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피에타, 그리고 나의 피에타

그녀를 지키다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by 강마

병렬독서 중이다. 그 중 며칠을 집중하며 읽어내린 책이 있다. 전자책으로 총 14시간 28분동안 읽었고,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새벽 4-5시까지, 택시를 기다리면서, 엘베를 타고, 길을 걸으며 읽었다.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강렬한 책이 나타났고, 심지어 재독을 진짜 안 하는 사람인 내가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063712


표지가 예뻤다. 종이책으로는 6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유럽의 소설이겠거니 하며 읽었다. 그러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이 책을 읽으려고 낮 동안 미친듯이 자료를 보고, 보고서를 다듬고, 12시에는 침대에 누웠다. 이 책의 매력은 점점 빠져드는 이야기, 격동의 시대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조금 다른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모두 각자의 이유로 외롭고 모두 각자의 이유로 사랑하고 모두 각자의 이유로 서로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여서였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책을 덮는 그 순간,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내가 본 그 존재들 이상의 가치가 있었음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 폭발한다. 그래서 이 책은 끝까지 다 읽어야지만, 책을 덮어야지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갖가지 시대의 인물과 속어들이 등장해서 각주가 40여개 달리는데, 전자책으로 보면 바로바로 찾아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소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건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드문 일인데, 막바지에 이르면서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넘어가려다가도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밑줄을 그을 수 밖에 없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스포일러 당하면 책이 가진 가치가 바랠 수 있어서 절대 스포일러 당하기 전에 빨리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 읽고 나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라는 작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4권의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국내에는 이 책과 '나의 여왕'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다. 시간을 두고 읽어보고 싶다. 후기에 전자책으로 읽고 종이책을 샀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러고 싶다.


피에타 상이 주요 소재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 상을 처음 봤던 때가 22살 정도였다. 그 때는 신자도 아니었는데, 보자마자 빨려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믈을 흘리며 한참을 서있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 이 피에타를 직접 접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법륜 스님의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깨달음의 장' 수련은 평생 딱 한번만 참가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있었던 수련과정은 수련에 참가하지 않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 커뮤니티만의 라포가 있다. 이는 아직 수련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데, 같은 이유로 이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나누고 싶은 게 많은데 말할 수가 없다.


비밀의 숨겨진 성경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면서 동시에,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현존하는 예수와 성모와 베드로와 기타 등등의 인물을 깨치게 되는 엄청난 글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대림절에 꼭 맞는 이야기였고 결코 잊히지 않을 이야기이다.



<밑줄긋기>


* 도도 새는 바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졌어. 너무 쉬운 먹잇감이었던 거지. 사라지고 싶지 않으면 나 자신을 잘 돌봐야 해.


*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획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미모. 네가 단 한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네계 품은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신을 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그렇게 계속 달려야만 하는 건 아니란다.


* 악의 아름드움은 바로 악이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결코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악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 말에는 의미가 있어, 미모. 명칭을 불러주는 건 그걸 이해한다는 거야. <바람이 부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 하지만 엠마누엘레는 그저 엠마누엘레가 아니었다. 엠마누엘엘레는 하나의 관념이었다. 조금은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어긋남, 비정상이랄까. 혹은 아직 도래한 적 없는 정상성의 ㅍ현, 다른 세상을 알리는 선구자로서, 그 세상에서는 엠마누엘레와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이 저지르는 나쁜 짓이라고는 지나치게 열렬하게 상대방을 끌어안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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