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최근 드라마를 정주행 한 적이 있다. 그저 제목이 너무 좋아서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다. 그 제목은 바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이다.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거나 행복하게 사는 이웃으로부터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힐링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4월 말이나 5월 초에 낮은 산등성이에서 살랑대며 불어오는 '봄바람'이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특히 '대범이'라는 인물에 주목했다. 그의 독특한 과거의 이력이나 사건들 때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늘 웃고 있는 그의 모습 때문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일상생활에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 여주인공인 여름이 독백 형식으로 이렇게 설명해 준다.
'대범 씨가 화를 낸 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날 그에게 물어봤다. 왜 대범씨는 화를 내지 않느냐고...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모든 상황에서 그냥,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후들겨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왜 이리 화가 많아졌을까? 문득 생각해 보니 욕심의 정도와 화내는 횟수가 거의 일치하는 것 같다. 순수한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의 영혼이 도시로 이사하면서부터 조금씩 의무와 책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가진 것 없던 나로서는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 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 강박들이 어쩌면 은연중에 나를 욕심쟁이로 만들어 버렸는지 모른다. 특히 나 혼자만의 소소한 삶이 아니라 책임감있게 가정을 꾸려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럭무럭 욕심들이 자라났던 것 같다.
이 병이 생기기 전에는 스스로를 바보처럼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나를 건강 측면에서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위장병'이다. 우리의 몸에서 스트레스나 긴장에 가장 영향을 받는 질환이다. 거의 완벽하다고 표현할 만한 인류라는 생명체가 등장한 지 약 4~5백만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치지 못하는 병들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 인류의 최대 약점인 스트레스와 정신적 압박으로 인한 것들이다. 아이러니다. 그렇다고 인류의 정신을 아주 강하고 냉정하게만 만들어 놨다면,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업적이 제대로 꽃피울 수 있었을까? 그 훌륭한 인류의 창조물들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당분간 대범씨를 내 인생의 멘토로 생각하며 살아보려고 한다. 모든 일이 모든 상황이 모든 결과가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 그리고 다양한 견해가 그저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 일상속 지인들로부터 "OO씨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라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드라마에서 여름씨는 봄이의 외면에 괴로워하고 있는 재훈에게 이렇게 말한다.
'멀어질 사람은 그냥 멀어지라 그래.
미워할 사람은 그냥 미워하라 그래.
근데 나는 너를 언제 어디선 만나든 지금처럼 좋아할 거야.
다시 만날 때 웃으면서 달려가서 안아줄 거야.
오랜만이라고, 잘 지냈냐고, 보고 싶었다고.
너는 그만큼 나한테 좋은 사람이니까.'
이 세상엔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들이 함께 산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내가 모두를 좋아할 수도 없다. 그 관계가 마치 화가 난 거미의 집보다 더 복잡하다. 그러니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포기와 단절이 필요하다. 그래야 감사하게 얻은 이 땅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