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페이지가 종일 페이지가 되는 것에 관하여

아티스트 웨이 - 줄리아 카메론

by 강마

읽지 못한 책이 차고 넘쳐서 책을 사지 않기로 하고 허벅지를 꾹꾹 찌르며 윌라 서비스로 마음을 달래는 중에 포인트가 생겨 독립서점에서 책을 한권 살 수 있었다. 고르고 골라 '중년 이후의 삶에서 창조성과 의미를 발견하기 -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를 샀다.



'아티스트 웨이'가 상당한 스테디셀러이고, 주변에서 워낙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읽어본적은 없는데, '중년 이후의 삶'에 필요한 아티스트 웨이라길래 사 봤다. 이제 서론을 읽었고 1주일에 한 챕터씩 읽으면 된다.


주요 도구는 모닝페이지, 아티스트데이트, 산책인데 그 중에서 모닝페이지를 먼저 시작했다. 원래 30분 쓰기를 꽤 오래하고 있어서 쉽게 생각했는데, A4 3장을 쓰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30분동안 A4 1장을 다 못채우는데, 3장을 쓰라니 쓰다가 배고파서 계란 하나 까먹고, 쓰다가 또 배고파서 밥 먹고, 또 써야 야한다. 작가가 원한 건 이런 건 아니겠지만 암튼 어제도 저녁 내내 썼는데, 오늘도 오전 내내 쓰게 생겼다.


그런데 3장을 쓰다보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다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지난 내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고, 지금의 나를 생각하고 있다.


먼저 이제 회사에서 그만 둔 것은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퇴사 허니문이 드디어 1년 반만에 끝났다. 그래서 마음이 좋다. 회사에서 겪은 괴로움과 슬픔, 분노, 상처가 모두 지난 일이 되었고, 더불어 회사에서 있었던 영광스러운 나 자신과 일도 지난 일이 되어서 더 이상 그렇게 큰 감흥이 없기에 좋다. 지나간 일을 지나간 일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서야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제주에서 한달을 혼자 보낸 적이 있다. 아침 침먹고 나가서 깜깜해질 밤까지 바닷가와 올레길을 하루종일 걸어다니던 시간이 있었다. 들들 볶이고, 스스로도 들들 볶고, 늘 긴장하며 살면서 쫓기는 사슴마냥 우울과 불안으로 내달리던 나를 좀 놓아주려 내려갔었다. 당시에는 제주 한달살기 같은 건 없던 때라 전통적인 연세 내는 집 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친구의 지인을 통해 한달살이 집을 구했다. 그 때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장에서 장 봐다가 밥해먹고, 등하교 하는 아이들 지켜보며 커피마시고, 마당에 이불널고, 햇빛 받으며 멍때리고, 아무것도 할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낸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 외로움이란 걸 가르쳐줬고, 고독함과 정적, 그리고 세계와 자연과 나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엄청나게 많은 대화를 나와 나누었던 것 같다. 이후 제주는 내 고향이 되었고, 의미가 있을 때마다 제주에 가게 되었다. 마지막에 제주에 간 건 몇 년 전 결혼기념일 여행이었는데, 거기서 그림을 하나 사 왔다. 그리고 이제는 제주도도 마음에서 놔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모닝페이퍼를 쓰면서 제주 그림을 보고, 제주 그림이 나를 어떻게 살렸는지 생각해보면서, 결국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제주가 나를 살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의 나는 그 오래 전 단절을 위해 제주를 찾은 나와는 다르지만, 또 같다. 15년이 다 되어가는 사이 많은 일을 통과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고, 그 일을 통과하며 덕지덕지 붙은 딱지들이 떨어져나가며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한달에 한번 가는 상담이지만, 최근의 상담에서도 내게서 변치않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이 모닝 페이지인척 하는 종일 페이지는 그런 나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일주일에 2번, 한 시간 정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거다. 미술관, 공연장이 아니어도 된다. 작은 소품샵이나 마트도 좋다. 어쨌든 새로운 곳을 가보는 거다. 나랑 데이트하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이랑 하루종일 붙어있고, 내가 나갈 때 항상 같이 나가고 싶어해서 떼놓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다시 나와의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어서 빨리 해 보고 싶다.


산책은 하루 20분, 나 혼자 하는 산책이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꽤 오래 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그 오래 전 제주에서는 이 모든 걸 하고 있었던 거다. 매일 일기를 쓰고, 새로운 곳에 혼자 가고, 새로운 곳을 혼자 산책하며 지낸거다. 일상과 단절하지 않고도 해볼 수 있다니, 진짜로 해보고 싶다.


우선, 오늘의 모닝페이지부터 마무리하고. 아직 한장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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