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잊지 말자. 내 그릇의 크기를.
엄마는 알츠하이머 의심 단계다. 진료와 검사를 앞두고 있다. 엄마의 우울증을 진중하게, 좀 더 심각하게 대하지 않은 죄책감과 후회가 든다.
5년이다.
그 사이 엄마는 유방암과 불면증, 공황장애, 우울증과 싸우면서 일상생활을 놔버렸고, 아빠는 지속되던 소화불량과 어지러움, 2번의 실신 끝에 응급실을 거쳐 심장박동기 시술을 받고, 선척적인 뇌혈관 수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보청기와 백내장, 녹내장 관리를 하며 삶을 다시 매만져갔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80여년을 살면서 쌓아온 삶의 태도로 응답하며 각자의 시간을 살아냈다. 아빠는 완전한 회복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생활 속 루틴을 만들어 스스로와 엄마를 돌보았고, 엄마는 유방암 발병이 트리거가 되어 오랜 시간 잠영하던 우울증이 폭발하고, 항암치료의 부작용인 인지능력 저하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알츠하이머라는 상채기를 가지게 되었다.
엄마 아빠 모두 80대 중후반으로 넘어가고 있고, 이젠 어떻게 봐도 예전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만큼 노인이 되었다. TV에는 80, 90,100세에도 운동으로 근육을 만들고 젊은이만큼 빨리 걷는 노인들이 등장하지만 엄마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외할아버지보다 훨씬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100세를 사시고 돌아가신 외할머니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느린 템포로 일상을 보내는 노인이 되었다.
지난 주말부터 아빠가 힘들어 보인다. 어디가 특별히 안 좋다기 보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그냥 힘들어 보이는데 뭘 더 해줄 수 있는지 모르겠고, 운동, 아니 산책이라도 하고 노인들 인지능력 훈련을 위해 나오는 문제집을 한장이라도 풀었으면 좋겠는 엄마는, '해보라'는 말보다 같이 움직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든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방문해서 짧은 산책이라도 시키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니 당장 매일 내가 엄마집으로 출근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게 맞는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지,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집중적으로 치료받던 시기는 코로나를 정통으로 맞았던 시기라 보호자 동반이 한 명, 입원은 최대한 보호자 변경 없이 케어를 해야했다. 기동력이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또 응급상황에 가장 빠르게 시간을 낼 수 있는 내가 주동반자가 되었다. 5년의 시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항암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백미러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아 급히 뒤를 돌아보았던 찰나의 순간이다. 온몸이 꺼진 채 창문에 종잇장처럼 붙어있던 엄마. 지는 해의 붉은 조명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던 엄마. 두번째 인상적인 장면은 응급실 베드에 눕혀져 제세동기의 전류를 따라 물고기처럼 튀어오르던 아빠의 몸.
그 모든 순간을 각성상태에서 초인적인 힘으로, 곁에 있던 남편이 깜짝 놀랄 정도로 의연하게 지나왔지만, 지난 주말과 이번주에 본 아빠의 힘에 부친 숨소리와 걸음걸이가 나의 심장을 가장 깊이 떨어지게 했다. 혹시 나의 아빠가, 이 세상을, 나의 세상을 받쳐주던 가장 애정하고 의지하는 나의 아빠가 혹시 스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엄마의 알츠하이머 진료와 검사를 앞두고 연명치료, 요양원, 호스피스 병동, 다양한 죽음에 대해 찾아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엄마가 너무 오래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는데.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아빠에 대한 기도는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떠나려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난다.
지난 5년 사이 나도 우울증과 공황장애, 조울증으로 죽을 고비를 수도없이 넘기다가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 즈음 회사에서 탈출했고, 남편과 시간을 보내며 연착륙해서 회복과 안정을 찾아가며, 사부작 사부작 움직이는 가운데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시 잠에 드는 것이 외롭고 두려워 sns를 하릴없이 헤매다 지쳐 쓰러지는 날이 많아지고,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 중에 훅 날아드는 불안과 걱정에 잠식되기도 한다. 내가 제안하하거나 공유하는 상황의 방식이 나 아닌 다른 연대인들에게는 경우 없거나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언니와 남편의 브레이크가, 문제상황에서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풀악셀을 밟는 나의 습성을 돌아보게 한다.
일도 너무 많이 받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엄마 아빠의 상황도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모든 것의 걱정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 마음과 몸이 받아낼 수 있는 만큼만 해야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다시 새기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