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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Aug 30. 2024

혼란의 시기

[우울증 환자 생존기] 8월, 더위만큼 뒤로 한 걸음

7월 말에 병원에 가서 약을 타야했는데 일정 때문에 놓치고, 8월 초에는 병원 휴가라 1주일을 또 보냈다. 그 사이 나는 수면제만 먹고 있었고, 1주일 동안은 아무 약도 먹지 않았다. 8월 첫 주가 지날 때 즈음 이유없이 몸이 가라앉았다. 예전에 까부러지듯이 몸이 쳐졌다. 한달이나 갔던 여름 감기 끝인건지, 아니면 그것이 코로나였던 것인지 싶을 정도로 몸이 가라앉았다. 거진 10일 경에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씀하셨다. 


"퇴사하고 해방감을 2달 동안 누리고 난 후, 이제 허무함이나 불안감이 올라올 수 있는 시기에요. 그리고 이제 축적되어있던 약물 효과가 빠지면서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걸 수 있어요. 아침에 먹던 좀 더 업시켜주는 항우울제를 다시 먹고, 수면제는 좀 줄여봅시다."


나는 12년을 다니고, 20년을 일한 분야에서 어렵게 손을 놨는데 그 효과가 겨우 2달 간다고? 2달 행복하려고 내가 그 어려운 결정을 한 거라고?


혼란스러웠다. 




약을 안 먹는 동안 온 몸에 가려움증이 돋아서 잠을 자기 어려울 정도였다. 약 먹는 중간에도 가려움증이 조금씩 올라올 때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가려움증이 처음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정수리부터 발톱 끝까지,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처음 정신과 약을 먹고 나서 가려움증이 없어졌던 게 생각났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그런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은 없지만, 정신과 약으로 심리적 안정이 찾아오면서 스트레스가 낮아져 그럴 수 있다고 했었다. 다시 투약을 시작한 후 가려움증이 사라졌다. 도대체 내 몸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몸이 쳐지기 시작하니 마음도 처지기 시작했다. 약을 먹고 컨디션이 조금씩 올라왔지만, 한번 내려가기 시작한 마음은 잘 올라오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데팍신 25mg 항우울제를 추가로 처방받았다. 단약을 바라보면 지난달과는 너무 다른 결과다. 


일기도 써지지 않았다. 기도도 멈췄다. 남편이 내가 일기를 안 쓰면 본인도 일기를 쓸 이유가 없다고 해서 겨우겨우 컨디션 일기만 쓰고 있다. 책도 읽히지 않는다. 하루 종일 쇼츠나 동영상을 보거나 멍때리면서 지냈다.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약도 끊고 그냥 일반인처럼 살게 될거라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상황을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회사 그만뒀다고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때 좀 긴장하긴 했었다. 정말 이 모든게 회사 때문이었다고? 허탈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런데 다시 울감이 찾아오자 회사까지 그만뒀는데 아직도 이러면 어떡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주에는 심장이 엄청 뛴다. 맥박은 정상인데 내가 느끼기에는 심장이 밖으로 뛰어나올 것 같다. 필요시 약이 있다면 먹어야하는 상황 같은데 약이 없다. 남편은 내가 요즘 소화도 안 되고 하니까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혈압, 맥박, 청진 숨소리 모두 이상이 없다며, 불안증 약을 먹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다음주면 병원에 약 타러 가니까 좀 참고 있기로 한다. 




집에서 한껏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회사를 그만둔 것은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확인받고 있다. 만약 휴직중이었거나 휴가였다면 이렇게 게으르게 보내는 시간에도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얽매여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열심히 구직중이다. 면접도 여러 곳에서 보고 있다. 나에게도 잡코리아 같은 곳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천천히 구직을 해보라고 권했다. 나는 공공기관에서만 일한 특수직무라서 어차피 소용없을 거란 생각에 이력서 등록은 안 했었는데 남편 말대로 등록을 좀 해볼까 생각도 든다. 


일을 하고 싶기도 하고 아직 안 하고 싶기도 하다. 20년 경력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버리려니 뭔가 일가를 이루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자책도 하게 된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끝없이 얘기해왔는데, 막상 다른 일을 쉽게 못 찾고 있기도 하다. 나는 하고 싶은게 항상 있었고 그래서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해 온 것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 


하고 싶은게 없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줄 몰랐다. 




8월은 이렇게 보내기로 했다. 9월이 되면 다시 힘내서 일기도 쓰고, 기도도 하고 뭐든 해보기로 다짐해보면서. 지금은 그냥 좀 내버려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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