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속에서 침묵의 자리 찾기

뇌를 위한 침묵 수업 - 미셀 르 방 키앵

by 강마

어디선가 누군가가 무슨 이유로 추천해 놓은 책들을 목록에 저장해놓는 버릇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뇌를 위한 침묵 수업'이었다. 누구였는지, 무슨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표지와 제목이 인상에 남아서 목록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전 도서관에 갔다가 새로 들어온 책에서 발견하고 무심코 들고 왔다.


들고 와서도 독서모임과 다른 책들을 읽느라 한참 뒤에야 펼쳐봤는데, '신경과학자'가 쓴 '뇌과학' 관련 글임에도 잘 읽혔다. 술술 읽혔다. 저자는 꽤나 유명하고 그래서 무척이나 바쁜 과학자였는데, 어느 날 안면마비를 겪는다. 특별한 처방에 우선하여 무조건 쉬라는 권유를 듣는다. 모든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끊고, 그냥 좀 쉬라는 말을 듣는다. 한번도 그렇게 쉬어본 적이 없고, 늘 바삐 돌아가던 회전판에서 갑자기 탈출하여 정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여러 조정 단계를 거치지만, 어떻게든 머릿속을 조용하게 하고 몸도 조용하게 하니 마법처럼 몸과 정신건강이 좋아지는 걸 경험한다. 심지어 두 달여만에 자신의 안면마비가 좋아지는 걸 보고 전공을 십분 살려 '침묵'에 관한 뇌과학 기반 책을 쓴다.



아무리 강렬한 경험이라도 두 달만의 경험을 이렇게 빠르게 전문성과 결합하여 책을 낸다는 사실에 먼저 한번 놀라고, 이토록 다양한 침묵을 분별해내는 연구자의 섬세함에 또 한번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쉽게 쓸 수 있구나 싶어 놀랐고.


목차는 크게 신체의 침묵, 청각적 침묵, 주의력의 침묵, 몽상을 통한 침묵, 듣기 위한 침묵, 눈의 침묵, 명상을 통한 침묵, 자아의 침묵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원래대로 줄긋고 붙이고 접고 쓰고 등의 잡다한 짓을 할 수가 없어서 아쉽게 흘려보낸 구절들이 있다는 점만 밝힌다.(도서관 책에 밑줄긋기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독서노트를 만드나?)


우선 '바쁨' 속에서 나를 건져내야 한다. 쉴 새없이 돌아가는 일정과 그에 따른 생각, 몸의 움직임에 '멈춤' 즉, '침묵'의 시간을 줘야 한다. 몸을 가만히 있는 것, 산업화 이후 '나태'로 낙인 찍혀버린 종류의 '가만히 있음'과 '멍 때리기'는 나의 뇌와 신체기관을 위한 시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인용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텅빈 방에서 혼자 6~15분 동안 갇힌 동안 스스로에게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남자 67%, 여자 25%가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했다. '무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빈 공간, 빈 시간, 빈 감각이 낯설고 무엇으로든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나 우리는 쉬어야 한다. 잠을 자고, 생각을 쉬어야 한다. 그래야 미친듯이 일하던 뇌가 쌓아놓은 노폐물을 내보낼 시간이 있다. 잠을 자든, 명상을 하든 뇌에게도 쉬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물론 뇌는 단 한순간도 일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 하지만 그 일의 종류 중에 우리를 리셋하고, 안정화 시키는 활동을 하게 하는 짬을 따로 마련해줘야 한다. 머리 속의 98%가 일로 꽉 차있던 시절이 있었다. 잠도 자지 않았다. 심지어 자면서도 일을 했다. 24시간의 98% 동안 계속 머리로 몸으로 일을 했다. 결국 몸에도 머리에도, 즉 정신적으로도 병이 왔다. 브레이크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를 너무 안 써서, 24시간 내내 사냥상태에 있는 코르티솔 과다로 긴장과 이완의 두 가지 뇌 기능중 하나가 거의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그렇게 우울증과 조울증을 맞았다.


처음엔 그저 외부의 자극들, 사람들, 일, 회사 때문에 병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꽤나 오랫동안, 거의 끝까지. 그래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회복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너무 달린거다. 내가 너무 나를 닥달한거다. 몸은 자율신경계에서 계속해서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의식은 '아니야! 할 수 있어! 해야돼! 괜찮아!'라고 달려대니 '나'가 산산히 찢어지고 몸과 의식 사이의 정신이 부셔져나갈 수 밖에 없었던 거다.


늘 BGM을 틀지 않고, 인공적인 소리를 끄고, 엄청나게 많은 80% 이상의 정보를 때려넣는 시각의 창인 눈을 감고, 사고의 자유로운 방황, 몽상을 허용하고,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물론 내 몸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고요의 공간에서의 침묵의 시간을 가져보고, 자율신경계 활동 중 유일하게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호흡을 통해 관찰하고 관조하는 자기를 찾고, 궁극적으로는 자 자신도 넘어서는 완벽한 침묵의 세계로 갈 수 있는 명상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음 하는 이 책은 이를테면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으로 가는 가벼운 안내서 정도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우울증 치료에 명상을 통한 인지행동치료의 효과가 여기서도 언급된다. 나는 지금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면역체계의 붕괴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명상을 하면 면역체계도 좋아진다는 말이 유사한 책에 매번 반복된다. 뇌가 '안전하다' '평안하다'는 신호를 더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으로 명상을 권하는 것이다.


수도자들처럼 할 수는 없지만 하루에 10분 정도는 명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강의를 하거나 긴장되는 일이 있을 때는 페이커의 경기 준비모습을 회상하며 나도 명상으로 시작한다. 가랑비 옷 젖듯이 좋아지길 기대하며. 가끔은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며.


지난달보다 핸드폰을 2시간 가까이 보지 않았다는 리포트를 보았다. TV는 주중에는 30분도 안 보는 상황이니, 꽤나 침묵에 익숙해져가고, 편안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요즘의 평화는 이 침묵에서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성당에서의 기도도 점점 말이 줄고 있다. 나를 비워야 주님의 부르심 또는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생길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이 줄어드니.. 에너지가 아껴지고, 생각이 적어지니, 에너지가 아껴져서 좋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전에, 일상에서 미리미리 침묵의 시간을 가져주어야 겠다는 생각, 혹은 대침묵의 시간 속에 가끔 생각과 행동을 해야겠다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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