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 폴 오스터
폴 오스터를 명확하게 인지한 건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 때문이었을 거다. 얼마 전 10주년 공연을 한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부터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신형철 평론가가 진행하던 '문학동네 문학이야기'를 주구장창 듣고 또 듣던 시절이었다. 궁금하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읽어본 적은 없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읽은 책들이 있긴 있다. 어쨌든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다고 생각하며 고른 것이 작가의 유작이었다. 표지가 예뻤다. 이제보니 얼굴이었네..
삶의 에너지톤이 많이 다르고, 서술시점도 다르고, 많은 것이 다르지만 어쩐지 '스토너' 생각을 계속 하면서 읽었다. 교수라는 직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계속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카테고리가 자동생성되어서일까?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그녀와 함께할 때의 충만함을 읽으며 나와 남편에 대한 생각을 했다. 바움카트너 부부만큼 일찍 만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매우 늦게 만났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어느 쪽이 되든 혼자 남을 사람에 대해서. '같이 죽어야 된다'고 말하는 이상한 사람, '내가 먼저 죽겠다'고 말하는 이기적인 사람과 잘도 살아내고 있는 우리 남편이 만약 바움가트너의 입장이 된다면, 그러면 바움가트너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며..
소설이 시작되면서 다치고,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인연이 만들어지고, 소설이 끝날 즈음 다치고,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질 것을 비춘다. 그의 인생이 통째로 인연과 인연이 이어져서 만들어졌기에, 그가 죽는 날까지 그럴 것임을 상상했다.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끼만큼이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퇴한 바움가트너의 '노년'이 나에게도 10여년만 있으면 찾아올 것이라서 더 생생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스토너'를 읽을 때만 해도 거진 10년 전이어서 '스토너'도 지금 읽으면 그의 삶 중에 다른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될 듯 하다. 나도 나이가 들기는 들었나보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시간 역순으로 읽어봐도 좋겠다. 자신의 유작이 될 걸 예상하고 쓴 소설이 이런 것이라면, 그의 생각을 따라 더 멀리 가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