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생각한다 - 에두아르도 콘
출판계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몇 년간이었지만, 하도 오랫동안 쌓아놓은 빛과 소금이 많아서 집에도 한벽 가득, 본가에도 한벽 가득 읽지 않은 책이 빽빽하다. 그래도 김영하 작가가 그랬다. 책이라는 건 사서 책장에 꽂혀있다가 발견되는 것이라고. 그러니 일단 책장에 꽂아야 한다고. 그렇게 8년을 꽂혀있던 책이 '숲은 생각한다' 였다. 목적없이 한가한 어느날 갑자기 이 책을 다시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인간을 넘어선 인류학'에 걸맞게 상당히 어려웠는데 우연히 인류학 전문연구자들께서 열어주신 세미나에 용감하게 참여하게 되었고, 두 달을 꼬박 세미나에 참여했다.
알듯 모를듯한 이야기들과 기라성같은 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풀어내는 글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진짜 오랜만에 '공부하는 도파민'이 도는 시간이었다. 10가지 중에 하나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눈치로 이 맥락에서 중요한 건 '이 문장, 이 문단'이라고 표시한 걸 박사님들이 세미나에서 강조해서 읽어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세미나는 전문연구자들도 있었고, 나같은 기획자, 예술가 등도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관점에서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에 대해서 2페이지씩 나누기로 했고, 나는 3주를 끙끙 앓으며 문화기획, 지방문화자치 등과 연결하는 걸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제일 잘 알고, 제일 잘 말할 수 있고, 실제로 책을 읽으며 내가 몸으로 읽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주제에 대해서 쓰게 되었다.
문화예술 기획, 행정, 연구 등에 종사한 오랜 기간을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한 때 별명인 ‘경마장 말’처럼 목표를 위해 브레이크 없이 계속 내달리다가, 어느 순간 영혼은 트랙의 원심력 밖으로 튀어나가 야생마가 되고, 몸은 경마장의 낡고 벗겨진 조각상이 된 상태로 발견되어 괴로워하다가 경마장도 말도 벗어난지 2년이 되어간다. 2년 동안 점점 과거가 아닌 현재의 감각이 살아났고, 존재하지 않던 미래에 대한 생각도 드문드문 들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자살고위험군으로 전두엽 기능이 거의 상실된, 가성치매라고도 하는 중증우울증으로 투병했고, 벗어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현재도 그 과정에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현재는 문화기획 외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로 상급병원 암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호스피스 다학제 팀의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하고 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게 된 일은 아니다. ‘어떤 의도를 가진다’는 걸 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다. 한동안은 의도에 목을 맺지만, 한동안은 의도를 가질 수 없었고, 이제는 의도를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쩔 수 없이 나의 경험을 투사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에 한정되었다는 점에서, AI나 로봇, 또는 땅과 물 등 세상의 다른 것들에 대한 갖가지 의문들과 여러 개념(이미지, 변화, 상징, 형식, 사고, 주체 등등)에 대한 흐린 이해를 오랫동안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위에 남은 물을 떠보니 결국 다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 책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중증우울증 환자의 상태는 ‘혼맹’에 가깝다. 전두엽 기능이 현저하게 낮아진 상태의 중증우울증 환자는 자기self가 우주 전체를 덮고 있는 거대한 구름과 같고, 주변 사람들과 반려 동물과 식물 등은 가끔씩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번개와 같다. 나를 제외한 생명과 비생명 모두, 나와의 관계성이 없다. 실제로 전두엽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판단력, 문제해결, 충동조절과 함께 대인관계 능력인데, 대화에 적절하게 반응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점점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얼굴에 표정이 없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계맺기가 난망하다. 그럴 의지도 없다. 콘은 “자기들의 생태학에서 모든 자기들은 자기로 살아남기 위해 이 우주에 서식하는 혼이 있는 다른 자기들의 혼-질을 인식해야 한다. 이 자기들의 생태학에서 혼을 가진 다른 자기들을 알아볼 수 없고 또 그것들과 관계할 수 없는 무능력에 이르는 혼의 상실, 자기들을 쇠약하게 만드는 이 혼의 상실의 다양한 형식(204p)”을 혼맹이라고 하며,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부류 너머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에 의해 표지된다”(204p)라고 했다. 중증우울증 환자는 종국에는 자기 자신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해를 한다. 처음에는 피가 나도 감각이 없는데, 몇 번 반복되면 따가운 감각이 살아나며 아프고, 그런 아파하는 나를 아주 천천히 인식하고, 나의 존재를 몸으로 느끼는 이 느린 반복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시간도 있다.
