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누구에게나 쉽게 말하지 못할 어두운 경험이나 그늘진 흔적들이 있다. 그것은 공개하기 힘든 부끄러운 경험일 수도 있고 또는 잘못을 저질렀던 흔적일 수도 있다. 몇십 년 동안 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어느 누군들 완벽할 수 있겠는가? 불완전하니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잘못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가끔씩 지나온 삶을 회상하며 스스로 그런 상황들을 우물에서 꺼내놓고 반성도 하고 또 햇볕에 말릴 필요도 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버린다면 그럴 기회가 소멸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남에게 쉽게 말 못 할 부끄러운 경험들이나 상황들에 대해 솔직하게 밝혀보려 한다. 그리고 내 안에 아직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크고 작은 '비겁함'이나 '악행'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아주 어릴 적에 마루에 자리한 찬장 깊은 곳에 비상용 음식들을 숨겨놓곤 했다. 형이나 누나들이 학교에서 가져다준 간식들과 할머니 드시라고 동네 사람들이 챙겨다 주신 음식들 중 일부를 나만의 비밀공간에 키핑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이나 그다음 날 배고플 때나 먹고 싶을 때 꺼내어 먹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산골마을 사람들은 풍요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삼시 세끼와 군것질거리가 귀했다. 그 무렵 나의 일상은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 친구들과 들판과 골목을 다니면서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마당에서 친구들과 정신없이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새 점심 식사 때가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한창 농번기라 우리에게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집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날 나는 찬장에 보관해 둔 홍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가난한 친구들에게 내놓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친구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도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찬장을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찬장에서는 아껴둔 홍시들이 구슬피 썩어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까지 걸어가는 길이 아직 어린 꼬마들에게는 제법 긴 여정이었다. 보통은 우리 마을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 그 길을 따라 매일 여행하면서 가재를 잡고 알밤을 주워서 먹기도 하고 강아지들과 장난치고 오이를 따서 먹고 그리고 쉴 새 없이 장난치고 재잘거리고 고함치고 달리고 또 어깨동무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용이와 단둘이서 하교를 한 적이 있다. 왜 그날은 단둘이었는지 그리고 왜 싸웠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원백일리 인근의 비포장도로에서 둘이서 한참을 치고받고 싸웠는데, 어쩐지 내가 좀 더 많이 때렸던 것 같다. 동네에 이르러서는 결국 웃으며 헤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그 상대가 길용이었다는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 길용이는 우리 동네 남자 동창생 6명 중에서 가장 왜소하고 불쌍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소한 말다툼이었음에도 내가 이기려고 애썼을 것이다. 기억은 전혀 없지만 그랬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더욱 아프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겨울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뒷들에서 웅성웅성하는 어른들의 소리가 들렸다. 얼른 옷을 챙겨 입고서 나가 보니, 산돼지가 쌀가마니 속에 묶여서 힘겹게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신음하는 소리도 애처로워 보였다. 동네 어르신들은 뭔가를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동네 형님들이 산돼지를 지게에 짊어지고는 큰 개울가로 옮겼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산돼지의 목에서 피를 받아내고는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으니, 배에서 뜨거운 생명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는데, 동네 형님이 급하게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쓸개를 마시면 무서움이 사라지고, 없던 용기도 생긴단다'라고 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아주 조금만 마셔보라'라고 했다. 곧바로 소금을 먹으면 괜찮다고 했다. 당시 큰누나가 좋아했던 TV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으로 인해 한여름 밤에도 두꺼운 이불속에 갇혀 귀를 막고 있어야 했던 나는 덜컥 형님의 말을 믿어버렸다.
