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와 '일상'의 접점

양면의 조개껍데기 - 김초엽

by 강마

친구 중에 SF 마니아가 있어서 그를 통해 몇 권의 SF를 시도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읽어낸 것은 없었다. 특히 대서사시로 완성되는 '고전'이라는 것들에는 더욱 취약했다. 그래서 몇 개의 시리즈는 다 읽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주기도 하고, 몇 개의 시리즈는 아직도 책장에 고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햇빛에 표지가 바래면서..


김초엽 작가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었다. 미디어에도 많이 언급되었으니까. "우리에게는 김초엽 작가가 있다!"고 하는 SF 마니아와 과학자들도 있었고. 그래서 찜만 해놓고 있다가, 집안 일을 하면서 들을 오디오북으로 골랐다.



재미있었다. 상상력을 자극했고, 왜 과학자들이 김초엽 작가 이야기를 하는지도 알겠고, 왜 작가들이 김초엽 작가를 좋아하는지도 알겠고, 왜 독자들이 김초엽 작가를 좋아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단편집인데 하나같이 독특하고, 색깔이 다 달랐다. 표지에 어른거리는 무지개빛처럼. 마지막 작가의 말에 각 소설의 집필동기를 언급하는데 그것마저도 흥미롭다.


그동안 내가 만난 SF는 엄청난 세계관을 가진 것들 위주였고, 도대체 왜 싸우는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삼국지'를 완독하지 못하고, '은하영웅전설'을 완독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다가갈 수 없는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김초엽 작가의 글들은 달랐다. '일상'의 작은 부분과 SF를 연결하는 재능이 남다르다고 느꼈다. 이상문학상이나 현대문학상 같은 '지금의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배경은 그렇지 않은데도. 배경은 달라도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끝없이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소설들을 어느 순간 놓은 이유는 그들이 보여주는 지금 우리사회의 아픔들이 너무 생생해서, 그 아픔들을 감당해낼 마음의 여유와 힘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김초엽 작가의 글은 현재의 소설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다리를 놔주는 것 같았다. 용기를 내서 한번 더 저쪽 세계에 가보지 않겠냐고. 그리고 어쩌면 SF도 좀 더 자주 시도해보고.



그래서 다음에 읽은 책도 SF였는데..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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