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가 전 인류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여전히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면서 그 위풍당당한 기세를 떨치고 있다. 어느새 창궐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인류는 여전히 이 감염병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저 국가별로 자연면역이 가능한 풍토병으로의 선언을 앞다투어 계획하고 있을 뿐이다.
바이러스가 원인인 전염병들이 최근에 몇 번 발생했었지만, 이번 코로나19 상황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코로나19 이후 일반인의 생활 패턴이나 감염병에 대한 인식 또한 많이 달라졌다. 물론 이에 대한 개인적인 대처방법은 다양하다. 야외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자율화되었지만, 계속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또한 아직까지는 실내에서는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감염병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개인별로 다양하다. 어떤 이는 평소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공포심을 가질 정도로 생활수칙을 잘 지켰음에도 원인 제공자를 알지도 못한 채 감염되기도 한다. 그 상황을 단순히 몇 마디의 말로 분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문제는 이 바이러스를 종식시키고 나서야 해석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유난히 무더웠던 22년의 여름이 끝나가는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개인적으로 구상하고 있던 PC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카페에 갔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는 느낌이 왔다. '설마 아니겠지?'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지체 없이 태블릿과 키보드를 챙겨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이동하는 약 3~4분 동안 수많은 걱정들이 몰려왔다. '아! 이제 나도 확진자가 되는 건가? 집에서는 어떻게 격리생활을 할까? 회사 일들은 잔뜩 밀렸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혹시,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정신이 홀린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자가진단키트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양성' 확률이 높은 선명한 '빨간색 두 줄'을 확인한 후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일요일인데도 확진 의심자들로 가득했다. 약 40명이 먼저 도착해서 검사대기를 하고 있었고, 적어도 1시간은 기다려야 내 순서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소파의 맨 끝에서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OOO님! 음성 나왔습니다. 5천 원입니다.", "OOO님! 1번 진료실로 들어가십시오!"라는 희비가 엇갈리는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서로 교차되어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논산훈련소에서 정규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배정받는 순간처럼 두근두근거렸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안도와 비탄의 감탄사들이 병원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었다.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현실 속에 여과 없이 투영된 듯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우려했던 대로 확진자 코스인 1번 진료실로 불려 들어갔다.
병원을 빠져나오자마자 처음에는 큰 잘못을 저지른 죄인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저 약국에 가서 처방약을 챙기고서, 마주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와이프에게 '확진'을 통보하자, 가족들은 즉각 나의 심신을 결박하여 작은 방에 가뒀다. 그렇게 7일간의 격리생활이 시작되었다. 증상은 평상시 추측했던 것보다 강력했다. 물론 그 과정은 주변 경험자들과 언론에서 얘기해준 대로 목 간지러움-목 이물감-강한 몸살-첫날밤 오한-약간의 콧물-이틀 후 기침과 인후통으로 전개되었다. 어떤 통증의 정도를 떠나, 가장 불편하고 싫었던 것은 '오한'이었다. 특히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밤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찾아온 오한은 마치 큰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색다른 재미와 감동도 있었다. 작은방에 감금은 당했지만, 마치 '호텔식 룸서비스'를 받는 것처럼 삼시 세 끼를 푸짐한 상차림으로 받았다. 그렇게 3일째 되니 '확진자들이 이래서 확 찐자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며칠간 된통 앓고 나면, 생각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특히 그 아픔이 절정일 때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이러다가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 아냐? 다시 건강한 삶으로 돌아가면 이것만은 꼭 지켜야지. 그리고 이것만은 꼭 해봐야지.'라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물론 아픔의 정도가 '목숨'을 떠올릴 정도로 심각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환자의 표정과 말투까지도 변한다.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가족과 친구들을 각별히 챙기는 가족 주의자로 바뀌고, 또 어떤 이는 목표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 붙고, 또 어떤 이는 인생을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일상에서의 노력과 실천을 멈추지 않는다. 모두 다 좋은 모습들이다. 아픔이 계기가 되어 인생을 긍정적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아픔도 한 번쯤은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3일째가 되니 기침이 심해지고 목이 쉬었다. 전화 통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코로나19가 합병증과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문득문득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개인적으로 절실한 것들이 있다. 방송인이나 가수는 목이 쉬는 것을 가장 걱정할 것이고,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근육과 팔다리에 신경이 쓰일 것이고 또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미각의 상실이나 둔화를 두려워할 것이며, 유치원이나 실버타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우울감이나 불안장애 등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는 심혈관질환을 앓았던 사람이라면 그것과 관련된 후유증이 생길까 봐 걱정일 테고 또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들은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합병증의 리스크까지도 염려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생각해보라. 코로나19에 확진되어 불안한 격리생활을 할 때 혹시 어떤 종류의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걱정되었는가? 그 순서가 바로 내가 추구하고 싶어 하는 삶의 우선순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여태 살아오면서 경험한 위기상황에서 가장 절실하게 지키고 싶었던 내 몸의 기능은 무엇이었는가? 이제부터 7일간의 격리생활을 하면서 걱정했던 후유증이나 합병증은 무엇이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어쩌면 그 작은 요소들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격리가 해제된 다음다음날, 아침 일찍 차를 타고 아파트를 나섰다. 목적지는 시 외곽에 있는 스크린골프장이었다.
-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블루투스를 연동하여 선별해놓은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다소 불안한 분위기에서 락발라드 두 곡이 이어졌다.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사랑해. 지금 내 삶이 한~ 순간이라도...' , '지~금처럼 함께야. 다~시 만날 수 있어. 니가 떠나던 그날. 내~가 했던 그~말을 이젠 넌 아무것도 들을 수 없어.' 운전을 하며 볼륨을 크게 높이고 노래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목소리는 무사했다. 코로나 후유증은 아닌 것이다.
- 몸살과 오한을 거친 내 몸은 뭔가 찌뿌둥하며 상쾌하지가 않다. 하필 오늘따라 가장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 첫 홀은 다행히 파로 넘겼다. 그러나 두 번째 홀은 트리플보기를 맞았다. 이런! 정말 제대로 영향을 받은 건가? 다행히 다음 홀부터 조금씩 조금씩 샷감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결국 5 언더로 게임을 마무리했다. 골프도 후유증 대상이 아니다.
- 7일째가 되니 답답하고 힘들었다. 액티브한 활동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현실에 대한 우울감이 느껴졌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음악과 함께 외출을 하고 나니, 그 두려움과 우울감은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존재감은 오히려 허드렛일이나 심부름처럼 사소한 일들에서 그 효과가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날 오후, 수명이 다된 형광등을 교체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미뤘던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곧이어 포장 주문만 받는 30분 거리의 맛집에 순식간에 다녀왔다.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존재감 아닐까?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 어딘가에 구속되고 무엇인가에 억압당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고작 일주일의 격리생활도 이렇게 몸이 근질근질하고 답답함이 느껴지는데 말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 몸과 마음의 자유를 다시 찾았다는 것. 내가 원하면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자유를 되찾은 것이 가장 좋았다. 코로나 후유증을 걱정하다가, 오히려 코로나 효과를 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