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두 달의 기록
남편이 9월 초순에 취업했다. 100일 동안 남편이 혼자서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처음에는 폐업이 되기 전에 이직을 하게 될 줄 알았고, 그 다음에는 한 달, 길어도 두 달 안에는 취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3개월이 되어가자 마음이 좀 그랬다고 한다. 그의 마지노선은 실업급여 4차 신청 전에 취업되는 것이었고, 다행히 그이의 커리어를 알아보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곳이 나타나 어려운 업계 상황 속에서도 잘 취업이 되었다. 남편은 쉬는 동안 운동도 꾸준히 하고, 책도 많이 읽고, 명상도 하고, 반찬도 하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남편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그냥 남편 주위를 맴맴 돌면서 게으르게 보냈고. 퇴사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 없이 남편과 함께 해서 나는 좋았다. 외롭고 허탈하지도 않았고, 마냥 함께 있어서 좋았다. 퇴사하고 6, 7월은 컨디션이 엄청 좋았다. 점수가 막 3-40점대였다. 그런데 8월 초순부터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10점대에 머무르고 있다. 중간에 내가 기운빠진 걸 보여주기 싫어 차에서 혼자 한 시간, 두 시간씩 지내다 온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남편과 있어서 좋았다. 남편이 취직한 것이 기쁘면서도 혼자서 지낼 날들이 걱정되었다. 한 달이 좀 넘어가고 나니 나도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 같다.
9월에 병원에 가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고 했더니, 아침에 먹는 항우울제 2개가 충돌해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약간 업 시켜주는 약을 빼고 다른 한 알만 먹기로 했고, 필요시 약을 따로 받았다. 필요시 약은 2번 정도 먹었고, 이후로 안정이 되었다. 10월에 병원을 갔을 때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선생님이 얼굴 좋아보인다고 했다. 훌라수업에서도 얼굴이 좋아졌다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면 미주신경과 얼굴 근육이 연결되어 있어 안색이 좋아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컨디션 점수는 계속해서 10점대이지만 그래도 그 범주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서 내가 느끼기에도 많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9월 중순에는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어서 계약직을 구했는데, 하반기 사업이 엎어지면서 한 달만 일하고 계약이 종료되었다. 실직 전 이어서 근무한 이력이 있어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었다. 사람인이나 잡코리아에서 내 이력을 등록하려고 하니 딱 맞아떨어지는 분야가 없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있었던 건가? 싶었다. 20년이나 일했는데 내 일을 꼭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슬펐다. 그 이후 한 달은 아예 취업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았다. 몇 일 전에 잡코리아에 들어가서 문화기획 카테고리를 겨우 찾아서 이력서를 등록하고 한 곳에 취업원서를 넣었다. 아직 취업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시간을 잘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소를 해도 좋고, 명상을 해도 좋고, 기도를 해도 좋고, 일을 해도 좋고, 이력서를 써도 좋고. 하면 좋은 일은 많은데 그냥 눈 앞에 닥친 일만 해치우면서 게으르게 지내고 있다. 그래도 몇 가지 일들이 있어서 아주 손 놓고 지내진 않는다. 병원에서도 일을 많이 하던 사람이 마냥 손 놓고 지내면 무력감이 더 찾아오니 소소한 일이라도 하는 건 좋다고 반색했다. 대신 수면은 중요하니 새벽까지 일하지 말고 수면패턴을 잘 지키라고 했다.
지난 두 달간 엄마 아빠가 치과 치료를 받았다. 이제 엄마 아빠는 어디를 갈 때 누군가와 동행해야 안전한 노인이 되었다. 치료가 있는 날에는 엄마집에 사랑이랑 걸어간 후, 엄마 아빠를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사랑이와 걸어서 돌아왔다. 아빠는 집에서 천천히 러닝머신을 매일 타지만 엄마는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치과가 끝나고 집까지 걸어오기도 하고, 사랑이 핑계를 대고 같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짧은 거리지만 나랑 사랑이 배웅도 해달라고 하면서 엄마를 움직이게 했다. 엄마를 움직이게 하는게 중요한 일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8월 말에 엄마를 데리고 치매안심센터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이 나왔다. 암 수술 이후 우울증과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기억력이 영 떨어졌는데 의사가 부작용이 회복된다고 말했던 1년이 지나도 좋아지지가 않았다. 큰 병원에서 치매안심센터에 가서 기초진단을 받아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결국 알츠하이머 진단이 나온거다. 교수님 진료는 내년 3월에나 가능해서 전문의 진료로 10월 말에 예약을 잡았다. 그 사이 엄마의 깜빡깜빡 에피소드는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언니, 오빠들과 상황을 공유하면서 뭐든 해야겠다 싶지만 뭘 해야할지 모르겠기도 하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시간 날 때마다 엄마랑 산책하고, 외식하는 정도. 암 치료는 올 연말이 5년이니까 완치판정을 앞두고 있는데, 새로운 국면에 처하고 있는 셈이다.
9월에 두 달만의 상담을 했는데, 아무래도 간격이 너무 긴 것 같아서 다시 한 달에 한 번으로 간격을 줄였다. 속 마음을 이야기할 친구도 거의 없고,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상담 선생님이라도 만나야 할 것 같다. 남편과 작은 언니, C 언니 정도가 속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래도 상담 선생님이랑 만날 때는 또 다른 내려놓음이 생기는 것 같아서, 좀 더 꾸준히 상담을 받기로 했다.
몇 일 전, 사랑이랑 엄마 집 가면서 회사를 그만두길 잘 했다 싶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제는 회사에 대한 미련 따위는 없다. 지난 글을 보면 안정적이었던 회사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안 든다. 나 나름의 쓰임이 조금이라도 있고, 남편도 직장에 잘 다니고 있고, 나도 사랑이도 잘 지내고 있고, 무엇보다 엄마 아빠를 곁에서 자주 보고 돌볼 수 있어서 좋다.
죽고 싶다거나 자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8월에 급격히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잠시 충동이 일기는 했으나, 약을 조정하면서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았고, 그 이후로는 잘 지내고 있다. 어떤 날들은 말도 많이 하고 목소리도 한 톤 높아지기도 하면서 컨디션이 좀 오르기도 했다. 중간에 오랜만에 산행을 했는데, 체력은 완전 쓰레기라는 걸 확인했지만, 그 이후 일주일 동안은 몸도 기분도 좋았다. 그래서 산행은 아니어도 엄마집에도 열심히 다니고 좀 더 움직이려고 애썼다.
이제 남은 건 시간이 되면 일어나고, 정해진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라이프 코칭을 받기로 했다. 상담과 코칭을 받으면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두 달 동안 글도 안 써지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냥 날 좀 내버려뒀는데, 찬 바람도 불고 조금씩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으니 꼼지락 꼼지락 움직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