고3이 시작될 무렵, 이미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래도 고3인데 뭔가 특단의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형국이와 성원이에게 '우리 등하교 시간을 많이 뺏기니, 학교 앞에다가 월세로 공부방을 얻어서 같이 공부해 볼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예상외로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두 친구의 부모님께서도 심사숙고 끝에 승낙을 하셨고, 우리는 학교와 가까운 달동네 언덕배기에 아주 작고 낡은 방 하나를 마련했다. 그리고 한 달은 공부방의 취지에 맞게 열심히 공부방을 활용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셋이서 광안리 해변을 찾기도 하고 선술집에서 하루를 허비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의 고민과 친구의 방황이 공동의 고민과 방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계획대로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럴수록 불안감은 더해갔다. 결국 애초에 일을 벌인 내가 먼저 짐을 쌌다. 궁색하지만 '연탄가스 리스크'를 핑계로 '세 친구의 고3 자취생활'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소중한 아이가 태어났지만, 맞벌이 부부라 평일 낮에는 보모에게 맡기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최대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거의 매 주말마다 계획을 세워서 여러 곳을 다니면서 체험도 하고 또 새롭고 신기한 세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진철이네 가족과도 주말 가족동반 모임을 약속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만나 재미있게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으면서 놀자고 했다. 내 인생의 절친 중 한 명이었기에 그 주말이 엄청 기대되었다. 아마 진철이도 그랬을 것이다. 어느새 약속 당일이 되었는데, 아이에게 전날부터 미열이 있던 것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약을 먹이고 잘 케어했으나 아침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하려다가 결국 마지노선을 넘겨버렸다. 약속시간 30분 전에서야 오늘 못 가겠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가족과 함께 만남을 준비했을 진철이의 입장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같이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약속 취소 결정이 늦어져 버렸다. 속상했다. 진철이는 또 얼마나 속상했을까?
나는 해외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회사에서 글로벌 연수라는 명목으로 해외여행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그것도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호주 여행'이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냐고 했더니, '포상 연수'라 대상자 변경은 안되고 연수 포기는 가능하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래 이미 확정된 거니 한번 다녀오자'라고 결심했다. 해외여행은 내가 예상했던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좁은 비행기에서 10시간을 견뎌내야 했고, 5박 6일의 모든 일정이 학원가를 뱅뱅도는 중학생 스케줄처럼 너무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나에겐 호주가 그저 사이즈가 조금 큰 제주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썩 유쾌하지 않은 일정을 보내다가 호주에서 가장 크다는 'OO 국립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계속된 술자리 때문인지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아, 수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려고 하는데, 아뿔싸! 물 내림 버튼이 없는 것이다. '아! 이럴 수가! 버스가 떠나기 전에 타야 하는데 도대체 버튼이 어디 있는 거야? 이거 참 큰일이네'라며 어쩔 줄을 몰랐다. 아무리 찾아도 물 내림 기능을 하는 그 어떤 장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변기 뚜껑을 닫고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서 버스가 정차해 있는 곳으로 곧장 질주해 버렸다. (*귀국 후 알아보니, 호주의 어떤 화장실들은 손을 씻기 위해 물을 트는 순간, 변기의 물도 함께 내려가는 방식이라고 한다.)
골프를 하다 보면 동반자의 성향에 따라서 내 마음도 달라진다. 티잉그라운드에서 티샷을 준비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동반자들과 대화를 주고받거나, 상습적으로 '구찌'를 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느새 나도 지지 않아야겠다는 승부욕이 생긴다. 어느 늦은 가을의 평화로운 라운딩이었다. 넓은 활엽 수 잎들이 코스의 경계선들에 쌓여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치우기에는 다소 역부족인 계절이었다. 더우기 그날의 라운딩은 고수들끼리의 친목 경기라 약간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주 중요한 홀에서 나의 티샷이 우측 산등성이 방향으로 슬라이스가 나버렸다. 다행히 내 볼이 코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세이프 상태였으나, 이대로 세컨드 샷을 하기에는 매우 좋지 않은 위치였다. 바로 앞에 소나무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3미터만 왼쪽으로 이동하면 파 세이브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약 10초간 머뭇거리며 고민하다가 오른발로 툭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