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동기화, 자유 - 무라세 다카오
일본에 치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칼과 불을 이용해서 음식도 하고, 외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돌보는 곳이 있다. '요리아이의 숲'이라는 노인요양시설이다. 지금은 꽤 유명한 곳이 되었고, 몇 년전에 나이듦에 대한 공부를 해나갈 때, 일본탐방을 갈 기회가 있어서 연락이 닿았는데 당시 일본과 정치적으로 안 좋을 때라 공공기관에 다니던 나는 대표로부터 '타 기관 직원이 일본에 다녀와서 사직을 권고받는 상황이니, 출장이 아니라 휴가도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지 못해 아쉬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 도서관을 둘러보다가 요리아이 소장의 책이 눈에 띄어서 집어들었다.
책의 소제목은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까'이다. 요리아이에서는, 요리아이가 있는 마을에서는 가능한 것 같다.
요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하나같이 요양원 실습을 하고는 절대 요양원에 내 지인을 보내지도, 나도 그곳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한다. 실제로 자격증을 따고 일하지 않는 비율이 생각보다 높다고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요양원은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개인 요양보호사로만 일하는 분도 계시다. 왜 일까?
반말은 기본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저 아이를 대하듯, 정확하게는 모자란 사람을 대하듯, 반말을 한다. 누군가는 짧게 말해야 어르신들이 그나마 알아듣는다고도 하는데, 정말 그래서일지는 의문이다. '노치원'이라는 데이케어센터들의 보호사들도 마찬가지다. 친근함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꼭 필요한 걸까? 친근함보다는 '존중'이 필요하고, 그건 말과 태도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계속 어딘가로 나가고 싶어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암튼 보호사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신경쓰게 하는 분들에게는 '진정제'를 먹여서 거의 하루종일 주무시거나 멍하게 한다. 그리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 무조건 기저귀를 채운다. 통제가 안 될 때, 콧줄을 꼈는데 자꾸 뻬려고 할 때는 때때로 침대에 팔을 묶어놓기도 한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를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길 때는 보호사가 최대한 힘을 덜 쓰는 방법으로 환자를 거의 침대에 던진다.
등등의 일들에 실습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손을 쓰고, 환자의 말을 들어주고, 세심하게 케어하면 기존 요양사들이 실습생을 불러 점수도 주고 다 줄테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구석에 앉아있으라 한다. 실습생이 간 이후 실습생의 돌봄에 익숙해진 환자와 관리자들을 자기들이 감당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쩌면 내 부모님이 거쳐야할지도 모르는 곳이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정말 죄책감 없이 맡길 수 있을까 싶어 울적해진다.
책은 1부 '자유롭지 않은 몸끼리 동기화화다', 2부 '동기화가 어긋나면 자유로워진다'로 구성되었다.
1부는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해야 하는 사람의 두 존재가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존재하는지,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강제와 폭력성이 아니라 '어긋나는 존재로서의 동기화'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돌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힘듦 가운데 사람 대 사람으로서 돌봄 대상자가 인식하는 '현재'를 파악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해소'하기 위한 개별 언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동기화'를 힘있게, 따뜻하게 풀어간다. 또한 한 아이를 온 마을이 길러내듯이, 한 노인을 돌보는 것도 온 마을이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여 앞으로 우리 엄마, 아빠와 우리는 어떤 노년을 누구와 어디서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2부는 집이 육체가 된 할머니, '할머니'를 찾는 할머니, 사람을 죽인 할머니, 생각에 잠긴 할아버지 이야기를 통해서 다양한 노인들의 돌봄 사례가 나오는데, 사연마다 한 사람의 세계를 온전히 인정하고 지켜주면서도 돌봄을 이어나가기 위한 태도, 솔직한 마음, 우려, 그럼에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돌봄을 하려면 마음의 여유만이 아니라 공간, 시간, 돈, 사람 사이의 관계 등 많은 것들에 여유와 거리두기가 필요해보인다. 속도와 결과에 집착하는, '일상을 하루하루, 현재를 살아내는 순간이 쌓이는 삶'이 아니라 '심장이 뛰는 바이탈 사인으로 삶'을 확인하는 구조에서는 생각하고 행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생각이다.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무라세 타카오의 마지막 마치는 글 모두를 밑줄치고 싶었다.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들며 약해지는 것을 체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 있는 슬픔도 기쁨도 깊이 맛보고 싶습니다. 몸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그럴 때 세계는 어떻게 느껴질까요. 이윽고 나는 죽겠지요. '나'라는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리고 몸속의 에너지를 모두 불태우고 죽는 모습을 영혼으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화장은 피하고 싶습니다. 푸른 잎이 우거진 깊은 산속에 묻히면 좋겠습니다. 곤충과 미생물에 몸을 맡기고 분해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먹힐 것입니다. 내 육체는 내장을 통해서 나를 먹은 몸의 생명이 되고, 대부분은 똥으로 대지에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르신의 배설과 함께해왔으니 똥이 되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살아 있는 것들이 틀립없이 내 죽음을 축복해줄 것입니다.그런 망상에 젖곤 합니다.
...(중략)... 모든 생명은 먹히고 배설됩니다. 그 과정 속에 '나'는 살아있습니다. '먹고 배설하는 것'만으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은 그 과정을 마지막까지 돕는 일입니다. ...(후략)..."
돌봄이란 무엇이고, 사람과 함께 끝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