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 시몬 드 보부아르
해야할 일이 쌓이면서 책을 뒤적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얼마 전부터 윌라를 이용해서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무려 50여개나 펼쳐놓고 병렬독서를 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읽은 책 중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독하고 다시 소설을 읽게 밀어준 책이다.
올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는 지인의 추천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가 되었다. 19세 이상의 자기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건강할 때' 작성할 것을 권하는 법적 효력을 가진 서류 작성을 돕는 상담사다. '임종과정'에 들었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때, 더 이상의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을 미리 국가시스템에 등록해놓는 것인데, 2018년 법제화되었고, 현재는 300만명이 등록한 상태다. 2018년 법제화 되기 전에 민간에서 의향서 작성과 웰다잉에 관한 논의가 계속된 결과다. 우리 부모님도 법제화 되기 전에 이미 작성해놓으셨고, 법제화 된 후 정식으로 등록하셨다. 어느 날에 자식들을 다 불러놓고 이런 것을 작성했으니, 나중에 병원에서 본인들이 의식이 없더라도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10여년 전부터 주변사람들과 많이 나눠왔다. 나이듦을 주제로 작업하는 예술가, 장례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익사업화 하고 싶어하는 기획자, 죽음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임을 꾸리고 싶은 기획자, 웰다잉과 죽음준비교육을 하는 복지사 등 10년 전 사업기획을 통해 만난 전문가들과 여전히 관심사를 나누곤 한다. 그리고, 주변에 점점 더 죽음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목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나누게 된다.
이 책을 고른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어렵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골랐는데 너무나 섬세하고 사실적인 현상과 감정에 관한 서술로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엄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봐야하는 보호자이자, 딸로서, 여자로서, 인간을로서 느끼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감정과 한 사람이 죽기까지 겪어내야 하는 신체적 기능상실과 고통, 삶에 대한 의지와 집념, 그리고 신앙과 죽음이라는 실체에 대한 다양한 면모를 생각할 수 있는 길지 않은 글이다.
우리 대부분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한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집에서 죽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시대라던.. 이게 맞냐며 사회적 의문을 제기하는 그 의사의 이야기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나의 죽음과 지인, 가족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모든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닥쳐야만 하는 것, 부당한 폭력이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의 죽음을 예행연습하고 있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존재라는 말을 너무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더욱 구체적인 삶의 한 순간이자 시기임을 상상하고, 가정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처할 상황을 이야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러나 막상 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가 될지,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작가의 평생 동반자였던 사르트르가 '보부아르가 쓴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했다는 설명이 있는데, 작가의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