콘이 1장에 쓴 공황에 대한 이야기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간의 세계 인식의 불일치는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떼어놓았다. ...내가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 나 자신의 신체와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이 느낌”(88-89p)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아주 찰나적 순간, “분리의 감각이 사라지는”(90p)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나는 몸으로 읽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데, 책 전체를 통해서 콘은 나와 또 다른 자기들과 “함께 되기”에 대해 무수히 반복하여 깨워주고, 내가 재규어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 또는 이미 그 자체로 재규어 인간임을 인지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반복해줌으로써 ‘삶’에 대한 다른 감각, 사실은 공감의 촉수가 너무 많이 발달하고, 너무 예민해서 힘들었던 과거의 내가 가졌었던 것 같은 종류의 감각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자살고위험군에서 생존자가 되게 한 것은 가족, 남편, 반려동물이었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번개같이 손을 내밀고, 말을 걸고, 초점없는 내 눈에 눈을 맞춰주면서 나를 현실로 데려오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 나를 끊임없이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들의 지금 생각과 감정은 어떻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 나를 계속해서 불러들이고, 나를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나의 해석을 들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증우울증에서 벗어난 가장 큰 계기는 회사를 그만 둔 것이었다. 의사와 상담사, 나조차도 멀미가 날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벗어났다. 왜 그런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는데, 콘의 개념을 빌리자면 10년 넘는 기간 동안 회사는 나에게 하나의 “형식”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10년이 넘는 재직기간의 후반 2/3를 우울증과 공황, 중증우울증으로 점점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서도 스스로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곧 다시 자유롭게, 도적적으로, 의미있는 싸움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려고 했으나, 마지막에는 더 이상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체력과 영혼도 없었다. 회사는 나라는 문화기획자(토큰) 보다는 직장인으로서의 문화행정가(타입)을 원했고, 무난하고 사고/잡음 없는 공공기관 사업을 원했으므로 계속해서 밖으로 확장시키고 연결시키는 나와 내 작업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좌절시키는 구체적인 사람들에서 조직으로 문화로 나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했다. 회사가 원하는 형식 안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철저히 분리되는 감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으니 ‘생각과 소통’, ‘기호작용의 기회’는 매우 한정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내 생명이 쪼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는 콘이 말하는 ‘창발’이었을까? 콘의 여러 개념 중에 가장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 것이 ‘창발’이기도 한데, 어쨌든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고, 기존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기존 관계를 새롭게 다듬는 것까지 포함해서),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고, 매일 새롭게 하루를 보내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주변을 보고 관찰하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다시 책을 읽고, 다시 새로운 생각을 접하고,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면서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의 반려동물과 반려식물들과 나의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기호작용, 생각, 생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심지어 내 세상에는 없던 미래도 가끔은 생각하게 된 걸까?
2014년 노년문화와 나이듦 관련 기획을 통해 만난 선생님을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 자원봉사와 호스피스 자원봉사 준비를 하게되었고, 이를 사람들은 ‘웰다잉’의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사실 나는 죽음보다는 ‘삶’에 방점을 두고 두 가지 활동을 바라보고 있다. ‘삶’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것이고, ‘삶’이기 때문에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며,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 시점에서, 콘이 말하는 ‘미래의 영향력과 가능성, 미래의 형식을 향한 현재의 기호작용’을 내재화하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과거에서 현재로 몸과 영혼을 데려오는데도 시간이 걸렸으므로. 그러나 ‘종국에 파멸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 파멸할 것이라는 미래의 위협’이 나에게 강력한 지표로 작용해서 퇴사를 했을 수도 있고, ‘미래에 존엄한,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에 대한 욕구,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건강한 상태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건 다만, 내가 ‘되고자 하는 또는 하고자 하는 또는 갖고자 하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서 아직 충분히 생각과 감각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만 산다, 10분 후에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사는 “철저히 지금에 충실한” 삶에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콘이 말한 죽음 이후에 대한 해석과 현실과의 연결에 대해서는 아직 감을 못잡은 듯 하다.
반려 동물을 키우거나 반려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른 생명, 다른 사람에 대해서 더 다정하고, 더 많이 공감한다는 경험적 감각을 문화예술사업으로 기획하려고 산 2018년도의 책이 8년 후에 전혀 다른 면에서 읽혔다는 점에서 당황스럽지만,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어서 충만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나눔은 다양한 구성원의 다양한 관심주제, 연구내용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있었다. 나의 글이 콘의 이론을 너무 비약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웠지만, 박사님들이 내 글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셔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았다.
공부를 계속해보고 싶은 새로운 분야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후속 공부를 위해 전수받은 팁!
매 장마다 인상깊었던 문장을 하나씩 발췌하고, 그 문장을 시작으로 글을 써본다.
숲은 생각한다는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6개의 에세이를 써본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