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환자 생존기] 울증이 지나갈 때까지
기록을 뒤져보니 9월 중순부터 울증이 찾아들어 20일 전후로 절정을 달리다가 더 이상 일어서려고 애를 쓰지 않고, 그저 넘어진 그자리에 납작 엎드려 지냈다. 긴 추석연휴기간이 있어서 부담을 좀 더 내려놓고 그냥 그렇게 바닥에 붙어있었다. 9월 말에 병원에서 약을 바꿨다. 조울증 약의 용량을 다시 절반으로 줄이고, 항우울제를 추가했다. 너무 많이 자서 수면을 길게 유도하는 수면제도 하나 뺐다. 항우울제는 최소 2주가 지나야 반응하는 것이 통상적이라 그저 시간을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루에 하나의 일정만 소화하면서 내내 잠을 잤다. 그렇게 약을 바꾼지 2주가 좀 넘었고, 어제서야 조금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거의 한달을 울증으로 제대로 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마치 울증 전의 나는 또 다른 인격체였던 것처럼 또 지나간 사람이 되었다. 그 사이 글 쓰는 작업이 있었는데, 글을 쓰고도 내 글 같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뭐가 다른 건지 알 수 없어 찝찝했는데, 친한 언니가 알려주었다. 글이 뚝뚝 끊긴다고. 길고 짧은 문장의 리듬이 없어지고 모든 문장을 뚝뚝 짧게 쳐서 읽는 흐름이 끊긴다고,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마도 내가 울증이 온 이후 집중력이 떨어지고 생각을 길게 가져갈 수 없어서 그랬나보다. 그래서 나도 내 글이 낯설었나보다. 고맙다"고 했다. 집에 와서 발행된 글을 읽어보니 정말 모든 문장이 단도처럼 짧기 그지없어, 수많은 단도가 박힌 글이 되고 말았다. 글에 마음이라고는 1도 없는, 요즘 AI도 이렇게는 안 쓸 것 같은, 기계가 쓴 글 같았다.
울증은 마음이 없어지는 병이다. 생각은 툭툭 솟아오르는데, 마음이 없다. 마음이 없으니 표정도 없다. 남편은 종종 '또 표정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도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에 표정이 없어지는 걸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마음이 없어지니 글을 쓸 수도, 기도를 할 수도 없다. 마음이 없으니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의지와는 다른 문제다. 모든 것이 텅 비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명상에서 추구하는 '공' 또는 '무'와는 다른 것 같은데, 어떻게 다른 것인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상담 선생님은 그래서 '하고싶다'는 이유로 했던 달리기나, 명상이나, 글쓰기를 '그냥 한다'는 수준의 루틴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울증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했던 성경공부, 훌라, 성당미사 참석처럼 '그냥 하는 일'로 일상을 채우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나는 많은 일들을 직관, 마음에 의존해서 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감정이 요동치는대로 뿌리없는 나무처럼 삶이 흔들린 거다. 마음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양하게 만들고, 일상 곳곳에 배치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납작 엎드려 지낸다는 건, 어떤 마음의 비늘도 일어나지 않게 그냥 내버려둔다는 거다. 아무것도 건들지 않고, 바람 한점도 조심하면서 그냥 내버려둔다는 거다. 그렇게 지냈다. 끊임없는 외부 자극과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지만, 최대한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신경버튼과 신체버튼, 마음버튼을 끄고, 마치 두꺼비집이 내려간 것처럼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몸으로, 모든 신경세포로, 모든 살아있는 감각 사이사이로, 뼈저리게 알았다. 울증은 그 자체로 나라는 걸. 내 인생을 동행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냥 그자체로도 나라는 걸. 그러니까 이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인지했던 자아정체성을 수정해야 한다는 걸. 나 자신인 많은 것들 중에 울증도 하나이므로, 나 자신이 아닌 많은 것들처럼 울증도 내가 아니라는 걸. 이 고통과 침통함과 괴로움과 절망을 넘어선 그 너머에 있는 나를 찾아야 한다는 걸.
명상에서 말하는 제 3의 눈이 되는 '나'를 찾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분리된 채 고통스러운 나와 그 고통을 인지하는 나, 그래서 괴롭고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지는 수많은 나의 반복은 어쩌면 명상하는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그런 길일지도 모른다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린다. 이건 정신분열이 아니라 깨어서 깨달아가는 과정의 하나일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지나간 시간의 모두 다른 인격체인 것 같은 과거의 수많은 나들 너머에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한 하나의 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나'가 참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면서 이 삶을 지켜냈구나 싶었다. 그래서 신부님이 내게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줄 자격이 충분하다고 한 건가보다 싶고, 그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너무 불쌍하고 외롭고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한달의 울증 투병 끝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르지만, 이 강렬한 체험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문을 열어젖힌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