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죽어도 괜찮기까지
중증 우울증으로 10여년 전에 상담을 시작했을 때, 상담사는 나에게 상담과 더불어 전신마사지, 목욕, 운동, 식이와 영양관리, 수면관리, 좋아하는 것 무엇이든 하기, 명상 등을 권했었다. 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약 1년간 이걸 다 무척 열심히 했다.
1년의 2/3 이상을 매주 90분씩 상담받고, 이후로는 격주로, 1년 후에는 아마 한달 간격으로 받은 것 같다. 갖가지 심리상담 기법과 분석이 진행되었고, 나를 분석한 도표와 설명이 스스로를 납득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각 기법을 통해 만난 내면의 존재들을 만나고, 화해하고, 보내주고, 안아주고, 진정시키는 것이 일상생활을 좀 더 유연하고 안전하게 만들었다.
전신마사지는 의외였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마사지를 통한 스킨십이 정서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친구소개로 1년여간 매주, 격주로 열심히 다녔다. 스킨십을 통한 내적 변화는 꼭 짚어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근육의 긴장이 풀려서 몸이 편안해졌고 그래서 마음의 긴장도 덩달하 편안해지곤 했다. 이정재 배우가 예전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하는 세가지로 약물, 도박, 마사지를 꼽았었는데, 마사지는 한번 경험하면 끊을 수 없어서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나는 마사지의 힘을 믿으며, 뜻없이 온 몸이 아플 때는 마사지, 정확히는 시각장애 안마 전문가에게 가서 뭉친 근막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뼈를 맞추고, 혈류를 풀어준다. 마음이 아플 때 98%로 몸이 아프기 때문에 나는 마사지를 강력 추천한다. (마사지건 전문 안마건 꾸준히 받으면 붓기가 빠지고, 살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덤이다.)
목욕은 원래 좋아했다. 물속성 인간이라, 이동진처럼 불어터질 때까지 책도 욕탕에서 보고, 잠도 욕탕에서 자고, 멍때리기도 욕탕에서 한다. 반신욕보다는 전신을 다 담그는 걸 좋아한다. 물 속에 푹 잠기는, 간혹 수압이 전신을 누르면서 꽉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편안함을 준다. 혈류도 좋아지고, 몸을 이완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정신을 이완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운동은 진짜 열심히 했다. 일주일에 4~5번 필라테스를 갔다. 필라테스 선생들이 5일 출근한다고 쑥덕거릴 정도로. 내 평생에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건 처음이었다. 매일 야근하던 시절이었는데, 매일 갔다. 필라테스 가서도 업무 메일과 문자를 하면서도 갔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헬스 마니아여서 둘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야근하고 헬스장과 필라테스학원으로 튀어갔다. 옆에 매일 운동하는 사람이 있어서 동기부여가 되었고, 요가를 하다가 필라테스를 해보니 필라테스가 더 근육운동스러운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아서 열심히 갔다. 심지어 토요일에도 갔다. 하다보니 동작을 점점 더 잘 하게 되었고, 하다보니 나와 맞는 선생님도 찾게 되었고, 하다보니 살도 빠졌고, 하다보니 아무생각 없이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나중에는 거의 기계적으로 갔다. 아쉽게도 연애를 시작하면서 루틴이 깨지고 지끔까지 운동루틴을 못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운동을 당시에 정말 좋아했다.
식이와 영양관리는 비건인데, 해산물은 먹는 그러니까 페스코인데 우유와 달걀은 먹지않는 채로 거의 5년 넘게 했다. 당시 두드러기가 엄청 심했다. 알러지내과에서 알러지 수치는 약간 나오는데 알러지 원인은 찾지 못했고 세월호 사건 이후 이런 케이스가 왕왕 있다면서, 스트레스성일거라고 했다. 고기, 유제품은 피부재생 속도에 영향이 있으니 당분간 조심하라고 했고, 항히스타민제를 동네 병원에서 증상이 있을 때마다 먹으라고 했는데, 1년 내내 먹었다. 나중에는 약이 없으면 집에 가야하는 정도가 되었고, 복용량도 늘었다. 두피부터 발끝까지 심할 때는 악어등가죽처럼 크고 울룩불룩한 두드러기가 온 몸을 덮어서 외계인이나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항히스타민제를 장복하면서 몸이 정말 누가봐도 아픈 사람처럼 부어있었다. 보다못한 친구가 한의원을 소개시켜줬고, 사상체질 기반의 한의원에서 내게 권한 식단은 거의 절간의 수도승 수준이었다. 마늘같은 향신채, 고기, 붉은 생선, 아몬드 등 견과류,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 밀가루 등은 물론이고 해조류와 과일, 소스도 일부만 가능했다. 한마디로 먹을 게 없었다. 고기 중에 일반적이지 않은 (어렴풋이.. 이를테면 말?) 고기는 권했는데 그냥 고기 평생 안 먹어도 되는 체질이라고 했다. 항히스타민제를 끊고 온 몸에 쌓인 독소를 빼는 한약을 꽤 오래 먹었다. 처음에 좀 힘들었지만, 차츰 항히스타민제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약한 두드러기가 살짝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대신, 어쩌다 짬뽕을 한번이라도 먹으면 다 뒤집어졌다. 한의사 말로는 몸이 엄청 깨끗한 상태에서 안 좋은 음식이 들어오니 바로 반응하는 거라고 했다. 평생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5년 넘게, 내 기억에는 7년 가까이 했다. 두드러기보다는 절식이 삶의 질이 높았기 때문에. 상담 첫 1년부터 했으니, 자극적인 먹거리는 거의 없었고 그로인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다고 봐야한다. 다만 비건을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고기랑 밀가루만 먹어도 건강한 사람도 있고, 골고루 먹어야 호르몬 균형이 맞는 사람도 있다. 뭐가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으니 본인에게 맞는 식이관리를 찾아야 한다.
