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원선 Feb 24. 2019

요가일기 02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나는 후굴(머리를 뒤로 젖혀서 허리를 활처럼 꺾는) 아사나가 잘 되지 않는다. 척추가 뻣뻣해서 그렇겠지. 한 아사나를 오랜 시간동안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련하는 하타요가 시간에 부장가아사나(코브라자세)를 5분 동안 했던 날, 다시는 허리를 못쓰는 줄 알았다.


부장가아사나(Bhujangasana, 코브라자세). 유연하시네요.


전굴(몸을 앞으로 숙이는) 아사나는 후굴보다 좀 낫다. 호흡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더 앞으로, 조금씩 더 아래로 몸을 움직여본다. 처음에는 발끝과 손끝이 맞닿을 뿐이었지만 얼마 후에는 발날을 잡을 수 있게됐고 지금은 한 손으로 다른 쪽 손목을 잡을 수 있다. 내 몸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는 이렇게 예상하지 못하게 찾아온다.


파스치모타나아사나(Paschimottanasana, 앉은 전굴자세). 유연하시네요 2.


잘하는 것이 좋은 까닭은 편안함과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한 단계 올라선 느낌에 두둥실, 마음이 붕 뜬다. 가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날,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날이면 거실에 매트를 펴고 가장 자신있는 아사나를 반복한다. 다 끝나고 매트에 누우면 모든게 좀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혼자 요가 루트는 거의 똑같다. 시작은 무조건 수리야 나마스카라 A를 10번, B를 10번 반복하는 것이다.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다.


못하는 것이 좋은 까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힘들어하는 또 하나의 아사나 중 하나가 한 발로 균형을 잡는 종류의 아사나다. 매번 실패하고 매번 좌절감을 안겨준다.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지. 오늘도 또 실패했네. 지난 금요일 수련이 끝나고 선생님과 잠시 대화를 했다. 평소 한발서기 아사나가 잘 되지 않는것에 속상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있는 선생님이 스쳐지나가듯이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니까요." 하고 얘기해주었다. 살면서 숟하게 들어왔을 말인데, 그 때처럼 마음에 와서 박힌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나니 어렵게 느껴지는 아사나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안에는 앞으로 내가 계속해서 수련해야 할 이유가 담겨있었다.


선생님과의 감사한 대화 후 받았던 한라봉. 그 날을 잊지 않기위해 찍어두었다.


하지만 참 쉽지 않은 이야기다. 얼마 전에는 혼자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 연습을 해보다가 앞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허벅지에 큰 멍이 들기도 했다. 아직은 갈팡질팡 중인 것 같다. 잘하는 것만 하려는 관성의 나와 못하는 것에도 과감히 도전해보려는 새로운 나 사이의 헤맴. 이 내면의 긴장감이 싫지 않다.


이 긴장감은 요가를 수련하며 마주하게 된 새로운 느낌인데, 아주 건강한 감정임에 틀림없다. 잘하는 것은 좋고 못하는 것은 싫으니까 서랍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려고만 했던 내게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수련할 때마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 대로 사랑하고 못하는 것은 못하는 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모두 다 내 것임을 배우고 있다. 그 길 위에 있는 것이라면 다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일기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