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70세의 어느 궂은비 내리는 날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그때가 되면, 울퉁불퉁한 골목을 끄는 캐리어의 바퀴 소리가 아니더라도 이미 새벽 4시면 잠이 깨서 경로당 행사에서 박스째 받은 믹스커피를 하나 꺼내어 놓고 해묵은 커피포트를 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다가 '딸깍'하는 소리가 나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이 골목의 계단과 삼거리 가로등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그 새벽을 즐길 것이다.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장르 불문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이나 록발라드도 좋고 혹은 트로트나 재즈도 좋다. 아니 이렇게 비 내리는 새벽엔 어쩌면 YTN 뉴스나 국회방송을 틀어놔도 거의 비슷한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여유롭고 한가하고 느리고 또 느긋하고 또 단절된 평화와 적적함이 하루를 지배할 것이다.


친구들과 7시에 해장국을 먹으려면 아직 3시간이나 남았다. 책을 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평상시보다 조금은 일찍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야겠다. 이렇게 종일 봄비가 내리는 것이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빗소리에도 흠뻑 취하고 싶고 또 비의 특유한 냄새도 좀 맡아야겠다. 그래서 해장국집까지 걸어서 가보려고 한다. 이 완벽한 도시가 느려터진 나를 향해 얼마나 빵빵거릴까 겁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음악과 함께 손과 발 그리고 표정으로 장단을 맞추며 산책을 한다. 그러고 보니, 늙어서 하루를 온전히 자기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으려면 적어도 50세 이전에 고독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놔야 할 거 같다. 그렇지 않으면 노년의 하루하루가 한없이 무료하거나 마냥 두려워질 것이다.



매일해장국! 벌써 7년째 이 집의 단골이다. 친구들 모임을 위해 마땅한 안식처를 찾다가 동호회 지인의 추천으로 이 집을 처음 찾았을 때, 벽에 걸려 있는 메뉴판을 들여다보고는 슬그머니 웃음을 흘리고는 곧바로 선택했던 곳이다. 월-화-수-목-금-토의 해장국 메뉴와 밑반찬 3종 세트가 달랐고, 월-화-수-목-금-토의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다르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매일 바뀌는 부부의 복장과 스타일이었다. 특히 내가 좋았던 것은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웃어주는 주인장 부부의 모습이었고, 항상 우리가 떠날 때가 되면 어느새 졸졸졸 따라와 배웅해 주던 달달이와 도도였다. 암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곳에서 어느 잔칫날처럼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주인장들이 권하는 약초물을 천천히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신다. 이 약물을 마시는 순간 모든 병이 금방 치유될 거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래도 한잔 더 달라고 보채는 법이 없다. 그저 작은 막걸리잔에 한 그릇이면 몸이 먼저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부부는 딱 하루 쉬는 일요일에는 도시 외곽에 있는 산에 가서 한 달 동안 끓일 약초를 직접 채취한다고 한다. 그러니, 그 약물이 안 좋을 리 있겠는가? 맛이든 효과든 말이다.



가끔씩 친구들의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 혹은 부모님의 기일에는 아침부터 반주를 곁들인다. 그럴 때면 가끔씩은 오전 한나절을 식당에서 보내기도 한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지 비슷한 추억들을 그리워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우리와 함께했던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엄숙하게 기념한다. 그래서 7명 전체가 각자의 기념일들을 하나의 벽걸이 달력에다 동그라미 표시를 하여 그 식당 한편에 걸어놨다. 어떤 친구는 단 3개의 동그라미를 그려놓았고 또 어떤 친구는 열다섯 개를 그려놓기도 했다. 그런 걸로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남이 살아가는 방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을 크게 따르지 않는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어느 기념일에는 몇 년 만에 술을 다섯 잔씩이나 마시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없이 운 적도 있다.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아니면 뭐가 그토록 억울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보통 식사를 하고는 천천히 걸어서 버스 정류소 뒤편에 있는 탐정사무소로 출근한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많지 않다.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고 이루고 싶은 꿈들도 다음 세상을 기약해야 한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 산책만 하고 명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재미와 긴장감이 내 일상에 적당히 자극을 주는 탐정 일을 선택한 것이다. 탐정사무실의 직원은 총 7명이다. 아니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는 공용 오피스 메이트들이다. 그렇게 노인네들이 모여 각자 본인들의 일도 하면서 내가 일거리를 주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활동해 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노동 시간을 관리하여 사무실 월세에서 착착 정산해 주고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먼저 우편물과 서류들을 정리한다. 보통은 현장에서 퇴근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미 많은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등기소에 들러서 4통의 등기부등본을 떼어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에서 2시간 동안 집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동사무소에서 주관하는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내 몫도 챙겨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투성이인 '가구점' 어머니 행방불명 사건에 대해 현장을 재조사하여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내일은 친구들이나 오피스 동료들에게 내 사건 추리를 털어놓고 도움을 청해봐야겠다. 더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들이 생길 것 같다.



