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가성치매라 하는 이유

그러니까 나는 지난 몇 년을 치매환자로 지냈던 거다

by 강마

엄마의 알츠하이머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서 1년만에 다시 검사를 했다. 결과는 전두엽 기능의 확실한 저하. 어지럽다며 하루 종일 누워있고, 씻지도 않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대화는 당연히 관심이 없는 그 모든 것들이 전두엽 기능의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 결과를 보면서 나의 지난 날이 스쳐지나갔다. 증상이 똑같다. 회사를 그만두기 마지막 몇 년은 씻지도 않았다. 집에서 입고 자던 원피스를 입고, 겨우 고양이 세수만 하고 단화에 발을 대충 구겨넣고, 회사에 갔다. 그렇게 5일씩, 일주일씩 씻지도 않고 옷도 안 갈아입고 혼이 나간 사람처럼, 껍데기처럼 흐느적흐느적 걸어다녔다.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고, 그러니 대화도 하지 않고, 약을 복용중인데 일도 별로 없으니 내가 가장 혐오하던 사무실에서 낮잠자는 사람이 되었다. 약 기운이 몰려왔다.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도 먹지 않고, 퇴근할 때까지 한번도 안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출근이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오후에 출근하다가, 오후에 출근하겠다고 했다가, 결근을 하는 일이 반복되고, 결국 병가를 내고, 휴직을 했다.


우울증과 치매는 둘다 뇌의 외형적 변화가 일어난다. 둘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둘다 해마가 축소되는 걸 MRI로 실제 관측할 수 있다. 나는 많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 잃어버린 기억들은 대부분 살아나지 않는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친구가 우리 집에 왔었다는데, 나는 그 사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40년을 열고 들어간 엄마집 비밀번호를 당췌 열 수 없다거나, 우리집 비밀번호는 당연하고, 관심이 없으니 딱히 기억할 노력도 하지 않았고, 점점 많은 것들을 기억할 노력을 하지 않으니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무심히 흘러가고, 그러니 그 시공간에 내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나는 없었던 셈이다. 나도 내가 어디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라면, 우울증으로 축소된 해마는 약간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과다로 인한 신경회로 위축이 원인이므로,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조절되면 해마 기능이 돌아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전두엽 기능 저하다. 전두엽은 계획 세우기, 감정조절, 실행 능력 등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지휘자' 역할을 하는데, 이 모든 기능이 떨어지면 매사 의욕이 없고, 멍한 상태가 된다. 일상 생활 불가능.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사실은 숨 쉬는 것도 힘이 드는 상태가 되어 시체처럼 몇날 몇일을 누워서 지낸다.


내가 엄마를 보며 몇 년 전부터 우울증이 심한 것 같다고 한 이유도, 최근까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난 이후에도 우울증을 고치면 좀 낫지 않을까 했던 이유도 내가 몸으로 느낀 나를 엄마가 소파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였는데, 협진중인 정신과 선생님이 엄마를 확실하거나 심각한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않고, 약도 소극적으로 쓴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신경과에서 너무 명명백백하게 알츠하이머, 즉 아밀로이드 베타 등 독성 단백질 축적으로 인한 신경세포 사멸로 판명이 났으므로 같은 증상이어도 병은 달랐기 때문이란 걸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면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도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거나 막 짐승처럼 소리지르며 울기도 했다. 대부분 혼자 있을 때이긴 했지만, 나도 그런 내가 당황스럽고 낯선데, 사랑이는 더 낯설고 무서워서 나를 향해서 막 짖기도 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지간한 초기 치매환자가 할 법한 일은 거의 다 했다. 냄비 태워먹기 같은 건 기본이다. 중증 우울증이 회복되는 줄 알았는데, 조울증으로 번지며 울증의 낙폭이 더 커졌고, 지구핵을 뚫을 기세로 우울해지며 거의 사람의 기능을 잃어갔다.


병가를 내고, 휴직을 하고, 퇴사를 하면서 다시 사람 꼴을 갖춰나갔다. 여전히 100%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해마와 전두엽이 조금은 제 기능이 돌아왔다고 느낀다. 매일 양치질을 두번씩 하고, 이틀에 한번은 씻고, 그래도 외출복과 내복의 구분이 있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사람들과 대화도 하니까.


남편에게 "그러니까, 내가 엄마처럼, 이를테면 치매환자처럼 몇 년을 지낸거지?" 물었다.

"그랬지. 지금 어머님이랑 거의 똑같았지. 아무것도 안 하고 반응도 없고 누워만 있었으니까"


남편은 그런 나를 어떻게 견뎠을까. 난 소파에 누워있는 엄마만 봐도 복장이 뒤집어지는데. 어쩌면 그래서 나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날린거겠지. 다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치료를 받으면서도 병의 코드만 자꾸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움직였으니까.


지난 주에는 병원도, 상담도 이제는 간격을 좀 늘리고, 약도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나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채로, 어쩌면 완성되지 못한 채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받아야 한다.


엄마처럼 알츠하이머가 걸릴까봐 무섭다. 나는 돌봐줄 자녀도 없는데. 그래서 중간에 김창옥이 알츠하이머 검사를 받았다고 했을 때 내가 그렇게 충격받았던 거다. 이렇게 깊은 우울이 알츠하이머가 될까봐. 보통 노인성 우울이 알츠하이머로 연결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즘은 지구 핵까지는 가지 않고 그래도 지표면에는 머무르는 것 같은데, 나의 부족하지만 그래도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해마와 전두엽을 환영하고, 축하하는 파티라도 해야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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