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 인생의 다섯 친구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문득 이런 싯구가 떠오른다.


'한 달 후,

우리는 다시 만날 테지만,

우리는 우리를 만나러 갈 때와 우리와 헤어져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잠들어 있는 시간 이외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20대 초반에 쓴 '이시대 우리는 우리는'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아마도 '친구'라는 존재의 소중한 가치와 더불어 그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동시에 표현한 싯구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친구'라는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친구와의 관계 형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고, 친구들 무리를 통해 '희생과 인내'라는 덕목을 몸에 익힐 수 있으며,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친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고 또 혼자서는 갖기 힘든 '뜻밖의 자신감'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친구야' '칭구칭구' '친구 아이가?' '친구잖애' '친구여. 친구'라는 정감 어린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친구'라는 존재는 삶의 대부분의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렇게 소중한 '친구'도 결국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 한계를 미리 예상하고 마지노선을 설정해 두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더욱이 사람들은 통상 나이가 들수록 자존감이 강해지면서 불평등하거나 불합리한 관계를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주도권을 갖고 있는 친구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래도 '내 삶이 먼저'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다만, '관계의 주도권'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지갑'이다. 아마도 일하지 않고도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복지사회가 되지 않은 한 '지갑'의 위력은 당분간 그 영향력을 행사할 거 같다. 그러니 조금 아쉽지만 '사람 친구들'만 믿고 살 순 없는 것이다. '사람 친구들'과는 별도로 '또 다른 듬직한 친구들'을 만들어놔야 한다. 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또 행복하게 만들고 또 불안요소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다.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또 그들과 함께 마음껏 세상을 향유하라. 그리고 내가 제시하는 또 다른 친구들과도 절친이 되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다섯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대자연

무엇보다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은 듬직한 친구는 바로 '대자연'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시그니처 장면'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 대자연이 연출한 장관들 일 것이다. 다른 일상의 충격적인 장면은 시간이 흘러 갈수록 잊히기도 하고 아련해지기도 하지만, 대자연의 아름답고 놀라운 경치와의 만남들은 좀처럼 기억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면들을 생각만 해도 마치 그 숲 속에 있는 것처럼 마음의 '피톤치드'가 발생하고, 마치 여전히 그 언덕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감동의 '도파민'이 몸의 깊은 곳으로부터 퍼져 나오게 된다.


게다가 그 듬직한 친구 '대자연'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우리 동네 뒷동산에 올라가도 있고, 교외로 빠져나가는 강가에 잠시 멈춰서도 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교 위에도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샛길에도 있고, 출근길 가로수길에도 있고, 사무실 창문으로 펼쳐지는 풍경 속에도 있다. 그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며,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 없으며,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더 친숙해진다.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감동시키고 또 건강한 생명체로 훈련시켜 준다. 비, 바람, 산, 바다, 숲, 하늘, 별, 석양, 나무, 강, 오솔길, 시냇물, 산등성이, 꽃, 나뭇잎, 바위, 달빛, 땅거미, 아지랑이, 새싹, 계곡 등이 그들이다. 아니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고독

다음으로 소개할 친구는 조금 독특하다. 그러나 그 가치와 활용도가 너무 높다고 판단되어 다른 '좋은 친구들' 보다 우선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부모와 가족을 만나게 되고(비록,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의 학교 친구들과 사회에서의 동료들 그리고 동호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에서 만나는 회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비슷한 과정과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수많은 관계 속에서 소외되거나 혹은 스스로 그들과 단절하는 상황들을 '외로움' '허전함'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들로 평가해 버린다. 어쩌면 인간의 특성이 '외로움'을 싫어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질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그 특성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할까? 내 체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건대, 무엇보다 큰 기쁨과 만족은 '고독의 신세계'에서 경험했던 일들이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그 신세계로 들어가 찬란한 존재감과 무한한 여유를 누렸다. 고독! 일상에 평정심을 심어주고 또 삶을 풍요롭게 하는 너무나 중요한 수단이다. 고독! 가장 매력적이고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참 좋은 친구다.


