우울증의 원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회사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신랑이 내가 점점 한참 아플 때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신랑은 옆에서 느낄 수 있었나 보다. 나는 어제 무너졌다. 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견되는 바이다. 경제적으로 당연히 위축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마음이 안 좋아지는 건 옆에 있는 사람한테도 못할 짓이다. 


죽을 때 후회될 거란 생각은 어제 처음 들었다. 신랑이 더 행복한 선택을 하자며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늘 우울증을 달고 살았던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좋아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두려움이 있다. 신랑은 그 두려움을 넘어서지 않으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 때려치우고 그냥 지내고 싶다. 프리랜서를 한다고 해도 누군가가 일을 주지 않으면 백수인게 프리랜서라서 두려움이 있다. 모든 일이 왜 이렇게 두려운 건지 모르겠다. 한 때 늘 자신감에 차 있던 나였는데.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시작인 월요일과 화요일. 또 휴가를 내고 하루종일 잤다. 그나마 오늘은 12시쯤 일어나서 남편이 부탁한 일을 처리하고 사랑이 산책도 시키고 왔다. 그리고 내일 부장님께 회사를 그만둔다고 얘기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새로 런칭하는 지원사업 때문에 퇴사 시기를 의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인수인계도 필요하고, 새로운 사람을 뽑을 때까지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니까.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승진이 된다고 해도 같이 부서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만 같다. 나는 여기서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다. 수년을 고민했다. 그래도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고문하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이젠 힘이 다한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겠나. 무척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힘들게 결정을 못 내리고, 회사에 못 나간 날은 죄책감과 실패감에 휩싸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속 편하게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으며 길을 찾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위안해본다. 


어쩌면 이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다. 과거에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버린 기회소득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고 났을 때 충격받았지만 그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마 이번에도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에는 후회가 있을 수 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거다. 친구가 그랬다. 자신은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외부 스트레스 자극이 적지만, 너는 사람을 너무 잘 믿기 때문에 더 힘들거라고. 맞다.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 모두가 내 마음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회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걸 체감했고, 무너졌고, 상처 받았다. 그래서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한다면 그건 자신이 없다. 그냥 타고 나기를 사람을 잘 믿고 모두가 솔직할 거라고 생각하는 내 성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데 더 집중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나도, 내 가정도 지킬 수 있다. 


이번 선택은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어제 오늘 내가 회사에 가지 않고 컨디션이 떨어지니 남편이 같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나 때문에 남편이 힘들어 하는 걸 나는 볼 수가 없다. 남편혼자 책임지지 않게 하려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 사이에 둘 다 힘들어지게 되는 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고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시간은 짧다. 그 시간을 서로 힘들어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두려움이 아니라 평화와 설레임으로 보내고 싶다. 이 결정이 남편과 나를 위해서 하는 선한 결정이라는 걸 믿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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