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모든 일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삶의 수많은 과정에서 그 타이밍들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정말 순탄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타이밍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면 최상의 경우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거나, 아니면 어떤 일이 돌이킬 수 없는 힘든 상황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런 인식과 애티튜드는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초, 중, 고 교육은 그 커리큘럼이 입시에 매몰되어 있고, 대학 교육은 취업을 위한 공부나 공무원 시험 준비에 그 기본적인 기능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기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단기적인 목표나 중장기적인 청사진들을 일기나 혹은 메모 습관을 통해 기록하는 사람들은 그 타이밍을 잘 찾고 잘 활용한다. 기록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명상이나 토론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타이밍을 잘 찾으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그리고 단편적인 시각이 아니라 숲의 전체를 바라보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음악에 인생을 걸진 않았지만 그 음악과 동떨어진 일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섯 살 때의 '두만강 푸른 물에'부터 지금의 '록발라드'까지 음악과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평소 절약정신이 생활화되어 있지만 음악을 위해서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이런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입사해서 몇 년간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친구인데, 사회 초년생에게 딱 어울리는 수준의 셋방에서 살면서 몇 천만 원대의 진공관 앰프를 설치해 놓고 그 작은 공간에서 음악을 제대로 즐기며 살고 있었다. 그때 그 방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한 충격으로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지금껏 살면서 그런 통 큰 혜택을 누린 적은 없지만 어쩌면 음악에는 더 많은 것들을 투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2019년에 에어팟 프로가 나오자마자 첫 출시 가격으로 구매했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획기적인 기능이 지난 3년간의 내 인생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로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약 2개월 전부터 가끔씩 나의 에어팟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나아지겠지'라고 두 달을 버티다가 결국 어제 오후에 서비스센터로 찾아갔다.
"왼쪽 유닛이 고장이 난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런데, 이게 초기 제품이라 품질보증기간이 3년인데, 아아... 아쉽게도, 이미 1개월 정도 지났네요."
"네? 그럼 1개월 전에 왔으면, 어떤 조치가 가능했던 거죠?"
"그렇다면, 저희가 리퍼 제품으로 교환해 드렸을 겁니다."
"헐..."
우리가 실시간으로 직접 사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신비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체이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인체의 유기적인 기능들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고장 나서 수리하거나 교체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치료의 때를 놓치는 것이 바로 치과 치료 일 것이다. 치아 상태가 하루하루의 컨디션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일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과에 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 치과에 가면 바로 후회하게 된다. '좀 빨리 오셔서 치료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는 말을 들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이러다가 나아지겠지'가 통하지 않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우리가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어떤 작은 시그널이 왔을 때 망설이지 말고 빨리 찾아가야 할 곳은 바로 병원이다. 치과다.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다 보니, 사과를 해야 할 일들도 있고 또 화해를 해야 할 일들도 하나둘씩 누적되는 것 같다. 50년, 70년 그리고 길게는 90년을 살아가다 보면 어찌 하염없이 좋은 관계만 형성할 수 있으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절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관계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에는 그 상대방의 독특함을 인정해 버리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타이밍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이든 형식적으로 만나는 사람이든 사과와 화해는 무조건 빠를수록 좋다. '이러다가 나아지겠지'하며 뒤로 미룰수록 그 진정성과 실행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야 할 내 마음속에 엉뚱한 짐들을 하나둘씩 쌓아두지 말자. 그 마음속에 사랑과 우정과 배려와 설렘이 머물 자리를 점점 잃게 되기 때문이다.
내 생애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고 싶은가? 대부분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가장 많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정말 애틋했었던 시간으로 혹은 가장 크게 성취감을 느꼈던 시점으로 아니면 육신이 가장 건강했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이러다가 나아지겠지'하며 일상에서 몸부림을 치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중2로 돌아가고 싶다. 완전히 어린애 취급을 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은 아직 부여되지 않은 시기로 말이다. 그래서 뭘 하겠다고?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예술을 하든 뭔가 '최선'이라는 것을 야무지게 해보고 싶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교 졸업 이후에 다시 '내 인생의 고도화'를 위한 도전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 개학하는 시기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우리네 삶에서 타이밍이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고백'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 고백 혹은 프러포즈의 타이밍에 따라 결혼과 출산이 결정되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타이밍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요인들에 의해 크게 작용되기 때문에 개인이 선택한 각각의 케이스들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그를 선택한 그리고 그녀였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이외에 말이다. 가끔은 다툴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러다가 나아지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상상들은 하지 않을까? 그때 다른 그에게 고백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당시 지금의 그녀에게 고백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말이다.
그리고 타이밍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풍수지탄이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적혀 있다. 여기서 새겨들을 만한 사례를 들거나 혹은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저 사전의 해석 그대로이다. 돌아가신 후에는 누구도 그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흘려듣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피눈물 흘리게 되고 또 이를 엄중하게 삶에 반영하는 사람은 또 그렇게 풍요롭게 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든 '이러다가 나아지겠지'라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