오후 5시가 되면 동네 목욕탕으로 간다. 매일매일 단조로운 하루의 일들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에 들르는 곳이다. 목욕탕에서 머무는 시간은 30분 정도이다. 온탕과 열탕 그리고 냉탕에서 느끼는 감각적 조화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이다. 거울에 비친 육신은 나이 70이라는 것이 실감 나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지금처럼 소소한 활동을 소화하기에 전혀 문제없다. 몇몇 기능들이 퇴화가 되어도, 잘 걷고 잘 소화시키고 또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면 기본적인 도시생활은 충분하니까 말이다. 오늘은 목욕탕에서부터 양말을 벗고 출발하려 한다. 이 비를 보다 촉촉이 느껴보고 싶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나이를 먹었으니까 말이다. 서글프기도 하고 웃음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음악과 자연과 친구와 고독과 함께 했던 삶이었으니까.



비는 내 인생에서 한마디로 축복이었다. 아주 어릴 적, 어린 누나가 나를 업고 논두렁을 건너고 있을 때 살짝살짝 내 정수리로 떨어지던 빗방울의 느낌을 기억한다. 아니, 아니, 그런 느낌을 내 피부가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던 시절부터 비만 내리면 그 비를 맞이하러 나갔다. 낮이든 밤이든 내리는 비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마냥 기쁨이었다. 마냥 신세계였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설레는 감정의 상태를 '무작정 비 맞으며 걸음'으로 정화했다. 참 좋았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빗물이 엉덩이를 타고 허벅지로 내려오는 그 느낌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비 내리는 저녁 무렵이면 웃통을 벗어던진 채 그 비를 오래도록 맞고 싶다.



저녁식사는 어제 먹고 남은 두부 반모와 샐러드면 충분하다. 딱 좋은 식사다. 그렇지 않으면 생선구이와 샐러드 아니면 소고기구이와 샐러드다. 그리고 곁들이는 것은 계절에 따라 칡즙이거나 혹은 오미자즙이다. 이렇게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배불리 먹는다는 것이 싫어진 지가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간다. 많이 먹을수록 내 몸이 많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조금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인생 내내 너무 열심히 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변을 신경 쓰며 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성취감이나 사람들의 인정 또한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걸 모른 채 그렇게 열심히만 살다 보니, 그렇게 열심히 온갖 좋지 않은 먹거리들과 함께했다. 후회될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건 다소 후회된다.



목욕탕을 들렀다 왔으니, 양치만 하고 잠자리에 들면 된다. 잠자리로 들기 전에 와이프와 화상 통화를 하고 아들과도 화상 통화를 시도한다. 화상 통화지만 화면에서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다 알고 있다. 다만, 서로의 삶과 일상과 상황을 끊임없이 응원하고 챙기고 지지한다. 그리고 묵묵히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음을 반복한다. 다시 창밖을 내다본다. 보슬비 사이로 우산을 쓰고 서있는 사람도 있고 우산 없이 걷는 사람도 보인다. 골목 모퉁이 빈 공간에는 내 착한 이웃인 개와 고양이가 다정하게 기대고 누워있다. 이렇게 비 내리는 골목과 삼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음에 무조건 감사한다. 그리고 살포시 웃는 얼굴로 베개에 머리를 기대 본다. 꿈을 꾸든 안 꾸든, 내일 하루를 더 살든 더 살지 못하든... 나는 이제...'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어도 두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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