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격차 - 김지원, 민정홍
EBS 다큐를 좋아한다. 실제로 훌륭한 다큐들이 많아서 책으로 나온 시리즈도 여러개 있고. 정규방송은 거의 EBS를 제일 많이 보는 듯 하고, 요즘은 심지어 유투브도 '취미는 과학'만 연달아서 보고있기도 하다. '문해력' 시리즈는 꽤 여러가지 다큐가 반영되었고, 나는 중간중간 봐서 쭈욱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 책에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
요즘 아이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부모인 성인들까지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한탄은 꽤 오래되었다. 한글을 '읽는 것', 문자로서 소리내어 읽을 줄 아는 건 꽤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체계이다. 인도에 여행했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머리좋은 인도사람들은 유스호스텔을 지키는 청년들에게 저녁에 한글을 가르쳐주면 다음날에는 한글을 읽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배우기 쉬운 문자다. 인도네시아 부톤섬 바우바우시(찌아찌아족)이나 솔로몬 제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토착어를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도입하여 문맹퇴치를 시도한지 꽤 오래 되었다.
그럼 면에서, 최근 몇년 혹은 몇십년 간의 한국에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글을 음운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소리내어 읽을 수 있다면) '글을 읽는댜 = 이해한다'라고 넘어가는 경우가 쌓여서 문자인식 이후의 음운처리가 가능하면(소리연결이 가능하면)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로 읽은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추론하는 등의 읽기 이후의 사고활동을 하려면 음운 처리된 단어들을 뭄법과 구문에 따라 해석하고,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하고 추론 등을 동원하여 의미를 해석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하며, 이러한 읽기가 반복적으로 이우러져야 사고에 속도가 붙는다고 스타이슬라스 드앤의 '읽기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문자로 된 글을 읽으면 뇌의 다양한 부분, 심지어 이미지처리 부분까지 활성화된다. 실제로 전두엽 전체가 활성화된다. 우리는 글을 읽으며 그것 또는 그 장면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 이미지처리 부분이 가장 강하게, 그리고 일부가 활성화될 뿐이다. 읽기란 고도의 집중력 훈련이므로, 당연히 쉽지 않다. 내가 가진 모든 감각적, 문화적, 사회적, 인문학적 배경을 총동원해서 새로운 내용을 연결시키고, 이해하고, 추론하는 것은 뇌의 많은 부분이 동시에 일을 한다는 뜻이고, 그 만큼 실제로 에너지도 많이 들고, 그러한 집중과 사고과정을 익히는 훈련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읽기가 '자동화' 되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자동화는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배경지식이 점점 늘어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뭘 알아야 질문을 하죠.." 라는 살면서 한번 쯤 해봤을 거다. AI 시대에 질문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질문을 하려면 아는게 있어야 하고, 대답을 듣고 그것이 진짜 맞는 대답인지 판단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배경 지식은 결국 '읽기'로부터 시작된다. 다양한 분야의 단어와 배경지식을 아는 것은 문해력에 큰 영향을 미치며, 효과를 보면 책을 읽는 것이 영상을 통한 정보습득보다 도 유용하다. 기억력과 창의력에 차이가 생긱 수 있을 정도의 뇌 활동 차이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어휘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특히 요즘 성서공부와 인류학과 철학책을 보면서 사전을 찾아보거나, AI에게 질문을 하여 문맥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모르는 한국어가 있었가 다양했나? 싶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이다. 어릴 때 봤던 외국 영화에서 트로피 아내를 무시하던 여자 언론인(?)이 인문사회고전서를 읽어봤나고 일부러 물어봤고, 트로피 아내는 읽지 않았다고 해서 무리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이후 그녀는 소파에서 몸매관리 운동을 하면서 영어사전을 옆에 끼고 결국 그 책을 다 읽어낸다. 영화의 아주 작은 에피소드였는데, '아.. 어른도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가면서 읽을 수 있는거구나'라고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요즘처럼 새로운 개념과 용어, 말이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어휘 공부는 더 필요한 것 같다.
그정도 열정을 가지려면, 그 책의 내용을 정말 알고 싶어서, 하나의 놀이로 읽을 준비를 해야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최재천 박사는 취미로 책을 읽지 말고 공부하는 진지한 자세로 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곧 의무적으로 읽으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서가가 되면, 점점 더 재밌있어지는 분야가 확장될 수 있다. 마치 공연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소극장 뮤지컬이나 개그공연, 작은 연극에서 시작해서 유명한 뮤지컬, 연극, 클래식, 무용, 인디밴드 공연부터 Kpop 대형 콘서트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람영역이 확장되듯이 말이다. 스스로 재미있는 것을 찾기위한 방대한 탐색의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과 나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시간이 요즘 아이들에게 없다는 것이, 어쩌면 어른들에게도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문해력은 나와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생존능력이다. 문해력을 키우는데는 그래서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이는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청소년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대목인데, 어떤 교수의 말처럼 요즘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해야 할 시간과 고통과 노력과 기쁨을 돈을 주고 학원과 미디어에 외주화시키는 것 같다. 살과 호흡과 생각과 태도와 말이 부대낄 틈이 없다. 아이들의 감각이 점점 퇴화한다.
미국의 교사이자 교육활동가인 카림 위버는 '읽을 수 있는 권리'라는 영화에서 "문해결은 가장 위대한 시민의 권리다.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의 어떤 것에도 접근하지 못한다"고 했으며, 난독증 아이의 엄마 쉴라 살몬드는 "문해력은 세상을 열어주는 힘이고 인간의 권리이며 사회적 정의"라고도 한다고 적고 있다. 맞다.
지금 내 아이가 혹시 성적이 안 나와서 걱정인 부모라면, 내 아이가 정말 '읽은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어느정도 수준의 문해력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몇 년을 쫓아가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꼼짝없이 앉아서 듣느라 괴로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보고, 아이의 속도에 맞는 문해력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성적이 잘 나오는 건 물론이고, 세상 살아가는데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전문서적을 읽고 있는데, 연구자들은 원문은 물론 각국의 변역들, 이를테면 영어, 불어, 일본어 등의 글과 비교해가며 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생각한다. 모르겠는 건 찾아가면서, 길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며서. 투병하는 동안 책 한자 보기가 힘들던 게 얼마 전인데, 이 정도면 꽤나 회복되었다고 생각하며, 역설적이게도 이 문해력 격차를 읽으며 다시 외국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시절엔 배우지 않았던 파닉스부터. 음운처리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