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낸 세금과 내가 누린 권리

by 윤호준

고가의 무선청소기를 너도 나도 구매하던 무렵, 유행을 탔던 것인지 우리 집 청소기가 그 역할을 다했다. 아니, A/S를 받으면 충분히 더 사용할 수 있겠지만 나도 한국인의 눈치 DNA를 온전히 물려받은지라 주말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춤출 무선청소기에 대한 리서치&리쿠르팅에 돌입했다. 적어도 5년 이상의 기간 동안 우리 집 가사도우미로서 활동할 훌륭한 재목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 제품군과 중소기업 제품군 그리고 독특한 아이디어 제품들을 비교/분석해보고 해외 유명 제품들도 후보군에 올려놓고 종합적으로 고심한 결과, 국내의 OO전자 제품이 최종 당첨되었다.


그런데, 그 결정을 한 후 약 3개월쯤 되었을 즈음, 청소기에 문제가 발생했다. 바닥을 부드럽게 밀어낼 수 있도록 도르래 역할을 담당하는 작은 부품이 빡빡해져서 브러시 헤드가 원활하게 움직여지질 않았다.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제품에 대한 배신감이 불현듯 밀려왔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이미 내 앞에 닥쳐온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조치를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내일 오후에 반차를 내서 OO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겠다'라고 결심을 하고서야 다소 마음이 진정되었다.


다음 날 오후에 최신형 고퀄리티의 무선청소기를 트렁크에 싣고 가까운 OO전자 서비스센터를 검색하고선 곧장 목적지로 출발했다. 주차장이 다소 혼잡한 걸로 보아, OO서비스센터를 찾는 동병상련의 이웃들이 많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역시나 접수창구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3열로 줄지어 있었고, 나는 4번째 줄에 섰다. 그리고 약 10분 후 내 차례가 되어 청소기를 들어 올리자, "아, 고객님! 여긴 핸드폰 전용 서비스센터입니다. 청소기는 OO시에 위치한 OO서비스센터로 가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단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나의 문제덩어리를 들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차에 앉자마자 긴 한숨을 몰아 쉬고는 다시 청소기를 취급하는 OO서비스센터를 검색하고선 곧장 네비에 입력하고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종전 센터에서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청소기 수리 전문 엔지니어 앞에 섰다. 약 1시간 40분 만에 이루진 감동적 만남이었다. 나는 엔지니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구매한 지 3개월 된 제품이 벌써 고장이 났다", "OO서비스센터에 갔더니 거기선 청소기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허탕을 쳤고, 벌써 2시간째 이러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 빨리 확인해달라"라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엔지니어는 내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청소기의 헤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곧바로 "고객님! 고장이 아닙니다. 브러시 헤드의 도르래 쪽에 머리카락과 먼지가 많이 끼어서 뻑뻑해진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이럴 경우에 어떻게 조치하는지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 보이시죠?"라고 침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런 거예요? 그럼 그 도르래라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닙니다. 이건 영구 사용 부품입니다."라고 명료한 답으로 응수했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조치 방법에 대해 듣고 있다가, 갑자기 엔지니어가 건넨 말 한마디에 더욱 당황했다. "고객님! 그런데, 이 제품이 아직 무상 A/S 기간인데 방문수리 요청을 하시지, 왜 직접 들고 오셨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네?, 네?, 뭐라고요? 무상 방문 수리가 가능하다고요? 와우! 오! 아후!"를 무조건 반사 신경처럼 되뇌었다.


수리가 아닌 청소가 완료된 고가의 청소기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혹시 산촌에서 태어나 다락방과 옥탑방을 전전하면서 늘 소박한 일상이 몸에 베인 탓에, 선진국의 국민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일상의 권리들을 남의 잔치로 여기고 구경만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5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주민센터에 민원 한번 신청한 적도 없고, 그 흔한 파출소, 경찰서에도 한번 가본 적 없고, 긴급상황으로 119를 한번 불러 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코로나19 정부지원금도 수령하지 않았다. 그저 30년간 직장 생활하면서 세금만 꼬박꼬박 상납했다.


이제 바꾸고 싶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지자체에서 그리고 내가 충성을 다했던 이 나라에서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인데도 실제로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지 체크해 봐야겠다. 내가 속한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일반적인 복지정책 그리고 그 지자체장의 특별 공약에 의한 혜택이 있는지도 꼼꼼히 조사해봐야겠다. 지금까지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듯이 그 의무에 따른 불평등은 없는지 당당히 따져봐야겠다. 이런 내용에 대해 우리가 평소에 확인하고 크로스 체크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일상에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혜택에서 의문의 손해를 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친목모임이나 동호회 그리고 소속된 기관이나 단체의 비정상적인 운영을 방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정부의 부정부패 그리고 지자체의 방만 행정 그리고 기업의 각종 비리와 협회의 예산 남용 등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타이트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고성능 무선청소기 A/S 일화로 시작된 인식의 변화가 내 삶의 권리들을 행사하기 위한 캠페인으로 확대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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