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모습으로 아프고, 각자의 삶으로 위로한다

우울증 환자의 배우자로 산다는 건..

by 강마

오늘 컨디션 난조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쉬다가, 보건복지부에서 만든 숏드라마 한편이 화제라기에, 단박에 600만명을 넘었다기에, 우울증 부부를 다루고 있다기에 들어가 보았다.


와이프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남편이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며 묵묵히 아내의 우울증을 받아내고 우울증을 공부하고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 한다. 우울증을 앓는 아내의 연기가 꽤나 현실감 있고, 남편도 감정을 잘 전달한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보고, 댓글들을 읽었다.


세바시 강연에도 나오고, 책도 냈다는 남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밝혔음에도, '세상에 저런 남편은 유니콘이다' '저런 남편과 사는데 왜 우울증에 걸리는 거냐'라는 이야기들이 많았고, 우울증 6개월차부터 20년차까지 여러 사람의 간증이 이어졌다. 배우자를 우울증으로 잃었다는 사람의 댓글까지 있다.


흥미로운 건 각자가 알고 있는 우울증이 진짜 우울증이라고 이야기하는 다수의 댓글이었다. 잘 웃고, 행복해보이는 사람도 우울증이고, 영상 주인공처럼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고, 식탁에 앉는 것만해도 용하다며 그건 아직 완전히 깊은 우울증이 아니라고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도대체 '움직일 수 없다'는게 어떤 건지 물었고 그 대댓글에 '전원이 꺼진다'부터 '하고싶은데 안하는 나를 보는 것'이라는 내용까지 다양하게 달렸다.


다들 각자의 모습으로 아프다. 각자의 이유로 아프다. 왜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스스로도 알 수 없고, 표현할 수 없지만 각자의 삶이 하나하나 다른 것처럼 우울증도 하나하나 다르게 아프다.


영상에도, 댓글에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울증이 오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내용이 나온다. 대댓글로 누군가는 예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낸다고 했다. 나라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면 안 된다. 예전의 나였기 때문에 우울증이 온 것이니까"라고 말했을 것 같다. 이건 정신과 의사가 한 말이고, 브런치에도 같은 내용을 쓴 적이 있다. 그래서 우울증은 삶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나약하다 해도 좋고, 바보같다 해도 좋다. 나약하고 바보같으므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면서 돌보아주지 않으면, 아프고, 내가 아프면 내 가족도 아프니까 나를 잘 지켜야 한다. 우울증 이전의 나는 이미 지나갔고, 나는 이미 우울증이라는 쓰나미를 통과한 후의 섬이므로 당연히 다른 모습의 섬이며, 비슷하게 복원될 수 있을지 몰라도 같은 섬이 될 수는 없다. 쓰나미의 상처를 품은 섬이 되었으므로.


내 남편은 유니콘이다. 내 남편도 묵묵히 내 옆을 지켰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는 힘들다고 말하며 병원치료를 다시 시작하게 했고, 오가는 길이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못 오겠다고 하니 몇 년을 상담 라이딩을 해줬다. 여전히 매일매일 내 컨디션 점수와 감정, 몸상태를 기록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상담 선생님과 공유한다. 언젠가 한번 어떤 대화 끝에 남편이 "내가 글을 써야 하나? 우울증 환자 남편으로서" 라고 한 적 있다. 나는 진심으로 권했는데, 아직 썼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나도 궁금하다. 우울증 환자의 배우자로 산다는 건 어떤 걸 감내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고통과 희망이 있는지 궁금하다. 다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는 헤아릴 수 없는 그 심연을 알고 싶다.


영상의 유니콘 남편도, 내 남편도 각자의 삶을 살면서 배우자를 지켰다. 그들 옆에 있어줬다. 옆에서 같이 살아줬다. 답답하고 희뿌연 우울증 환자의 오솔길의 안개를 헤치며, 손을 놓치 않고 같이 걷고, 그의 삶, 그의 생명 그 자체로 위로가 되어주었다.


댓글 중에 확대하고 싶었던 건, "어쨌든 무조건 병원에 가라"는 거였다. 운동이니, 산책이니 뭐니 전에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고 약을 먹으라"는 거였다. 나는 전문 임상심리 상담가와의 상담도 병행하기를 권한다. 병원에 가기 싫으면 먼저 상담부터 시작하는 것도 권한다.


남편도 나의 우울에 같이 빠져들까봐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다행히 그는 함께 가라앉지 않고, 나와 결혼할 때의 약속처럼 묵직한 바위와 나무가 되어 나를 지켜줬다.


100%는 아니지만 많은 것들이 이 영상에 담겨있다. 사랑이 세상을 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몸과 마음은 상처받아도 영은 상처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