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수능 응원 선물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아들의 수능시험일이 다가오자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인들이 보내주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마음을 포근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응원 메시지들은 보통 단독으로 오는 게 아니라, 화려한 초콜릿을 입히거나 혹은 형형색색의 찹쌀떡 사이에 붙어서 오거나 혹은 달콤한 생크림 케이크 속에 묻혀서 배달된다. 내가 학력고사를 볼 때는 노랑 엿가락이나 전국 방방곡곡에 똑같이 생긴 흰 찹쌀떡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그 종류가 정말로 다양했다. 마치 지금의 수험생들이 누리고 있는 수시 6곳, 정시 3곳에 동시에 응시할 수 있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입시제도를 반영하는 듯했다.


실제 우리 세대는 특정 대학의 특정 학과 한 곳을 먼저 지원한 후에 그 대학교에 직접 가서 학력고사를 치렀다. 그것도 전기대에 한 번, 후기대에 한번 그리고 전문대 등 딱 3곳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 출시부터 시험 주관 그리고 점수 평가까지 학교가 담당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고 무책임한 제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학력고사가 선지원 후시험으로 진행된 것은 1988년부터 1993년도까지 딱 6년이었다. 그 시기에 대학 진학을 위해 시험을 치렀던 국민들은 뜻하지 않게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입시제도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찹쌀떡 얘기로 돌아가자. 아들의 수능시험일이 다가오자 이미 보름 전부터 아내의 퇴근길 양손에는 1~2개의 종이가방이나 비닐팩 등이 들려져 있었다. 그러니 매일 저녁마다 셋이 모여서 그 내용물들을 열어보는 것도 수능 모드로 인해 단조로웠던 집안 분위기에 흥미를 불어넣어 줬다. 그 각각의 선물들은 대부분 포장이 화려했을 뿐만 아니라 맛 또한 상당히 훌륭한 먹거리들이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아내와 함께 동반 입장하는 수능 격려품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달리 생각해 보니, 이 이벤트 자체가 나에겐 다소 난처한 상황인 것이었다. 부부가 둘 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또 직장 근속연수도 거의 비슷한데 매일 저녁 한 사람 손에만 격려품들이 들려져 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온갖 취미생활이나 스포츠 활동 등 놀이를 위한 친목모임은 내가 훨씬 더 많이 즐기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녁 이벤트 자체에 대해 흥미가 떨어졌다. 게다가 선물 숫자에 대한 풍요와 빈곤 상황이 은근히 부담되기도 했다.



때마침 다음날 친한 형들과의 한나절 공원 나들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중년 남자 넷이 수변 산책로를 걷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였다. 가을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풍경들을 향유하며 걷다가 쉬고 또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순서 없이 이야기하던 중, 형들이 갑자기 아들의 수능 얘기를 꺼냈다. 앗! 이때다 싶었다. 그래서 25년 지기 형들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솔직하게 얘기했다. 수능을 코앞에 둔 시기에 '아내의 퇴근길 양손과 나의 양손이 조금 비교가 된다'라고 말이다. 그 한나절의 일정의 끝날 때 즈음, 흔쾌히 OO 베이커리로 끌려가 양손 가득 집으로 가져갈 응원 메시지들을 확보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각종 모임의 단독방에 은근슬쩍 수능 정보를 흘려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날 13명이 정회원인 골프 동호회 단독방에다가 어느 형이 글을 올린 것이다. '윤프로님! 이번 주 수능이네요. 행복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톡이었다. 궁지에 몰린 나를 구제해 주는 응원 메시지였다. 그걸 확인한 회원들 대부분은 격한 응원 멘트와 이모티콘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 역동적인 이모티콘들은 몇 시간이 흐른 저녁시간에도 계속되었다. 어! 엥?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그 응원의 메시지들 하나하나가 정말 고맙고 가슴 뭉클했다. 그런데,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 역동적 이모티콘들을 양손에 들고 퇴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내는 그날도 여러 개의 격려품들을 양손에 들고 퇴근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새삼 흐뭇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 한 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참 진실되게 살고 있구나'라고.



P.S 실제 나도 쿠폰 6개, 선물로 9개를 받았다. ㅎㅎ 혹시 그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서운하게 생각할까 봐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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