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환자 생존기]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고통
전날 밤까지 괜찮았다. 친구들도 만나고 그간 오래된 투병기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친구들의 응원도 받았고, 잘 만나고 왔다. 남편이 아파서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괜찮은 기분으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뜻없이 기운이 없고, 졸렸다. 되도록이면 낮잠을 자지 않았는데, 안 잘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마침 복잡한 일에 관련된 카톡이 왔고, 힘들게 전화를 했다. 기운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일이 잘못되면 그냥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밖에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에 좀 앉아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폭주했다. 글을 썼다. 그러다가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는 내가 당한거고, 나는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나한테 사기친 사람들과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고는 기운이 바닥이 나서 또 쓰러지듯이 잤다. 남편이 돌아올 때쯤 원고 마감을 위해 글을 쓰고 있었는데, 퇴근한 남편이 내 얼굴을 보고는 "또 안 좋아보이네? 무슨 일 있었어?"하고 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말을 했고, 주말 내내 아프던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일찍 누웠다. 나는 남편을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에 또 시달리며, 세상 무거운 닻처럼 내려앉는 기운을 추스려 가까스로 원고를 썼다. 두 시간 후에 남편이 일어나 요즘 야외배변만 하는 사랑이 산책을 간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기운이 없어서 미안해"라고 하자 "나도 몸이 힘드니까 힘이 좀 드네"라고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현실로 나를 다시 붙들어잡았다.
다음 날은 조금 괜찮아졌고, 폭주하던 마음도 약간 수그러졌다.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후에는 움직였다. 마음은 지하에서 죽음과 같이 떠도는데, 몸은 운전을 하고, 타인과 대화를 하고, 결제를 하고, 몇 곳을 돌아 일처리를 했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걸 내내 인지하는 상태로 유령도 사람도 아닌 채로 돌아다녔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회사 생활 중반이후 내내 느낀 감각이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상태. 너무 고통스러웠다. 사랑이를 데리고 나간 길이라 어디 반려견 동반 카페라도 갈까 하다가 괜히 돈쓴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TV를 틀고 소파에 누웠다. 오랜만에 TV를 보는데, 사랑과 전쟁이나 용감한 형사들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니 분리된 채 고통스러운 나를 잊을 수 있었다. 바보상자라더니 극심하게 낱낱이 살아난 감각과 생각들을 죽이는데는 오히려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남편을 전날보다는 밝은 얼굴로 맞이할 수 있었고, 하루 종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산책 못한 사랑이를 데리고 잠깐 비가 그친 사이 산책을 다녀왔다. 오전내내 잤는데도, 약을 먹고 얼마 안 있다가 소파에서 잠들었다.
완치는 없다.
언제 무슨 연유로, 어떻게 조증이 될지, 울증이 될지 알 수 없는 시한 폭탄을 안고 계속 산다. 울증이 오면 전날의 내가 정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조증이었던 건가 의심하고, 조증이 오면 울증이 좋아졌다며 이제 정상이라며 들떠서 산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채,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상태로, 양쪽 다 느끼고 보면서 어쩔 줄 몰라 고통스러운 상태로 계속 산다. 박리된 마음과 몸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쥐어짜내며 산다. 가까스로 붙여놓고, 한숨 돌리면 어느 순간 또 다른 외부파장이 한번 들이치고, 그럼 아픈 물고기 비늘이 떨어져나가듯이 다시 마음과 몸이 박리되고, 그럼 또 애를 써서 붙여놓고. 생을 사는 한 완치란 없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너무 많은 자아가 몸과 마음에서, 머리에서 소리를 낸다. 한 놈은 나를 죽이겠다고 하고, 한 놈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하고, 한 놈은 그냥 조용히 좀 살자고 하고, 한 놈은 지금 당장 일을 하라고 하고, 한 놈은 기도를 하고, 한 놈은 저주를 하고, 한 놈은.. 한 놈은.. 그렇게 격전지가 된 나는 어느 순간 방전된 듯이 쓰러져버린다. 감정의 파고가 몸의 고통이 되고 몸의 고통이 감정의 칼날이 되고, 머리는 이 모든 걸 하나도 놓치지 않다가 갑자기 꺼져버린다.
지치고 힘이 든다. 상태가 나빠지는 것도, 상태가 좋아지는 것도 이젠 모두 따라잡기가 힘이 든다.
친구의 가족도 나처럼 아픈데, 병원과 상담을 거부한다고 했다. 나에게 "너 진짜 장하다. 그래도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10년이나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장하다.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가. 나는 의지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나. 미치도록 살고 싶었나. 죽고 싶다는 건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려고 모든 걸 하고, 남편과 상담사에게 그렇게 매달렸나.
진심으로 완치는 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어렴풋이 약은 계속 먹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진짜 평생 이 고통의 시간을 맞이하고 보내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슬프고 애잔하다.
힘이 안 나는데 그래도 모래알 한알만큼이라도 힘이 남아있다면, 힘을 내야지. 남편이 나 때문에 힘 빠지는 일이 없게, 남편이 나 때문에 힘들지 않게. 내가 한 결혼이니까, 나도 책임을 다해야지. 나 같은 사람이랑 사는 사람의 어려움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상상할 수는 있으니까.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