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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업에서 오랫동안 B2B 영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틱하고 짜릿한 수주도 많았고, 몸속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치열한 경쟁도 겪었으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실패의 순간도 맞이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한 번은 업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대형 사업 수주가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진입 초기라 경쟁사들에 비해 수주 확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사업 종료 후 발주사 결정권자와 차를 마시던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합했던 네 개 회사의 제안서는 박빙이었습니다. 사업추진단에서 고민이 컸죠. 그래서 제가 평가에 참석했던 단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회사가 가장 적극적이었는지, 그리고 어느 영업대표가 가장 절실하게 참여했는지를요.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가 차장님 회사를 꼽았습니다. 심지어 한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A 영업대표와 얘기를 하면 어깨가 들썩이고 에너지가 생깁니다. 아마도 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딱 맞는 맞장구를 쳐주기 때문일 겁니다.’ 하하, 놀랍지 않습니까? 그 맞장구가 선정 이유였습니다.”
우리 동네와 회사 주변에는 편의점이 정말 많다. 블록의 코너마다 브랜드별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풍경은 사뭇 다르다. 어떤 곳은 늘 손님들로 붐벼 줄을 서야 하고, 또 어떤 곳은 휑하니 손님이 간간이 드나든다.
어느 날 무알코올 맥주를 사러 X 편의점에 들러 진열 위치를 물었더니, 직원이 무심하게 말했다.
“맥주 코너에서 찾아보시면 됩니다.”
한참 고개를 숙여 찾았지만 종류는 두 개뿐이었고, 원하는 브랜드도 없었다. 그래서 P 편의점에 가서 다시 물었다.
“네, 손님! 저희 매장에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맨 위쪽에 나란히 진열돼 있습니다. 혹시 더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는 황급히 계산대로 돌아갔다. 똑같은 질문에 대한 태도 하나가 매출을 바꾼다.
재활용 분리배출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배출량이 늘어 주 1회에서 2회로 주기를 늘렸다. 그런데 분리수거장에 가면 경비원이나 지원센터 직원이 곁에 서서 감시하듯 지켜보는 경우가 있었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괜히 불편했다.
어느 날 퇴근 후 분리배출을 하러 갔더니,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다가와 바구니를 빼앗듯 받아들더니 능숙하게 분류를 끝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퇴근하고 하기 귀찮죠? 허허. 그래도 종이랑 비닐은 따로 모아오면 더 편합니다.”
그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불편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낯선 곳에서 식당을 찾을 때도 비슷하다. 만족도는 들어서는 순간에 결정된다. 문을 열었는데 묵묵부답, 앉자마자 “뭘로 드실래요?”라는 무뚝뚝함, 혹은 바짝 붙어 과잉 주문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다시 찾고 싶은 식당은 이렇게 다르다.
“어서 오세요. 날씨가 춥죠?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손님이 메뉴를 고르는 눈짓을 하면 “뭘로 준비해 드릴까요? 약 10분 걸립니다.”라고 말한다. 반찬이 비면 먼저 와서 “더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억지로 시간을 때우고, 누군가는 친절한 말 한마디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수산시장이나 전통시장에서는 과도한 호객행위가 익숙하다. “이리 오세요!”라는 외침에 미안함과 부담감이 함께 밀려온다. 큰 목소리와 손길은 오히려 발길을 돌리게 한다. 반면에 가벼운 미소와 낮은 목소리로 맞이하는 집에는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같은 상황도 반응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SNS 소통도 마찬가지다. 백 명이 넘는 단톡방에서는 짧고 명료한 팩트 전달이 중요하다. 그러나 친목 모임이나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맞장구가 큰 역할을 한다. 애매한 상황에는 이모티콘이나 줄임말로 재치 있게 맞장구를 쳐주는 것도 좋다.
다만 SNS는 늘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응. 그건 내가 알아서 해볼게.” “내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해야지.” “알아서. ㅠㅠ”
의도는 같아도 전해지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중요한 대화는 직접 목소리로 하는 게 가장 좋다.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뉘앙스 차이가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자나 카톡은 반드시 한 번 더 읽고 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오탈자나 어색한 단어가 반드시 발견된다.
나는 일상 속에서 맞장구, 반응,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해 왔다. 이는 전문 교육이나 큰 비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금씩 습관이 되도록 길들이면 된다. 혹시 귀찮고 피곤하다면, 항상 켜둘 필요는 없다. 단지 상대방과 마주했을 때만 스위치를 켜면 된다.
내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풍요를 더해 준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이제부터 누군가를 만나거나 함께 있을 때는, 내 몸의 맞장구 스위치를 미리 켜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