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마음, 고통은 내가 아니다

붙잡지 않는 삶 - 에크흐르트 톨레

by 강마

오디오북을 그냥 배경음처럼 자주 틀어놓는다. 배속은 1.2정도로. 그러다 보면 갑자기 집중하게 되는 구간이 생기고, 그러면 책을 다시 듣게 된다. 명상과 관련된 책인데, 왜 이 책을 담고 틀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러고 싶었나보다. 처음 들을 때는 그냥 그런 명상이야기인 것 같아서 중단했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책 읽어주는 유투브 '자작나무'에서 이 책의 일부를 읽어줬는데, 그 때 다시 잘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중에 듣기만으로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는 오디오북은 단편소설이나 사회비평에세이 모음집, 또는 엄청난 스토리의 대서사시 같은 것들이 그나마 집중이 되는데, 인문 철학 사회학 과학 등 전문분야의 대중서들은 쉽지 않다. 그래도 몇 권은 집중이 되고 밑줄 긋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더 찬찬히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에고ego, 마음, 생각은 내가 아니라고 한다. 이것들은 과거와 미래에 있고, '현재'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순간, 여기 있는 존재이며, 여러 마음과 생각, 감각이 일어나는 걸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존재가 나라고 한다. 수많은 명상가들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에크하르트 톨레는 그 이야기를 '밀푀유 Mille-feuille ( 천개의 잎사귀란 뜻의 빵)'처럼 한겹 한겹 친절하게 벗겨가면서 설명한다. 그래서 '실행서'라는 말이 붙나보다.


이 책이 인상깊었던 건 아무래도 오래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고생한(혹은 하고 있는) 나를 자연스럽게 대입하게 된 부분 때문이다.



과거의 시간에 가진 마음으로 내 존재를 습관화하고 가두는 에고를 벗어나기 힘들다.

에고는 마음의 습관(과거의 나를 강화하는)에 따라서 나를 규정하는데, 진짜 나는 거기 없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고통받은 마음을 계속 안고 살아가며서 고통받고 우울하고 아픈 나에 대한 인지가 '에고'가 되고 그래서 그 에고를 벗어나려고 하면 저항한다. 고통의 덩어리를 계속 끌어안고 덕지덕지 쌓으며 그게 나라고 생각하면서 짓눌린다. 마음과 정신, 몸이 고통으로 가득찬다.


최근 몇 달간 조울증 증상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그래서 지구 핵까지 내려갔던 우울이 다시 지표로 돌아왔을 때 그 압차를 맞추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순간순간 우울하지 않은 내가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상담사에게도. 하지만 말하고 싶었다. 지난 10여년을 넘게 내가 붙잡고 있던 내가 없어졌거나 희미해졌다는 것에 대해서. 이 '비어있음'에 대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아주 천천히 '이제 나는 더이상 상처받고 화나고 위축된 과거의 내가 아니다'는 깨달음을 반복해오면서 기쁘고 반가웠지만, 어느 순간 '그럼 뭐가 나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우울하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죽고싶은 사람으로 10년을 살았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고? 그럼 난 어떤 사람이지?' 라는 혼란이 왔다.


아프기 이전의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과감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열정적이었던 나에 대해서.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오래걸리고 돌아가고 좌충우돌해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았던 나에 대해서. 우울증으로 아무 생각도 의지도 없이 토네이도 속을 떠돌다가 다시 집에로 돌아온 도로시가 된 기분. 그래서 나의 의지와 생각에 대해서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헤아려봐야 하는 나의 상황에 대해서.



과거에 기반해 설정된 에고가 걱정하는 미래도 허상이다. 나는 거기에 없다.

온갖 불안과 두려움. '앞으로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이걸 성취해야 하는데...' 하는 불안과 두려움. 그것도 허상이다. 과거의 존재 습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에고는 미래의 나에게 자꾸 참견한다. 에고의 일관성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재단한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 없듯이 미래에도 없다. 지금 여기 있다. 여기서 숨쉬고 있다. 피가 돌고, 맥박이 뛰면서 온간 생명현상이 일어나는 여기에 있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현재를 패싱하는 '그런 나'를 유체이탈하듯 이탈해서 '지켜보는 나'를 찾아야 한다. 그 '지켜보는 나'는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과거를 붙들고 있는 마음과 미래를 쫓는 에고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기체 혹은 영혼이 되어 지금 고통스럽거나 짜증나거나 화나거나 슬픈 나를 바라봐주고,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흘려보내준다. 감정, 마음은 알아차리는 순간 잠잠해지고 사라진다. 지나간다.



이글을 쓰는 2-3일 사이에도 일이 있었고, 울기도 울고, 슬프기도 슬프고, 두렵기도 두려웠지만, 그래도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나를 비우고 공기를 채워넣으며 공기주머지가 되려고 여러번 시도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만 알아챌 수 있는 효과가 조금 있었다.


묵주기도 관련된 수녀님의 유투브 강의를 들었는데, 성모님에 대해서 '자기를 온전히 비우시고,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을 맞이하고 받아들이셔서 성삼위로 스스로를 채우신 분'이라고 하셨다. 그말이 오래오래 남았고, 묵주기도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생각나고 연결되게 해 주었다.


어쩌면 모든 진리는 다 하나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라. 지금, 바로 이순간, 여기에 네가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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