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몸부터 챙겨보고
꽤 괜찮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말부터 시작된 피부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 점점 심해져서 참을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 무서울 정도가 되었고, 병원에 갔고, 알러지가 아니라 면역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또 검사를 하고 비타민D, 마그네슘, 비타민 B를 몸 속에 넣고, 자가면역치료를 위해서 36시간 단식도 했다. 일주일에 2번씩 4번을 했고, 무엇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몰라도 혹은 나을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피부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그런데 몸이 무척 피곤하고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거나 가끔 가슴이 답답하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서 혈압을 재보니 원래 혈압과 큰 차이는 없는데(대충 늘 저혈압이라) 증상은 딱 저혈압 증상이라 다 내려놓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좀 쉬었다. 손이 너무 가렵다 못해 뼈속까지 아프다가, 굳은살이 들떠서 부딪히기만 해도 아프고, 형광펜만 쥐어도 닿는 곳이 가렵고 아프니 뭘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까지 몸도 마음도, 정신도 다 좋았는데, 설명절에 들어서며 몸이 더 안 좋아졌고, 그러니까 얼굴 표정도 지치고, 말소리도 기운이 없고, 그러니까 남편도 힘들어하고, 그걸 보니 또 내 마음이 안 좋고, 엄마를 보고오는 날은 지난 날의 나와 겹쳐서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마음이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뒤죽박죽이 되고, 그러니까 54일 묵주기도를 거의 마쳐가는 시점에서 다시 삶과 죽음이 흔들리고, 자면서도 계속 온 몸이 돌아가면서 가려우니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너무 피곤하고, 그러니까 햇빛이 좋아도 밖에 나갈 기운이 없고, 나간다해도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고. 어딘가 익숙한 흐름에 올라서고 있는 내가 보이니까, 그런 나를 또 건져낼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힘이 들고.
그래도 뭐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몸이 건강해지면 또 많은 것들이 균형을 잡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은 하고 있다. 남편은 우선, 뭘 좀 잘 챙겨먹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챙겨먹는게 귀찮은 건 둘째치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뭘 먹어도 맛이 없다. 그러니까 진짜 배고파서 먹는 거다. 그래도 기왕이면 몸에 좋은 거(어차피 피부 뒤집어지고 난 다음에는 밀가루랑 유제품, 돼지고기, 참치 등은 최대한 피하고 있기 때문에) 챙겨서 먹으면 좋겠는데, 기력이 없다. 의욕도 없고.
빅터 프랭클 박사의 로고테라피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몸과 마음은 상처받고 아플 수 있지만, 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영spirit은 절대 상처받고 아프지 않으며, 단지 몸과 마음의 상처로 인해 영이 희미하게 보이거나 가려질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 자신만의 영을 찾고, 닦고, 빛나게 해주면 누구라도, 그사람이 우울증이든, 조울증이든, 조현병이든 무엇으로 아프던지 상관없이 그 사람만의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사랑의 관계만이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도 한다. 모든 어떤 큰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을 찾고 의미를 찾는 것이 삶을 계속 살게 한다는 로고테라피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지난 날의 모든 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가져다 준 것들을 다시 생각해봤다. 끝까지 생각을 다 가져가지는 못했지만.(나중에 따로 정리해봐야겠다)
내가 기운이 없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남편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나도 알고 싶다. 하지만 정확히 딱 짚어서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남편은 이제 내가 아프면 화가 나는 것 같다. 내가 기운이 없거나 얼굴 표정이 없어지거나, 몸이 아프면 지치고 화가 나는 모양이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고, 그 중에 1/3은 거의 치매환자와 사는 것처럼 살았으니까 '그럴 수 있다, 지겹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겠지'하면서도 당장 내가 뭘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음이 나도 답답하고, 나도 힘이 드니까, 이제 더는 못 받아줄만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하고, 이럴바엔 어디가서 혼자서 아프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떻게 둘 다 엄청 노력해서 다시 분위기를 회복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운데, 나는 자꾸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상처받지 않고, 아프지 않는 내 영혼은 무엇이며,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 걸까. 평생을 골골대는 내가 그래도 몸이 건강하면 더 쉽게 찾아질까? 그나마 그게 희망일까? 우울증과 조울증이 깊은 골짜기에서는 '나가서 움직여라, 햇빛봐라, 운동해라'는 말들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가서 산책을 하면 경사 10도짜리 언덕을 오르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고, 몸이 건강한지 안한지에 대한 감각은 아예 제로였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하게는 내 몸을 포함해서 모든 것에 대한 현실감각이 제로였기 때문에, 그 시간 그 곳에 있었지만 없었기 때문에 내 몸에 대한 감각은 그저 늘 밧데리가 닳은 상태의 흐느적하고 물먹은 목화솜같이 까부러지는 상태였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고, 몸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당췌 알수가, 느낄 수가, 경험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퇴사를 하고, 모든 감각들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한 때 달리기도 하고, 몸을 조금씩 쓰면서 '아.. 이런 말이었구나.. '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몸을 움직여서 뭔가 도움이 된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려면 중증 우울증으로 가기 전이나, 중증 우울증을 벗어난 뒤에나 가능한 이야기인 거다. 사실 내가 달리기를 할 때를 되돌아보면 조증삽화가 있던 시기이기는 했다. 울증이 찾아오면서 달리기도 멈추고 많은 것이 멈춘 상태에서 회복기에 들어선지 한참임에도 다시 움직임을 주려니 힘이 든다. 한발 내딛기가 쉽지가 않다. 그나마 책을 계속 읽고 있는 것이 아직 최악은 아니라는 신호라고 느낄 뿐. 오늘은 남편이 오기 전에 5분이라도 혼자 나가봐야겠다. 어쨌든 살아있는 동안은 멀쩡하게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