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버티는 게 답이 아니다
라디오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고, 결국 버티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문구가 흘러나왔다. 아니다. 멈추는 자가 강한 자다. 12년 회사생활 동안 절반이상은 버틴 거다. 2015년부터 상담을 시작했고 2020년부터 투약을 했다. 투약을 한 시기부터는 정말 버티기였다. 어떻게든 그곳에서 살아남아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다. 취미생활, 운동, 독서 등으로 눈을 돌리기도 하면서 그 안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티는 것이 내 생에 의미없다고 생각한 끝에서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두 달만에 수면제를 빼고 모든 약을 단약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몇 년간의 인내로 움푹 파인 내 인생의 한 구덩이가 이토록 빠른 속도로 차오르리란 건 예상하지 못했다.
멈추겠다는 다짐을 하고 인생에 브레이크를 거는 용기를 내는 자가 강한 자다. 자신의 인생에 책임지겠다는 각오고 멈출 용기를 내는 자가 강한 자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많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용기를 내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밖은 시베리아라지만, 어쩌면 나는 시베리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회사 안에서 곪아가고 있다면 밖에서 새로운 공기를 만나고 물에 몸을 담그고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버티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말고 용기를 내시라.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조울에 널뛰지 않는 사람은, 공황으로 죽음에 인접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언젠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평생 같이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갖가지 두려움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얼어붙어가는 자아를 붙들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왜 그런 실재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는 실재하는 병이다. 그것들을 둘러싼 것들이 무엇이건 간에 나의 실존을 위협하는 실체있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깨고 나오려면 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였을 때, 우리는 '선택'이란 것을 하게 된다. 나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살리자고 마음 먹게 되면, 빠져나올 힘이 생긴다. 모든 것에 우선하여 나의 목숨을 살리겠다는 하나의 목표가 생긴 이후에야 모든 것을 멈추고, 정말 내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해보고 죽겠다는 결심이 서야 빠져나올 수 있다. 왜 그렇게 끝 간데까지 가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가보면 알게 된다. 세상에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삶을 중단하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할 마지막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벗어날 수 있다.
왜 어떻게 우울에 빠졌는지는 알 수 없다. 몇 가지 짐작가는 계기야 있겠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저 내가 우울하고, 가끔 조울에 빠지고, 종종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만이 남아 바위를 발목에 묶고 바다에 가라앉는 사람처럼 속수무책이 되어 계속해서 깊은 바다에 빠진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힘을 내어 줄을 끊어내고 천리 길, 만리 길 바닷 속을 수직상승하는데 성공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버티지 마시라. 버티는 것이 힘이 아니다. 버티는 것은 당신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당신이 살아낼 삶, 앞으로 살아낼 삶이 당신을 증명하리라. 그것이 중단에 중단을 거듭하더라도 당신이 충분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삶으로 인도한다면, 망설이지 마시라. 다시 물 속에 빠지더라도 당신은 한 번 더 떠오를 수 있다. 발버둥을 중단하면 된다. 버티기를 중단하면 된다. 당신에게 집중하고 당신에게 삶의 기회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에서 당신을 놓아주면 당신은 살 수 있다. 버티지 마시라.
중단해도 괜찮다. 멈추어도 괜찮다. 당신의 심장은 계속 뛰고, 당신의 세포는 계속 리셋되고 있다. 당신이 아무리 괴롭고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워도, 심지어 당장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그 순간에도, 맥박이 40, 30까지 떨어져도 살 수 있다. 당신이 지금 거기서 버티는 걸 멈추어도 당신의 심장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시라. 괴로움 속에서 버티지 말고 당신을 묶고 있는 포승줄을 끊고 도망가시라. 그래도 괜찮다. 당신의 도망에 인생이 환호하리라! 멈추고 끊어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