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탁월한 지능과 거대한 종교 그리고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 정신으로 '지구'를 지배하고, 이제는 다른 행성들까지도 점령하고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류! 지금까지의 진화 과정도 대단했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해가 갈수록 더욱 완벽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인류가 아직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생명 연장이나 영생에 관한 기술, 마음을 읽고 조정하는 기술 그리고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편견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오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자식이 둘이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첫째보다 둘째에게 더 정이 간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똑같은 행동을 해도 큰 놈이 하면 소극적인 리액션이 나오고, 작은놈이 하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져.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 아무리 생각을 바꾸고 바로잡으려 해도 그게 잘 안돼. 특히 이렇게 술 한잔하고서 돌이켜 보면 더욱 괴롭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유사한 이야기를 이 친구에게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출처를 알 수 없는 '편견의 덫'에 갇혀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 똑같은 사랑으로 품어야 할 자식들에 대해서도 크고 작은 편견이 작용하는 걸까?
편견은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수, 진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편견이다. 정치권은 모든 사회적 집단을 통틀어 이해할 수 없는 의외성이 가장 많은 분야이다. 선거권을 갖고 있는 국민과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 관계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독특한 분야이다. 그래서 더더욱 상식적인 관점에서 정치적 발전을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범죄에 대한 이중적 잣대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구도는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뉜다. 통상 보수는 '자유'를, 진보는 '평등'의 구현을 목적으로 활동한다. 그렇기에 보수는 기업과 노동자, 부자와 가난한 자 등에 크게 규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태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그러나, 진보는 노동자가 착취를 당하지는 않는지, 가난한 자가 복지 혜택을 추가로 받을 수 없는지 등에 대해 최대한 간섭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경제적 범죄에 대해 언론, 학계, 시민 그리고 정치인 스스로도 엇갈린 잣대를 댄다. 동일한 불법행위나 범죄행위에 대해 보수정치인들에게는 너무나 관대하고, 진보 정치인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왜 동일한 죄를 저지르고도 어떤 사람은 고개를 떳떳하게 들고 다니고, 또 어떤 사람은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회복하지 못할 절망에 빠져 버리는가? 왜 인간은 동일한 사안에 대해 이중잣대를 댈 수밖에 없을까?
공정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또 있다. 한국인들에게 유독 잘 발달된 사회적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서열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그것을 지키고 또 즐긴다. 작은 힘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이용하려고 애쓰고 또 힘 있는 자에게서 떨어지는 작은 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고 애쓴다. 그래서 옳고 그름이나 참과 거짓의 판단이 서열이나 힘에 의해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결정을 하기 위해 찬반투표를 할 때도 힘과 지위를 가진 사람의 의견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실제로는 반대 의견이 더 옳은지 알면서도 말이다. 일제 강점기의 상처가 너무나 컸던 탓일까? 군사정권의 그늘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착한 사람은 주변에 많다. 각각의 개인을 평가해보면 인간적으로 아주 나쁜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저 이 시대의 생존 환경 자체가 다소 이기적일 수밖에 없어 착한 사람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착한 사람을 '바보'라고까지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착한 사람들 중에서도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희생하여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다. 가끔씩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금방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흔들린다.
그런데 어느 날 카페에서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누다가 아내에게 전화가 왔는데, 다소 놀라운 상황이 발생했다. 이 분이 완전히 돌변하는 것이었다. 욕이나 다름없는 언어를 써가며, 아내를 다그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랐다. 그래서 헤어지기 직전에 '아까 형수님과 통화하면서 왜 그렇게 화를 냈냐?'고 물었다. '네? 내가요? 내가 정말 그렇게 화를 냈어요?'라고 당황해하며 되묻는 것이었다. 그는 거의 습관적으로 아내와의 통화를 그렇게 해왔던 것이다. 이유를 듣긴 했으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보통 착한 사람이 잘못을 하면 손가락질을 하고, 나쁜 사람이 착한 행동을 하면 감동을 한다.
이 지구를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최고의 능력자마저도 이 편견이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공론화하면 세상의 지배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허무함'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한번 짚어보자. 어쩌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우리 모두가 그저 나약한 인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편견으로 인한 피해자와 피의자가 모두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전제하에, 그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