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멋쟁이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떤 형태든 크고 작은 희생 없이는 그에 부합하는 긍정적인 결과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사주풀이나 타로카드와 같은 근원 모를 운세에 맡긴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선물 같은 이 삶을 멋지게 장식하고 펼쳐 나가기 위해 노력이라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80억의 인류가 동시대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하마터면 소중한 개인을 하찮게 인식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제대로 나를 알릴 수 없고 또 두각을 나타낼 수도 없다.
멋쟁이는 어떻게 노력할까? 먼저 나의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보려 한다. 나는 비교적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30~40대 시절에는 공식/비공식적으로 베스트 드레서에 몇 차례 뽑히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입는 옷이나 잡화들이 유명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 구입한 폼 나는 명품은 아니다. 아니, 아예 그쪽은 내 영역이 아니기에 지금까지 그 어떤 명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베스트 드레서로 뽑힐 정도로 옷을 잘(?) 입느냐? 그 이유는 돈 들이지 않고 상황에 맞게 코디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루에 5초에서 많으면 30초 정도만 옷차림에 할애하면 가능한 일이다. 오늘의 날씨와 오늘의 일정 그리고 오늘 만나는 사람들의 성향 그리고 나의 기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면도를 하는 그 시간에 오늘의 코디를 감각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택이 늘 생각했던 대로만 풀리지는 않는다. 특히, 장마 끝에 찾아오는 무더위에 넥타이와 슈트를 입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실내를 벗어나자마자 숨이 턱턱 막혀오기도 한다. 또한 살을 에는 듯한 극강의 추위 속에서도 코트를 걸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특히 반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직장인들을 발견하면 '내가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30초의 투자가 그렇게 수용하기 힘든 상황이 아니기에 지금도 그 30초 코디 습관은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출근 복장을 유니폼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객을 맞이하는 나의 외형적인 모습이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나의 정신적인 애티튜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료가 무심코 던진 '멋쟁이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라는 말이 새롭게 곱씹어진다.
우리의 직장 생활에서도 약 20% 정도의 멋쟁이들이 존재한다. 신입사원이 임용되어 배치되든 아니면 다른 부서에서 경력직이 전입해 오든 며칠만 겪어보면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자세를 알아차릴 수 있다. 어떤 이는 모든 일에서 애써 앞장서려고 노력한다. 또 어떤 이는 절대 앞서지 않고 주류의 뒤꽁무니에 편승하여 따라다니기만 한다. 또 다른 이는 굳이 앞장서려고 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와 미션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달리 설명하자면, 직장 생활을 오랫동안 영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이는 '성취감'을 우선순위로 하고 또 어떤 이는 '라인'에 충실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어려운 일 피해 다니기'에 집착한다. '어려운 일 피해 다니기'에 꽂혀있는 사람은 한나절만 함께 일해봐도 바로 표시가 난다. 그런 사람들은 일을 피해 다니기에 하루하루가 종일 피곤하다. 결국엔 사람마저 피해 다니게 된다. 조직에서 버텨내기 위한 씁쓸한 생존방식으로만 무장되어 빈둥빈둥 유유자적의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퇴직 후에도 스스로 후회 없이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당당하고 듬직하다. 파레토의 20% 편에 서 있어야 결국 스스로를 향해 진정성 있는 미소를 지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좀 더 덥고 좀 더 추웠지만 말이다.
친구들과의 친목모임이나 혹은 사회생활의 동호회 등 어떤 모임에 참여하여 공동체 활동을 할 때도 멋쟁이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가령, 친구 모임에 가더라도 늘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누리기만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며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것에 열중하는 친구도 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역할을 나누어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나 동료들 간의 신뢰는 저절로 쌓이는 것이다. 그것이 공동체의 멋이다. 그런데, 가만히 먼 산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숟가락'이나 '물' 혹은 '티슈'까지 챙겨달라고 요구만 하는 비호감도 있다. 인생에서의 봉사와 희생이라는 '맛'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다. 묵묵히 이 세상을 행복을 향해 서빙하는 멋쟁이들의 뿌듯함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약 1년 전부터 특별한 주말 행사가 없는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북 카페로 간다. 카페 근처에서 머뭇거리다가 8시 정각이 되어 문이 열리면 거의 첫 손님으로 입장한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다. 직장과 가정 그리고 사회 활동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에, 주말을 활용하여 일주일에 적어도 3시간씩은 글쓰기에 투자하려는 것이다. 나의 삶과 나의 생각 그리고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어떤 제목의 꼬리를 따라 하나둘씩 정리해 나가고 있다. 주말이니까 당연히 널브러져서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한 편 완성하고 나서 쉬는 것과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풀로 쉬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약 2년 후에 출간될 산문집을 위해 퍼즐 맞추듯이 하나씩 하나씩 창작해 가는 작업에 재미까지 붙었다. 모든 일은 그 과정에서 더 큰 기쁨과 만족이 느껴진다. 물론 산문집이라는 결과물 또한 기대가 되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묵묵하게 수행해 나가는 일련의 글쓰기 작업 과정이 참 좋다. 아마도 '희망'이라는 것과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