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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우리는 다시 만날 테지만, 우리는 우리를 만나러 갈 때와 우리와 헤어져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잠들어 있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어울려 보냈던 20대 초반에 쓴 ‘이시대 우리는 우리는’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아마도 ‘친구’라는 존재의 소중함과 그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동시에 말해주는 싯구일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친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친구와의 관계 형성은 다양한 경험의 장을 만들어주고 친구 무리를 통해 희생과 인내를 몸으로 익힌다. 친구와의 대화로 사회를 비판하고 정치에 참여하기도 하며 친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혼자서는 얻기 힘든 뜻밖의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친구야’ ‘칭구칭구’ ‘친구 아이가?’ ‘친구잖애’ ‘친구여, 친구’ 같은 정감 어린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친구는 삶의 많은 순간에 큰 영향력을 준다.
그렇지만 소중한 친구들도 결국 연약한 인간이다. 그래서 그 한계를 예측해 마지노선을 정해두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존감이 강해져 불평등하거나 불합리한 관계를 용납하지 못한다. 어릴 때는 주도권을 쥔 친구에게 불만을 갖지 않다가도 나이가 들면 ‘내 삶이 먼저’라는 생각이 앞선다. 다만 ‘관계의 주도권’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지갑’이다. 복지사회가 되지 않는 한 지갑의 영향력은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 친구들만 믿고 살 순 없다. 사람 친구들과는 별도로 또 다른 듬직한 친구들을 만들어둬야 한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불안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
그래서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 그들과 세상을 즐기되, 내가 제시하는 또 다른 친구들과도 절친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 이제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다섯 친구를 소개한다.
대자연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든든한 친구는 ‘대자연’이다. 내 인생의 시그니처 장면 대부분은 대자연이 연출한 장관이었다. 다른 충격적인 장면들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대자연과의 만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장면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숲 속에 있는 듯 마음에 피톤치드가 돌고 석양을 바라보던 감동의 도파민이 온몸으로 퍼진다.
대자연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뒷동산에도 있고 강가에도 있고 바다를 횡단하는 대교 위에도 있다. 아파트 샛길에도 있고 출근길 가로수길에도 있고 사무실 창밖 풍경에도 있다. 그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며 가까이할수록 친숙해진다. 비 바람 산 바다 숲 하늘 별 석양 나무 강 오솔길 시냇물 꽃 새싹 등 셀 수 없이 많은 얼굴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건강한 생명으로 훈련시킨다.
고독
다음 친구는 조금 독특하다. 그럼에도 활용도와 가치가 높아 우선적으로 소개하고 싶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가족, 학교 친구, 동료, 동호회 등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관계 속에서 소외되거나 단절되는 상태를 ‘외로움’ ‘허전함’ 같은 부정적 단어로 치부한다. 인간은 외로움을 싫어하는 속성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을 준 것은 ‘고독의 신세계’였다. 누구의 간섭도 영향도 없이 그 신세계에 들어가 찬란한 존재감과 무한한 여유를 누렸다. 고독은 일상에 평정심을 심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고독은 매력적이고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좋은 친구다.
책
언제든 나를 위로하고 성장시킬 준비가 된 친구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인 친구, 방대한 지식과 처세술, 흥미진진한 감동과 전율로 가득한 그 친구의 이름은 ‘책’이다. 책과 친해진 사람 가운데 악한 이는 본 적이 없다. 화가 나도 책을 손에 들면 평정심을 찾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한두 시간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선택이 선명해진다. 우울하기 쉬운 사람이라면 책을 상비약처럼 지니길 권한다. 책을 읽기 힘들면 들고 다니기만 해도 좋고 책장에 정리해 자주 바라보기만 해도 일상 평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과 친하게 지내는 습관은 어떤 금수저보다 큰 복이다.
음악
음악이 없었다면 ‘낭만’과 ‘풍류’라는 단어가 있었을까. 다시 산다면 가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직업이 아니더라도 음악과 함께할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개인 성향과 환경, 그날의 기분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장르도 다양하다. 약간의 발품만 팔면 미술과 오페라와 관현악과 명작영화 등 많은 예술을 즐길 수 있다. 내 마음의 풍요는 그들과의 교감에 따라 좌우된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찾아와도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종합예술창고’를 쌓아두자. 얼마 전 듣다 발견한 락발라드 한 곡은 두 달 가까이 나를 감동시켰다. 한 곡으로 오랜 여운을 얻을 수 있다니 축복이다. 매월 소액으로 모든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시대이니 이 친구를 최대한 활용하자.
스포츠
마지막 친구는 ‘스포츠’다. 야구광 축구광 탁구광 당구광 골프광 등 다양한 스포츠에 빠진 이들을 본다. 이들은 직접 참여하거나 경기 관람을 통해 강한 집중과 거친 호흡에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직접 하지 않아도 관중석에서 몰입해 즐기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쾌감을 느낀다. 응원팀을 따라 원정까지 가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스포츠는 나를 위한 스트레스 해소책이며 소중한 취미다.
지금까지 어떤 인간 친구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다섯 친구를 소개했다. 100년이 되지 않을 내 인생의 보물창고를 풍요로운 신비한 물질들로 채우고 싶다면 이 다섯 친구를 가까이하라. 가까이할수록 인생에 보탬이 될 것이다. 더 좋은 점은 이들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좋은 친구들인가. 지금 당장 이 다섯 친구를 인생의 절친으로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