그리고 언제든 나를 위로하고 성장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가 있다. 일단, 그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방대한 지식과 주옥같은 처세술 그리고 너무나도 흥미진진한 감동과 전율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책'이다. 책과 친하게 지내면서 '악'한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사람도 책을 손에 잡으면 금세 평정심을 찾게 되고,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두 시간 집중해서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선택'을 하게 된다. 더불어, 보통사람보다 쉽게 우울해지는 경향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면 책을 '상비약'처럼 늘 지니고 다녀야 한다. 책을 읽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저 책을 들고라도 다녀라. 아니면, 거실 책장에 나만의 규칙으로 책들을 정열해 놓고, 자주 바라보아라. 그것만으로도 내 일상의 평온을 유지한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암튼, 책과 친하게 지내는 습관을 가진 것은 정말 큰 복이다. 그 어떤 형태의 '금수저'보다 훨씬 럭키한 것이다.


음악

인류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낭만'과 '풍류'라는 단어 또한 있었을까? 인생을 다시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단연코 '가수'로 살고 싶다. 그러나 직업이 '가수'가 아니더라도 음악과 함께하는 기회와 방법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또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음악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을 얼마나 적절히 내 것으로 만들어 향유할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더라도 100세를 초과하기는 힘들 것이라고들 한다. 그 10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약간의 발품만 팔면 즐길 수 있는 예술분야가 얼마나 많은가? 입이 딱 벌어지는 황홀감에 빠져들게 하는 미술작품, 최고 경지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오페라, 천년에 한 번쯤 탄생할 것 같은 관현악 그리고 잠들어 있던 눈물을 흔들어 깨우는 명작 영화들을 얼마나 즐기며 살아가는가? 내 마음의 풍요로움은 그들과의 교감에 따라 좌우된다. 어떤 외로움과 괴로움이 찾아와도 태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종합예술창고'를 차곡차곡 저장해 두고 싶지 않은가?



얼마 전에 90년대 중반에 발표했던 '락발라드 모음집'을 듣다가 그동안 미처 들어보지 못했던 감동적인 곡을 발견했다. 음악을 듣자마자, 마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던 여인을 만난 듯한 놀라운 흥분에 사로잡혔다. 그 짜릿한 감동은 긴 여운까지 합하면 2개월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축복인가? 노래 한 곡으로 2개월을 감동할 수 있다니 말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대기 중인 이 친구를 최대한 활용하자. 매월 5,000원 정도를 지불하면 모든 장르의 음악을 무한대의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스포츠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할 친구는 바로 '스포츠'다. 우리는 주변에서 야구광, 축구광, 탁구광, 당구광, 골프광, 배구광, 농구광, 레저광, 해양스포츠광 등 다양한 스포츠에 매료되어 푹푹 빠져있는 일명 '미친놈'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스포츠에 열광한다. 직접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동안에는 배가 고파도 괜찮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상관없다. 순간적으로 강하게 집중되는 힘 그리고 거친 호흡도 짜릿한 전율이 된다. 근육과 의지가 한계에 근접하거나 한 단계 초과되었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아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혜다. 직접 참여하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싸움구경만 해도 재밌듯이, 관중석에서 경기전체를 감독하듯 몰입되어 즐기는 것도 중독성이 매우 강한 스포츠 문화이다.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 편도 몇 시간의 원정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결국, 나를 위한 스트레스 해소책이며 소중한 취미활동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종류의 '인간'친구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다섯 친구'를 소개해봤다. 100년도 되지 않을 내 인생의 보물창고를 풍요롭고 감동적인 '신비한 물질들'로 채우고 싶다면,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의 손짓을 기다리고 있는 이 다섯 친구들을 활용하기 바란다. 가까이하면 할수록 인생에 보탬이 될 친구들이다.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절대로 그들이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친구들인가? 지금 당장 이 다섯 친구들을 인생의 절친으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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