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 이문열
이문열. 한 시대를 휩쓴 엄청난 작가이지만, 내게는 2000년대 초 홍위병 발언으로 당시 활발한 정치논객의 장에 뛰어들어 우파임을 드러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최근까지도 극우에 가까운 우파적 언행을 보여온 노작가로만 생각했다. 한국영화가 방화로 불리던 시절의 '사람의 아들'과 방화에서 벗어난 시절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정도를 기억하고 있으며 이문열 삼국지의 어마어마한 판매 등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윌라 오디오북 시리즈로 올라왔다. 그 중에서 '사람의 아들'이 들어왔다. 성경공부를 하고 나서 종종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 상당히 강렬하게 들렸는데, 이문열의 이 책이 신약의 '사람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보고 들어보기로했다. 내 기억에 있는 사람의 아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방화 특유의 침침하고 어둡고 습한 이미지가 있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창세기, 탈출기와 신약을 읽었다면 몰입해서 따라갈 수 있으며, 기독교인이라면 소설 속 인물들의 신에 대한 물음에 공감하기도, '그럼에도'라고 반발하기도 하면서 읽게 되어 현재 자신의 신앙인으로서의 위치를 자가진단해볼 수 있는 글이다. 기독교 만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어디까지가 조사를 통한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창작인지 헷갈리는데, 어쨌든 어마어마한 연구와 탐구 끝에 내놓은 작품이라는 걸 체감할 수 밖에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문열이라는 사람이 궁금해기지까지 한다.
조선시대부터 뼈대있는 양반가문 혈족이었으며, 그런 배경에서 자란 아버지 역시 당대 엘리트였고, 월북하여 숙청에도 살아남은 엘리트였다거나, 여담에 어머니가 권사로 있던 교회의 고아원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고, 아버지의 월북으로 불안정한 생활 가운데 교회에서는 안전감을 느끼고 성경 암송대회에서도 1등한 적이 있다는 걸 보니 어떻게 '사람의 아들'을 쓰게 된 것인지 약간 상상이 되기도 한다.
액자형 소설인데, 액자 밖과 액자 속 주인공들은 모두 매우 총명하고 촉망받던 청년으로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었는데,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신은 애초에 왜 인간에게 자유라는 것을 주어 고통과 죄와 악에 빠지게 놔두는 것이며, 굶주림과 폭력 속에 내버려두는 것인지? 왜 인간에게 실체없는 미래를 약속하며 현재의 안녕과 행복이 없어도, 고난이 있어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인지? 인간은 신으로부터 만들어졌으니 인간의 선과 악 모두 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지, 어째서 인간이 애초에 실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신을 찾는다. 논리적 사고로 단련된 이러한 물음에서 실천적 이웃사랑을 행하려는 액자 밖 주인공들의 노력과 그들의 논리와 함께 '회개' 또는 '회귀'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사람의 아들'과 '예수'의 광야에서의 논쟁과 이후 예수가 고난과 죽음에 이르는 동안의 다섯 번의 만남에 이르면 이야기는 절정에 달하는데, 신앙인으로서는 꼭 한번 읽어볼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누군가는 이문열을 대작가의 반열에 올리는 것이로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의 아들' 입장에서 끊임없이 쏟아내는 질문에 답을 하는 '신의 아들, 예수'의 이야기는 무척 간결하다. 그런데 그게 또 이해가 간다. 신이 주려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그 분이 주신 여러가지 중에 우리 안의 하나의 힘 - 사랑과 믿음, 희망 - 에 더 정성껏 물을 주는 '자유의지'를 선택하길 바라며, 그럴 자질이 우리 안에 있다고 믿고 기다리시는 것이라고, 그것이 그 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삶을 살아내고,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의지하며, 부단히 회개하여 멀어지면 돌아가고, 멀어지면 다시 돌아가는 삶을 살라는 이야기.
의도하진 않았지만, 사순절에 읽기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