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인생에서 3가지를 끊다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어머니와 나를 신비롭게 이어줬던 탯줄이 끊긴 이후에 무엇인가 인위적으로 끊은 적은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줄곧 새로운 것과 연결되거나 새로운 사람들과 결합하거나 혹은 새로운 조직과 사회에 이어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동네에서 혹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 다양한 관계를 형성해 가고, 직장에서 한 팀을 이루어 어떤 미션을 위해 의기투합하고, 또 일상생활의 취미활동 등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이어져 왔다. 연결과 연결 그리고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살벌한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다 보니, 하나둘씩 끊어야 하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진 습관이나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힘든 일이었다. 인간은 심성이 착하고 유혹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엇인가 확실하게 끊어야 할 때나 혹은 절실하게 정리해야 할 때는 흔들리지 말고 끊어버려야 한다. 특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면 빨리 인정하고 끊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 솔직히 쉽지 않은 이야기다. 이제부터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던 3가지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담배다. 나는 담배를 비교적 늦게 피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도 한 번도 피운 적 없었고, 대학에서 음악밴드를 할 때도 담배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심지어 훈련소 신체검사 직후에 의무관이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판정을 했는데도, '어차피 왔으니, 현역으로 복무하고 가겠습니다.'라고 쓸데없는 애국심을 발휘한 군 생활에서도 내 몫의 담배는 동기들이나 후배들의 차지였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 집으로 내려가기 전에 들렀던 옛 친구의 공터에서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쓰러져 버렸다. 친구가 꺼내어 피운 담배의 향이 약간 긴장하고 어색했던 나의 마음을 흔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나도 하나 줘봐'로 시작했다. 그날부터 딱 20년 동안 피웠다. 거의 하루에 한 갑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싫었던 것은 흡연과 함께 동반되는 침 뱉는 행동이다. 내 몸속에서 꼭 필요한 기능을 하는 소중한 재원들을 몸 밖으로 죄다 뱉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휴일 오전에 슬리퍼를 끌고 슈퍼마켓에 가서 담배를 한 보루 사들고서 '풍요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 싫었다. 결정적으로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나서도 담배를 한대 피우고 잠들어야 하는 그 안타까운 중독이 역겨웠다. 그래서 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뜻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3개월 또 3개월 그다음엔 4개월 끊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단 한 모금이라도 연기를 마셨다가는 바로 도돌이표였다. 언제 몇 개월을 끊었었냐는 듯 바로 그때로 돌아왔다. 심지어 11개월을 끊었다가 다시 피운 적도 두 번이나 있다.


그러던 어느 산책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회사 동료들과 기분 좋게 저녁식사와 함께 약간의 술을 곁들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단지 내 산책길로 이어지는 모퉁이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피우고 있었다. 기분도 좋았고 담배 연기도 멋있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때 저 앞쪽 코너에서 어떤 여자아이와 여성이 걸어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손가락을 펴고 아주 가볍게 인사하려고 하는데,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저기 담배 피우는 아저씨 있다. 우리 저~쪽으로 둘러서 가자"라며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방향을 돌려 가버리는 것이었다. 커다란 나무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정지해 버렸다. 담배는 손가락 사이로 타들어가는데 뜨겁지도 않았다. 그대로 얼마나 서 있었을까? 허탈한 웃음과 함께 뭔가에 홀린 듯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비치된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온갖 성냥까지도 종량제 봉투에 모조리 쓸어 담았다. 그리고 밖을 들고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쓰레기 집하장에다 내던져버렸다. 그 이후 단 한 번도 담배에 손도 대지 않았다.



두 번째는 프로야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일상에 가까운 취미생활 중의 하나가 바로 야구였다. 산골마을에 태어나서 축구를 할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큰 제각이 있는 묏동에서 테니스 공으로 야구를 하면서 놀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내 인생에서 야구는 계속되었다. 친구나 동료들과 캐치볼 하는 것을 좋아했고 군대나 대학에서도 야구를 즐겨했고 급기야 사회인 야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프로야구였다. 형제들이 모두 야구를 좋아했기에 일찍부터 프로야구의 통쾌함이나 짜릿함과 함께했다. 지방 연고의 특정 팀을 응원하다가, 우리 회사에서 프로야구단을 출범한 이후부터는 줄곧 우리 팀을 응원했다. 그런데, 야구라는 것이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있다. 일단은 경기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9회까지 혹은 연장 12회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한 경기당 평균 4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긴장감이 넘치고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될 정도로 스릴 넘치는 경기도 아니다. 그러니 틈틈이 맥주를 마시며 또 간식을 먹으며 장장 4시간을 소파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더욱이 나는 야구광이었다. 혼자서 야구장을 찾아 응원문화를 즐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응원하는 팀에 소속된 모든 선수들의 타율과 방어율 그리고 특이한 기록들까지 다 외우고 있었다. 더불어 야구와 관련된 까다로운 규정들도 잘 알고 있었고, 오심까지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쌓여 있었다. 혼자서 '중계&해설'이 가능할 정도였다. 내가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허공을 가르는 속사포 같은 타구와 다양한 구질로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마술과 같은 투구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몸을 던져 플라이볼을 캐치해 내는 예술 같은 수비들이었다.


그런데, 점점 승부와 순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상대방 선수의 훌륭한 실력에 야유를 보내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화를 내기 시작했다. 페넌트레이스에 진출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들에서는 과도하게 흥분한 상태에서 실수를 하는 선수들에게 욕을 퍼붓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의 기분이 야구 경기의 승패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위기의식이 쌓이자 특단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제 프로야구를 끊자'였다. 50대 중반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프로야구와의 이별인 것이다. 성공 여부에 대한 예측은 '노코멘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원수처럼 지낸 사람은 없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일일이 따져볼 수 없지만 적어도 나를 원수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독특한 행동이나 특이한 말들을 그저 그들의 '캐릭터'로 생각한다. 그러니, 악행을 서슴지 않는 나쁜 인간들을 제외하고는 무던하게 잘 지내왔다. 그 인연들은 일시적일 수도 있고 또 아주 오랫동안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과 영원히 친구로 지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여태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인연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 한동안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사람도 혹은 정말로 태어날 때부터 나빴을 것 같은 사람도 그리고 나에게 못되게 대했던 사람에 대해서도 그저 이런 사람도 있고 또 저런 사람도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자 나만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결국 결단을 내려야 할 사람들이 몇몇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승에서의 '인연'을 끊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혹은 오랫동안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인연을 끊는다는 것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가족이거나 혹은 친한 친구라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된다. 그런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확연히 적다고 생각되자 몇몇 인연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극소수의 인연들을 내 인생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인연을 끊기로 했다.



P.S.

추가로 끊어야 할 대상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은 '인생에서 3가지를 끊다(II)'에서 공개할 예정이지만 이미 그들과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라 결단을 내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술과 욕심 그리고 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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