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누가 성취감을 평가하는가?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목표가 있고 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얼토당토않은 일확천금을 얻는다거나 혹은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초능력을 원한다거나 하는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이 아니라, 정말 인생에서 이것은 꼭 이뤄보고 싶다는 목표나 꿈을 일컫는 것이다. 그것은 보통 나의 일상 혹은 내가 속한 직장에서의 업무적인 미션과 관련된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 우선순위가 작고 소박한 1차적인 목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루어 내기 힘든 고난도의 목표가 우선순위의 첫 번째 대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회사에서 5년마다 진행하는 큰 사업 그러니까 성공하기 쉽지 않은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약 5년 전에는 발주처 자체 평가로 진행했던 사업을 이번에는 조달청 입찰로 진행했다. 그동안 나는 다소 과할 정도로 이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또 평가하고 있었다. 다른 유사한 사업들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본이 되는 사업이며, 경쟁사들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비록 회사에서는 그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이번 수주 과정들을 소개하면서 이번에 경험한 '역대급 성취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려 한다.
입찰 1년 전부터 RFI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했다. 키맨과의 잦은 미팅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6개월 전에는 RFP를 거의 완성했고 그 직후 입찰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사전규격 공고가 나오고 일주일이 지나자 예상대로 조달청 나라장터에 '본공고'가 떴다. 이제 숨 막히고 피 말리는 전쟁의 서막이 활짝 열린 것이다. 벌써부터 문득문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경쟁입찰 제도라는 것이 자격이 되는 모든 회사가 축적된 제안서 작성 능력과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열린 경쟁의 장'이기 때문에, 변수라는 것이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기본은 충실하게 준비하고 뜻밖의 상황에는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제안서 작성에 관여했다. 그저 정보만 제공하고 제안팀에 모든 것을 맡겨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느긋한 성격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안서 작성 스케줄에 대해 독촉하게 되고 또 제안의 방향성과 투자의 타당성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제안서 작성이 무르익을 무렵에는 제안의 인트로와 클로징을 직접 써서 보내주면서 전체적인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참고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1년 내내 고민해서 이번 제안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1%의 감성적 터치'가 실제 반영되지는 않았다. 기술적인 마인드와 합리적인 생각으로 무장한 제안팀과 상위레벨의 결정권자들에게는 그런 감성적 요소가 먹히지 않았다. 제안발표회를 이틀 앞두고 진행된 최종 리허설을 보면서, 거의 완벽한 제안발표라고 평가하고 싶을 정도로 그 완성도가 탄탄했다. 그러나 내가 준 성적은 99점이었다. 제안서 작성은 그 고유의 권한이 제안팀에 있기에 더 이상의 수정과 반영을 요구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결국 (내 느낌으로는) 1프로가 부족한 상태로 강행해야 했지만, 전체적인 퀄리티가 매우 훌륭했기에 리허설 후부터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안서를 제출하는 기간에 계속해서 나라장터 사이트를 접속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입찰 참여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우리의 사전 영업이나 제안 준비 상황들이 경쟁사의 참여에 영향을 미쳐, 혹시나 유찰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중요성을 경쟁사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결국 자격이 되는 모든 회사가 참여했다.
드디어 제안발표회 당일이 찾아왔다. 나는 벌써 일주일째 밤잠을 설치고 있었고, 최근 3일째는 새벽 2시경에 계속 잠이 깼다. 이 사업 이후에 찾아올 상황에 대한 온갖 상상으로 인해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안발표는 준비했던 대로 훌륭하게 진행되었고 질의응답도 깔끔하게 소화했다. '그래, 이제 됐다. 겸허하게 결과를 기다리자'라고 속으로 다짐하면서도,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점심시간인데도 어디론가 이동을 하여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조달청 나라장터의 개찰 결과를 2초에 한 번씩 클릭하기 시작했다. 클릭! 클릭! 클릭! 그리고 긴 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킨 후 다시 클릭! 클릭! 클릭!
그렇게 40분이 지났을까? 다시 클릭을 하는 순간 지난 40분 동안 긴장의 공백으로 있던 공간이 숫자와 문자로 빼곡히 채워졌다. 그리고 1/100초 만에 맨 위의 1번 라인에 우리 회사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열정의 빨간색으로 말이다. 그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내 몸과 마음의 모든 기운을 모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제안팀에서 평가한 이 사업의 규모는 총 26억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사업을 26억짜리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 파급효과와 시너지효과 그리고 자존심 효과까지 합치면 실제 200억이 훨씬 넘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실제 규모인 26억 도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면 5년 전 사업을 다시 수주한 재계약 사업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경쟁입찰이라는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우스운 논리일 것이다. 그런 단순한 염색체를 가진 사람들이 책상머리에 걸터앉아 엑셀로 실적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현장과 시장을 모르는 그 사람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한없이 주눅 들게 한다.
그러나 나는 상관없다. 1년 동안 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극적으로 수주한 쫄깃한 과정에서 스스로가 느낀 성취감으로 만족한다. 이런 기분은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매우 제한적인 카타르시스다. 앞으로 나에게는 초대형 사업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총규모가 100억이 넘는 사업이 2개이고, 30억이 넘는 사업이 2개가 연이어 시작된다. 이 사업들은 대부분은 신규사업이기 때문에 아마도 회사에서 실적으로 인정하고 박수도 쳐 줄 것이다. 그러나 그 4개 사업을 모두 수주한 기쁨을 합쳐도 이번 *그룹 수주와는 그 성취감이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중요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적과 나의 실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성취감을 평가하는가?
P.S
이번 *그룹 입찰경쟁에서의 수주로 인해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었던 들끓던 열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다른 사업들은 크게 애착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