수면관리. 영원한 나의 숙제. 수면관리는 사실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노력은 했다. 명상음악도 틀어보고, 일단 누워도 보고, 불도 거의 끄다시피(당시 나는 불을 끄면 불안해서 자지 못했다) 해보고.. 암튼 그랬다. 수면관리가 되는 건 사실 정신과 약 복용하고도 몇 년 지나서부터 맞는 약을 겨우 찾아서, 그것도 일정정도 시간이 지나면 바꿔가면서 시작되었다. 밤에 잠을 자니 훨씬 몸이 편안하고, 그러니까 마음도 안정적인 편이다.
좋아하는 것 무엇이든 하기는 적어도 당시에는 위기수준의 우울이기는 했지만, 무기력에 완전히 잠식당했을 때가 아니고, 신체와 마음의 에너지가 아직 고갈된 상태는 아니였는지 1년에 공연을 60개씩 봤다. 연극, 무용, 음악, 뮤지컬, 아이돌부터 인디, 락, 발라드, 밴드 등 온갖 이미 유명한 작품부터 신진 작품까지. 그러니 돈이 없었다. 벌써 위의 것들만 할래도 돈이 없는데, 이것까지 하니 더 돈이 없었다. 읽지 않지만 책도 엄청 샀다. 출판계의 빛과 소금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일부러 인문 사회학 시집 같은 것들을 주로 사기도 했다. 출판사 망하면 안 된다고. 이런 책 계속 나와야 한다고. 아니 읽지도 않으면서 왜.. 그래도 좋았다.
명상. 명상은 진짜 잘 안 됐다. 시도는 했다. 그런데 최근에 명상의 효과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아직 리뷰를 쓰지 않은 것 같은데 몇 권의 대중서적을 읽고, 남편이 명상을 시작하며 꾸준히 권해서 아주 조금씩 간헐적으로 하고 있는데 조금씩 더 정신이 마음이 고요해지는 걸 느끼고 있다. 천주교의 묵주기도 묵상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는 공동경제이므로, 이미 남편에 비해 병원비, 상담비외 비정기적 타과 진료, 각종 취미생활 등으로 뭘 많이 하고 있는데도 마사지, 운동, 공연, 책 등은 그 때와 비교하면 1/10도 안 되는 것 같다. 꼭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는 내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심각한 무기력에 빠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던 시기에서 조금씩 올라오며 필요할 때 필요한 요소들을 하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쨌든 뭐든지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주변 사람들이다. 가족, 친구, 동료, 배우자, 상담사, 정신과의사 등등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자가동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을 거다. 어쨌든 이 중에 하나라도 할 수 있으면, 간헐적으로라도 할 수 있으면, 심지어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우울이든 조울이든 어떤 총체적인 문제를 몸의 감각으로 환원하여 이완과 해소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러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세계가 한꺼번에 녹아서 흘러내리는 비상식적이고 추상적인 세계에서 몸이라는 물질에서 쌓아가는 마음과 정신과 세계의 구획되고 구상적인 세계로 나를 데려올 수 있다.
사실, 어떤 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다 알 수 없다. 첫 1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고, 두번째 맞이한 우울과 조울에서도 내 나름으로는 할 수 있는 걸 했다. 통틀어보니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울과 조울이 왔을 때, 적어도 낯설지 않은 것 중에서 해볼 수 있는 걸 시도해보려고 생각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성장이라면 성장이다.
뭐든 시간과 시간만큼의 경험이 필요하다. 이제 나는 오늘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고, 그래서 자살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오늘 죽을수도 있으니까! 그럼 뭐 럭키비키니까! 애써 자살하지 않아도 언제든 올 수 있는 끝이 있으니까. 그 끝은 꼭 오니까.
그러니까.. 뭐든 해보자. 뭐가 나한테 좋을지는 나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