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아빠와 아들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하루를 마감할 무렵, 샤워기의 거친 물줄기 소리가 들리면 아들이 샤워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샤워기 물줄기 소리보다는 최신 스마트폰을 통해 빵빵하게 들리는 연주와 그 음악을 따라 부르는 아들의 중첩된 목소리로 인해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다. 아빠가 언젠가 어떤 어느 글에서, '샤워를 할 때 일부러라도 휘파람이나 노래를 부르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 아빠도 각박한 직장 생활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그렇게 흥얼거리는 샤워를 좋아했다. 이제는 아들이 샤워를 할 때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것도 매번 다양한 음악과 함께 샤워를 즐긴다는 것이 뜻밖이면서도 반가웠다. 그래서 아들이 그렇게 샤워 중에 노래를 따라 부르면 덩달아 아빠의 마음도 흥이 나고 안심이 된다. '지금 잘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잘 살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을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부르는 샤워 뮤직의 장르가 매우 다양하고 시대를 초월한다. 물론 어릴 적부터 아빠와 음악적인 선호도가 비슷하고 예술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선곡하는 노래들이 아빠의 취향에 딱 맞았고, 아빠가 존경하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이제는 아들이 즐겨 듣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해철, 이승환, 부활, 김광석 등 요즘의 대학교 1학년이 꽂히기 힘든 장르일 수도 있는 명품 음악들을 즐겨 듣는다. 게다가 국내 음악뿐만 아니라 글로벌한 음악까지도 다양하게 접근하고 섭렵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들의 음악은 시대가 변해도 마니아층이 탄탄하게 유지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음악적 감성을 어느 정도 타고나야 친해질 수 있는 음악이다. 아마도 아이 때부터 자동차 여행을 하거나 혹은 일상 속에서 아빠가 듣고 부르던 노래들이 바로 그런 음악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아들과 아빠는 유튜브 뮤직 ID를 함께 쓰고 있다. 그 안에서 각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음악을 향유하고 또 서로가 공유하는 것이다. 요즘 샤워하면서 자주 부르는 노래는 이영훈 작곡의 이문세 명곡들과 비틀스의 대곡들이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 "When I'll feel that something I want to hold your hand."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것이 학교신문사의 수습기자 일이다. 아빠는 식탁 위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학교신문들을 보면서, 20대 초반에 뭔가 뜻을 펼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정말 멋진 선택인 것 같다며 응원해 주었다. 실제 아들이 처음으로 문학적 감성을 보여준 것은 일곱 살 유치원 때였다. 유치원 졸업을 며칠 앞두고 하원하면서 A4용지에 짧은 시를 적어왔는데, 순간적으로 놀라워 당황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잠자리'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당시 스마트폰으로 찍어두었던 것을 어렵게 찾아서 아래와 같이 그대로 옮겨보았다. 잠자리의 비행과 그 자유를 어린 시선과 감성으로 표현했다.
잠자리
- 윤석현(유치원생)
잠자리야. 너는
날개가 있어서 좋겠다.
잠자리야. 너는
시원한 바람을 타고 다녀서 좋겠다.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좋겠다.
부드러운 구름 위로 높이높이 올라가서 좋겠다.
중학교 3년 학대까지 아들과 함께 즐겨했던 운동은 캐치볼과 탁구 그리고 배드민턴이었다. 이 운동들의 공통점은 모두 상호 커뮤니케이션 운동이라는 것이다. 특히 캐치볼은 공의 높낮이와 속도 그리고 방향 등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딴생각하기가 힘들다. 그저 그 손끝의 방향과 동작의 크기 그리고 글러브에 '턱'하고 공이 잡히는 소리와 그 착 취담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대지와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하얀 공의 왕래 속에서 둘만의 말 없는 대화가 계속되는 것이다. 탁구나 테니스 그리고 배드민턴도 마찬가지다. 개인과 개인이 대화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일대일로 주고받은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어색한 공간적 사이를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으로 연결해 주는 매우 좋은 교감의 방법이다.
아들은 식탁에 앉았을 때 다리를 심하게 떤다.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마치 모스부호 송신기를 최고 속도로 설정해 놓거나 혹은 비바체를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활처럼 빠르다. 그런데 가만히 식탁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다리만 떨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편의 아빠도 거의 똑같은 속도로 오른쪽 다리를 떨고 있는 것이다. 의자와 식탁이 덜덜덜 떨릴 정도다. 이 광경을 자주 보았던 와이프는 '밥 먹을 때마다 멀미가 날 지경이다'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포기했거나 익숙해진 듯 거론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다리를 떠는 습관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후천적으로 바꿀 수 없는 습관이다. 그 버릇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걸 다 알고 있다.
아들은 말 수가 적은 편이다. 맥주 한잔하거나 본인이 어떤 일에 고무되어 뭔가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할 때도 그 주저리가 상당히 짧게 끝난다. 그런데 그렇게 말이 별로 없는 이가 또 있다. 아빠도 일상에서 보통 필요한 말만 한다. 그러니 성인이 된 아들과 둘이 거실에 있어도 주고받는 말은 많지 않다. '밥은 먹었니? 필요한 거 없니? 내일은 뭐 하니?' 등 현실적이거나 형식적인 단답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 좋다. 아빠 또한 말 많은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날은 '애교 넘치는 딸이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재잘거리는 모습들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딸이 태어났어도 말 수가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말 없음'에서 '신뢰'를 쌓는 길이 훨씬 현실적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심지어 엄마조차도 말 수가 적은 스타일이니 말이다.
아들이 성인이 되자 집안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은 뭔가를 사들고 들어온다. 어제는 경리단길에 놀러 갔다가 유명한 제과점에서 '빵'을 사서 들고 다니다가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가져왔다. 지난주에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도넛 브랜드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도넛라면서 손에 들고 왔다. 최근에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아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문학적 감성을 지녔고, 스포츠를 즐길 줄 안다는 사실보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먹거리를 포장해서 집으로 들고 오는 마음'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정말 흐뭇했다. 그렇게 마음과 행동으로 하나둘씩 가족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아빠는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아들의 삶이 한없이 기대된다.