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내 삶에 걸쳐있는 구김살들

(PP)

by 윤호준

누구에게나 쉽게 말하지 못할 어두운 경험이나 그늘진 흔적들이 있다. 그것은 공개하기 힘든 부끄러운 경험일 수도 있고, 스스로 저질렀던 잘못의 흔적일 수도 있다. 몇십 년 동안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불완전하기에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그런 기억들을 우물에서 꺼내 햇볕에 말려야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친다면 그럴 기회조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부끄러운 경험들을 솔직히 고백해 보려 한다. 그리고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을지도 모를 크고 작은 ‘비겁함’이나 ‘악행’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다.




찬장속 홍시

어릴 적 나는 마루 한쪽 찬장 깊은 곳에 비상용 음식을 숨겨 두곤 했다. 형이나 누나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간식, 혹은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를 위해 챙겨주신 음식들 중 일부를 몰래 나만의 비밀공간에 두었다가, 배고프거나 먹고 싶을 때 꺼내 먹는 것이다. 산골마을의 일상은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삼시 세끼와 군것질은 늘 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마당에서 신나게 놀다 보니 점심때를 훌쩍 지나 버렸다. 한창 농번기라 끼니를 챙겨줄 사람도 없었다. 그때 나는 찬장에 홍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들에게 내놓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친구들이 지쳐 돌아간 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도, 그다음 날에도 찬장을 열지 않았다. 결국 아껴둔 홍시들은 찬장 안에서 구슬피 썩어갔다.


단한번의 싸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까지 걸어가는 길이 아직 어린 꼬마들에게는 제법 긴 여정이었다. 보통은 우리 마을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 그 길을 따라 매일 여행하면서 가재를 잡고 알밤을 주워서 먹기도 하고 강아지들과 장난치고 오이를 따서 먹고 그리고 쉴 새 없이 장난치고 재잘거리고 고함치고 달리고 또 어깨동무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용이와 단둘이서 하교를 한 적이 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원백일리 근처 비포장도로에서 둘이 치고받으며 싸웠다. 이상하게도 내가 조금 더 많이 때린 듯하다. 동네에 이르러서는 웃으며 헤어졌지만, 지금도 마음이 쓰인다. 길용이는 남자 동창 여섯 명 중 가장 왜소하고 불쌍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아마 사소한 말다툼이었는데도 내가 이기고 싶어 더 세게 나간 것이리라.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산돼지의 쓸개즙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겨울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뒷들에서 웅성웅성하는 어른들의 소리가 들렸다. 얼른 옷을 챙겨 입고서 나가 보니, 산돼지가 쌀가마니 속에 묶여서 힘겹게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신음하는 소리도 애처로워 보였다. 동네 어르신들은 뭔가를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동네 형님들이 산돼지를 지게에 짊어지고는 큰 개울가로 옮겼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산돼지의 목에서 피를 받아내고는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으니, 배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렇게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는데, 동네 형님이 급하게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쓸개즙를 마시면 무서움이 사라지고, 없던 용기도 생긴단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만 마셔보라고 권했다. 곧바로 소금을 먹으면 괜찮다고도 했다. 당시 큰누나가 좋아했던 TV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으로 인해 한여름 밤에도 두꺼운 이불속에 갇혀 귀를 막고 있어야 했던 나는 덜컥 형님의 말을 믿어버렸다.


고3 자취방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좋은 대학은 어렵겠다는 걸 인정해야 했지만, 뭔가 특단의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형국이와 성원에게 제안했다. “학교 앞에 자취방을 얻어 같이 공부해 보자.” 뜻밖에도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동의했고, 우리는 달동네 언덕배기의 낡은 방 하나를 마련했다.

처음 한 달은 의도대로 공부방을 활용했지만, 조금씩 금이 갔다. 셋이서 해변에 놀러가기도 하고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의 고민과 친구들의 방황이 함께 얽히며 계획은 무너졌다. 불안감이 쌓여가자 결국 일을 주도한 내가 먼저 짐을 쌌다. 궁색했지만 ‘연탄가스 위험’을 핑계로 고3 자취생활을 끝내자고 했다.


약속과 취소

소중한 아이가 태어났지만 맞벌이 부부라 평일 낮에는 보모에게 맡기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최대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거의 매 주말마다 계획을 세워 여러 곳을 다니며 체험을 하고 또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러던 중 진철이네 가족과도 주말 가족동반 모임을 약속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만나 재미있게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으며 놀자고 한 것이다. 내 인생의 절친 중 한 명이었기에 그 주말을 무척 기대했다. 아마 진철이도 그랬을 것이다.

약속 당일, 아이가 전날부터 보이던 미열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약을 먹이고 정성껏 케어했지만 아침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지켜보다가 결국 마지노선을 넘겨버렸다. 약속시간 30분 전에서야 오늘은 못 가겠다는 연락을 했다. 가족과 함께 만남을 준비했을 진철이의 입장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만나고 싶다는 기대감 때문에 약속 취소 결정을 너무 늦게 내려버린 것이다. 속상했다. 진철이는 또 얼마나 속상했을까.


해외여행이 싫어

나는 해외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회사에서 글로벌 연수라는 명목으로 해외여행 대상자로 선정했다. 그것도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호주 여행’이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냐고 물었지만 ‘포상 연수’라 대상자 변경은 불가능하고 포기는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래, 이미 확정된 거니 한 번 다녀오자’라고 결심했다.

해외여행은 예상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좁은 비행기 안에서 10시간을 버텨야 했고, 5박 6일 일정은 학원가를 뱅뱅 도는 중학생 스케줄처럼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솔직히 호주는 나에게 그저 사이즈가 조금 큰 제주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썩 유쾌하지 않은 일정을 보내던 중, 호주에서 가장 크다는 ‘OO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그러나 전날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인지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아, 수려한 외관의 화장실을 찾았다.

볼일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아뿔싸! 물 내림 버튼이 없는 것이었다. ‘아, 이럴 수가! 버스가 곧 출발할 텐데 도대체 버튼이 어디 있는 거야? 이거 참 큰일이네’라며 당황했다. 아무리 찾아도 물 내림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변기 뚜껑을 닫고 화장실 문을 나와 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귀국 후 알아보니, 호주의 어떤 화장실은 손 씻는 물을 트는 순간 변기 물도 함께 내려가는 방식이라고 한다.)


발길질의 추억

골프를 하다 보면 동반자의 성향에 따라 내 마음도 달라진다. 티잉그라운드에서 티샷을 준비하는데, 동반자가 계속 대화를 이어가거나 상습적으로 ‘구찌’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어느새 나도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이 불타오른다.

늦가을의 한 평화로운 라운딩이었다. 활엽수 잎들이 코스 경계에 쌓여 실시간으로 치워내기 힘든 계절이었다. 게다가 그날은 고수들끼리 친목 경기를 하는 자리라 긴장감이 팽팽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홀에서 내 티샷이 우측 산등성이 쪽으로 슬라이스가 나버렸다. 다행히 볼이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 세이프 상태였으나, 세컨드 샷을 하기엔 위치가 나빴다. 바로 앞에 소나무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3미터만 왼쪽으로 옮기면 파 세이브가 가능할 것 같았다. 10초쯤 머뭇거리다 결국 오른발로 툭 건드렸다. 작은 발길질이었지만 지금도 마음속 구김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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