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부활의 삶
어제 회사에 출근했는데 컨디션이 계속 떨어졌다.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화요일 교리 공부를 갈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언니와의 약속이기도 해서 갔다. 그리고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면 신랑이 걱정할 것 같고, 나 스스로도 실망할 것 같아서 일단 몸을 움직였다. 어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공부하는 첫날이었고, 천주교에서는 예수의 부활이 굉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중에서 매일 어제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로, 죄가 없는 삶으로 새로 태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매달려 매일매일을 긴 생애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던 내게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매일이 새로 주어지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와닿지 않았는데 매일이 부활의 삶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오늘과 다른 새로 태어남이라니. '태어난다'는 것이 새로운 명제로 다가왔다. 사는 것만, 죽는 것만 생각했지, 태어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컨디션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과 같지 않은 내일을, 어제와 같지 않은 내일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각성시켰다.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은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 오늘은 회사에 나갔지만, 내일은 집에서 나를 돌볼 수 있다는 생각이 기운이 나게 만들었다.
신랑이 나에게 성당에 가자고 한 것은 (친구 부부와 저녁과 술 한잔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사람에게 의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먼저 종교를 가져본 사람으로서 신에게 의지할 때 얻는 위안이 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단다.
신랑이 천주교로 이끌어준 것에 교리 공부할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사실 아직 종교로서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님을 완전히 받아들였다기 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신의 위대한 질문 등 그리스도교 관련 예술작품이나 인문서적을 보면서 가졌던 의문들이 하나씩 맥락이 생겨서 재미있는 '공부'로 하고 있다. 미사도 멋모르고 할 때보다 알고 하면 더 재미있어 지니까 그래서 '공부'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힘들 때, 가끔 아무도 없는 성당에 가서 울고 오거나, 미사 때 펑펑 울고 올 때가 생각나면서 어쩌면 가끔은 내 마음이 하늘 어딘가에 닿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도 자신이 해 줄수 없는 부분까지도 나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닿아서 천주교에 인연이 생긴 것이겠거니 생각하니 고마왔다.
큰 언니가 성당은 사람보고 가는 곳이 아니라 주님과 독대하러 가는 곳이라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가는 곳이니 부담가지지 말라고 했던 것이 계속 생각이 난다. 사람에 휘둘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종교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프로젝트가 이제 하나 남았다. 다시 병가를 냈다. 다음주 프로젝트가 끝나면 마무리하는 동안만 잠깐 가고 올 겨울은 쉴 생각이다. 그 동안 매일 새로 태어나는 삶을 살 수 있겠지. 어떤 식으로든 달라지겠지 라는 생각에 희망을 걸어본다.
계속 읽고 있는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를 보면, 나이 들면서 희망과 절망을 오갈 때 거기서 어느 쪽에 시소를 기울여 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희망과 절망의 감정과 생각을 구분해 놓은 표를 보면서 나는 노년기에 겪는 절망감을 젊어서부터 끓어안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생각했고, 이러다가 젊은 나이에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희망의 영역으로 나를 데리고 가야한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의지대로 한번에 되지 않는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매일 노력하면 될 수도 있다. 매일 플랭크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처럼 나의 뇌가 조금씩 움직여주지 않을까.
몇 일전에는 일기도 쓰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맥주도 마시고 방탕한 밤을 하루 보냈다. 일주일간 노력해서 줄인 몸무게도 하루만에 복귀했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운동도 하고 일기도 썼더니 몇 일만에 몸무게도 다시 내려가고 일상도 복귀했다.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래도 백스텝, 투스텝을 옮기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우울을 넘어 조울로 온 단계에서 혼란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겠다는, 나 자신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온 것만해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EBS의 위대한 수업 정신건강 분야의 우울증 강의를 맡은 분도 정신건강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우울증 환자를 30년 동안 수행해왔다고 한다.
우울증은 감기가 아니어서 한번 우울기제가 생기면 생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 같다. 나도 평생 우울증 환자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살 수 있다. 관리하면서 잘 살 수도 있다. 그런 희망을 보았다. 그녀도 일을 하면서도 우울증이 왔는데도 직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든든한 남편도 있고, 이렇게 일을 그만두는 것이 너무 슬프다는 나를 위로해주는 언니도 있고, 쉬면서 새로운 것을 잘 찾아보자는 친구도 있으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잘 방치하면서 지치지 않고 잘 살아나가기를. 오늘도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